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리야 보날리
1. 소개
프랑스의 前 피겨 스케이팅 선수이며, 공식대회 최초로 쿼트러플 토룹을 선보인 여자 선수이다.
2. 선수 경력
어릴 때 트램폴린 체조 선수였고 1986 세계선수권에 프랑스 대표로 참가해 덤블링 단체전에서 은메달을 딴 경력이 있다. 11살 때 피겨 스케이팅을 시작했다.
2.1. 1987-88 시즌
1988 주니어 세계선수권에서 14위, 프랑스선수권에서 4위를 기록했다.
2.2. 1988-89 시즌
1988 랄리크[2] 에서 7위를 기록하고 1989 주니어 세계선수권에서 동메달을 획득했다. 프랑스선수권에서는 첫 우승을 달성했다. 1989 유럽선수권에서 8위, 1989 세계선수권에서 10위를 기록했다.
2.3. 1989-90 시즌
네벨혼 트로피에서 우승했고 1989 스케이트 아메리카와 1989 스케이트 캐나다에서 각각 6위와 7위를 기록했다. 1989 랄리크에서는 우승했다. 1990 주니어 세계선수권에서는 은메달을 따고 프랑스선수권에서는 2연패를 달성했다. 1990 유럽선수권에서 4위, 1990 세계선수권에서는 8위를 기록했다.
2.4. 1990-91 시즌
네벨혼 트로피에서 우승하고 친선경기에서 동메달을 땄다. 1990 스케이트 아메리카에서 5위, 1990 랄리크에서 우승했다. 1991 주니어 세계선수권과 프랑스선수권에서 모두 우승했다. 1991 유럽선수권에서도 우승하며 첫 메이저 대회 타이틀을 얻었다. 1991 세계선수권에서는 5위에 올랐다.
2.5. 1991-92 시즌
4개의 그랑프리 시리즈에 참가해 1위, 2위, 3위, 5위를 기록했다. 프랑스선수권에서는 4연패, 1992 유럽선수권에서는 2연패를 달성했다. 1992 알베르빌 동계올림픽에서는 여성선수로서는 최초로 쿼트러플 토룹을 선보였음에도 구성점수를 낮게 받아 5위에 그쳤다. 올림픽이 끝나고 열린 1992 세계선수권에서는 11위를 기록했다.
2.6. 1992-93 시즌
1992 NHK 트로피, 1992 네이션스 컵, 1992 트로피 랄리크에서 모두 우승했다. 프랑스선수권에서도 5연패를 달성하고 1993 유럽선수권에서는 3연패를 달성했다. 1993 세계선수권에서는 은메달을 획득하며 첫 세계선수권 메달을 얻었다.
2.7. 1993-94 시즌
피루텐에 시니어 부문으로 참가해 우승했고 1993 스케이트 아메리카 은메달, 1993 NHK 트로피 금메달, 1993 트로피 랄리크에서 금메달을 획득했다. 프랑스선수권과 1994 유럽선수권에서는 6연패와 3연패를 달성했다.
1994 세계선수권에서는 사토 유카에게 우승을 내주며 준우승에 머물렀다. 보날리는 유럽선수권을 5번이나 우승했던 선수인데, 이번 경기에서 낮은 점수를 받은 건 흑인이기 때문이었다.당시 수리야 보날리는 시상식에서 포디움에 올라서는 것을 거부하고 얼음 위에 서 있어서, 시상자가 그녀의 손을 잡고 억지로 시상대에 올려야 했다.[3]
이 은메달 거부 사건은 인종차별에 대한 반대 운동에 불을 지폈다. 한편 그녀의 연기가 저평가된 이유로 기존 피계 스케이팅 계에서 추구하던 고전적인 여성미가 아닌, 강인하고 남성적인 활동성(Athleticism)이 강조되었기 때문이라고 주장하는 측도 있었다. 때문에 그녀가 백인이었다면 더 좋은 점수를 받았을 것이라는 말도 있지만, 남성이었다면 더 좋은 점수를 받았을 것이라고 보는 팬들도 있다. 어찌 되었든 피겨계가 고전적인 고정관념에 스스로를 가두고 정형화된 아름다움을 강요한다는 비난은 피하기 어려웠다. 그러나 같이 경쟁했던 선수들에 비해 비점프 요소가 한참 뒤떨어져서 구성점을 잘 받기 힘든 타입의 선수였던 것은 사실이다.
2.8. 1994-95 시즌
친선경기에서 우승하고 1994 스케이트 아메리카 금메달, 1994 트로피 랄리크 금메달, 1994 NHK 트로피 은메달을 획득했다. 프랑스선수권과 1995 유럽선수권에서는 각각 7연패와 5연패를 달성했다.
1995 세계선수권에서는 은메달을 획득했다.
