손기업
1. 개요
한국의 독립운동가. 1963년 건국훈장 독립장을 수여받았다.
2. 생애
손기업은 1903년 2월 25일 황해도 장연군 속달면 태탄리에서 태어났다. 그는 1928년 베이징에서 이상일(李尙逸)과 함께 일제 고관과 부역배 암살을 추진하기 위해 조선혁명당총동맹(朝鮮革命黨總同盟)을 조직했다. 이상일은 베이징 책임자를 맡았고, 손기업은 천진 책임자로 선출되었다. 1928년 8월, 손기업은 동맹원 전창국(全昌國)에게 천진 일본조계 내부로 잠입해 일제의 밀정 노릇을 하는 이태화(李泰華)를 처단하게 했다. 또 1930년 동맹원 장기준(莊麒俊)에게 수 명의 동맹원들을 맡기고 천진일본은행을 습격해 거액의 돈을 탈취해서 군자금에 충당하게 했다.
1931년 일제가 만주사변을 단행하면서 중국인들의 대일감정이 악화되자, 손기업 등 총동맹간부들은 비밀회의를 열고 일제의 침략을 방지하기 위해서는 세계 대전이 일어나 민주진영이 승리하는 것만이 최선의 해결책이라고 판단했다. 그들은 세계대전을 유도하기 위해 열강의 조계가 많이 있는 천진에서 일본조계를 점령하기로 했다. 이를 위해 만주전관대사 무토 노부요시(武藤信義)를 암살하기로 한 총동맹은 박민항, 이창용(李昌用), 최윤식(崔潤植)을 선출했다. 손기업은 이들 3명에게 폭탄 4개, 권총 3정 등을 건네고 만주로 가서 무토 노부요시를 암살하게 했다.
그러나 이들은 장춘 중앙여관에서 일본 헌병대에게 무기가 발각되는 바람에 모두 체포되고 말았다. 일제 경찰은 이들에게 무자비한 고문을 가한 끝에 손기업의 비밀장소 위치를 알아내는 데 성공했고, 결국 손기업은 체포되었다. 그후 일제는 베이징에 있는 장쉐량이 부하를 시켜 이들을 구출할 목적으로 일본헌병사령부를 습격하려 한다는 허위 정보를 꾸며내고 열하사변을 감행했다.
손기업, 이창용, 박민항 등은 일본 헌병대에게 갖은 고문을 당한 뒤 1933년 5월 27일 장춘 일본군법회의 임시관동군법무부에서 재판관 단우소좌(丹羽少佐)로부터 소위 폭발물 취체규칙위반 혐의로 각각 징역 10년을 선고받고 여순형무소에서 옥고를 치렀다. 박민항은 그해 10월에 옥사했고, 손기업과 이창용은 만기 출옥했다. 이후 서울로 돌아와 여생을 조용히 보내던 그는 1985년 9월 21일에 사망했다.
대한민국 정부는 1963년 손기업에게 건국훈장 독립장을 수여했다. 그리고 1985년에 그의 유해를 국립서울현충원 독립유공자 묘역에 안장했다.
3. 여담
1990년대 KBS 예능국을 대표했던 前 아나운서 손범수는 손기업의 손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