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춘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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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명
송춘근(宋春根)
이명
송봉해(宋鳳海)
생몰
1887년 12월 18일 ~ 1971년 4월 26일
출생지
경기도 양주군 광적면 대지리
사망지
전라남도 해남군
매장지
국립대전현충원 독립유공자 묘역
추서
건국훈장 애족장
1. 개요
2. 생애


1. 개요


한국의 독립운동가. 1999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받았다.

2. 생애


송춘근은 1887년 12월 18일 경기도 양주군 광적면 대지리에서 태어났다. 그는 세브란스의전(醫專) 3학년 재학 중이던 1919년 2월 연희전문학교생 김원벽·보성전문학교생 강기덕 등의 연락을 받고 학생동원의 책임을 맡기로 하였다. 그는 동료학생들에게 3월 1일 정오까지 태극기와 적색 리본을 가지고 탑동공원으로 집합하도록 하고 그날 거행된 독립만세운동에 참가하였다. 한편 그는 세브란스의전 학교장 프랭크 윌리엄 스코필드의 도움을 받아 일제 경찰 및 헌병대의 한국인에 대한 무차별 사격으로 인한 참상을 촬영한 사진을 미국 선교회와 신문사에 보냈다.
1919년 8월, 송춘근은 남감리교 전도사인 김조길(金祚吉)로부터 상해에서 발행되는 ‘국민신문(國民新聞)’·’독립신문(獨立新聞)’ 등을 춘천에 거주하는 기독교도와 유력자들에게 배포하여, 임시정부의 활동상을 알리는 역할을 담당하였다. 또한 같은 해 11월 27일 미국 남감리파의 전도특파원(傳道特派員)이 춘천에 오는 것을 기회로, 춘천교구에 속한 남감리파 교도가 중심이 되어 독립운동을 단행할 것을 계획하였다. 그들은 ‘선언서(宣言書)’ 2개·축하가(祝賀歌)·독립운동가(獨立運動歌) 등 인쇄물을 만들어 춘천지역에 비밀리에 배포했다.
이 일로 체포된 그는 1920년 10월 8일 경성지방법원에서 소위 정치범죄처벌령으로 징역 1년 6월을 받고 옥고를 치렀다. 이후 해남군으로 내려가 조용히 지내다 1971년 4월 26일에 사망했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9년 송춘근에게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했다. 그리고 2006년 그의 유해를 국립대전현충원 독립유공자 묘역에 안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