2.9. 1995-96 시즌
1995 스케이트 아메리카와 1995 NHK 트로피에서 4위를 기록하고 1995 트로피 랄리크에서 동메달을 획득했다. 프랑스선수권에서는 8연패를 달성했다. 1996 유럽선수권과 1996 세계선수권에서는 각각 2위와 5위를 기록했다. 이 대회에서 4개 이상의 트리플 점프들을 랜딩하지 못했다.
2.10. 1996-97 시즌
1996년 5월, 점프 연습을 하다가 아킬레스 건이 파열되는 부상을 당해 챔피언 시리즈를 기권했다. 프랑스선수권에서 9연패를 달성했으나 프랑스 연맹이 1997 유럽선수권에 보날리를 보내지 않으려고 했는데, 그녀가 설득을 한 끝에 겨우 참가할 수 있게 되었다. 그러나 부상에서 회복되된지 얼마 안 된 터라 9위에 머물렀다.
2.11. 1997-98 시즌
1997 스케이트 캐나다에서 동메달, 1997 컵 오브 러시아에서 4위를 기록했다. 프랑스선수권에서는 래티샤 후버트에 밀려 은메달을 획득했다. 1998 유럽선수권에서는 6위를 기록했다.
1998 나가노 동계올림픽에서 이미 메달 가능성이 멀어지자, 그동안의 울분을 털어내려는 듯 피겨 스케이팅 공식 경기에서 금지된[4] 백플립 기술을 선보였다. 결국 금지된 기술을 선보인 것 때문에 감점을 받아 10위에 머물렀다. 수리야의 점수가 나오자 관중들은 수리야를 향한 야유가 아니라 부당한 심판들과 경직된 피겨계를 향해 야유를 퍼부었다.
3. 수상 기록
4. 기타
- 선수 활동은 프랑스 국적으로 하였으나, 2004년 미국 시민권을 획득하였다. 현재 미국에서 생활하고 있다.
- 은퇴 후, 2000년대 후반까지 프로 선수로 스케이팅 쇼에 출연하였다. 프로에서도 은퇴한 후에는 미네소타 주에서 코치 활동을 하고 있다.
- 사회활동에도 많은 관심을 두고 있다. 채식주의자이기도 한 수리야는 동물보호론자로 활동하기도 했고, PETA의 홍보 모델로도 활동했다.
- 한 때 수리야가 프랑스의 식민지였던 마다가스카르 근처의 섬 출신이며, 부모에게 버려져 해변에서 발견된 고아 출신이라는 이야기가 나왔으나, 사실이 아니다. 그녀를 '이국적이고 신비한, 그리고 극적인' 존재로 팔아먹기 위한 홍보수단의 하나였다.
- 기계체조 선수인 어머니에게서 점프기술을 배웠고, 타고난 특유의 탄력성을 바탕으로 당시 다른 선수들과 격이 다른 점프를 했다. 쿼트러플 외에도 1993년 파리 라리크 대회에서는 트리플 점프를 6회나 성공시켰는가 하면, 1994 유럽선수권에서는 트리플 살코-트리플 토 루프의 연속동작을 선보이기도 했다.
- 당시 존재하던 유색인종에 대한 차별로 기술점수에 비해 구성점수를 매우 박하게 받는 차별을 받고 있다는 논란이 있었다. 한 인터뷰에서는 "내가 백인이었다면 훨씬 더 호의적으로 받아들여졌을 것이며, 더 큰 지원도 따냈을 것"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 그러나 기술 점수에 비해 구성 점수가 낮은 게 차별이 아니라 정말로 표현력과 스케이팅 스킬이 부족했다는 반론 역시 있으며, 당시에 손꼽힐 만큼의 안좋은 스케이팅을 구사할 정도로 기본기가 부족했다고 한다. 그냥 점핑만 할 줄 아는 점핑빈(Jumping Bean)이라는 이야기도 있다.
- 사실 백플립 기술은 위의 각주에서 이야기했듯이 아이스쇼에서는 종종 나오는 기술이기도 하다. 다만, ISU에서는 이 기술이 위험하다고 해서 공식 경기에서는 금지시켰으며, 수리야 보날리가 이 기술을 사용하기 전부터 금지되어있었다. 공식 대회에서 금지될 것을 알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 기술을 성공시킨 것은 수리야 보날리가 유일하다. 본인은 이 기술을 심사위원이 아닌 자신을 응원해 준 관중들을 위해 보여준 것이라 말했다.
- 2018년 4월 1일 신비한 TV 서프라이즈 808회에서도 나왔다.
[1] 현재 거주지는 미국 미네소타 주 미니애폴리스-세인트 폴이다.[2] 現 엔테르나시오노 드 프랑스의 전신[3] 당시 수리야 보날리의 스케이팅 스킬은 탑싱들 중에서 최하위 수준이였고 언더, 손을 짚는 등 실수가 있었기 때문에 사토유카가 금메달은 정당하다는 의견도 있다.[4] 아이스쇼에서는 당연히 가능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