술타니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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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네스코 세계유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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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
한국어
술타니야
영어
Soltaniyeh
아랍어
السلطانية
프랑스어
Soltaniyeh
국가·위치
이란 잔잔 주

등재유형
문화유산
등재연도
2005년
등재기준
(ii)[1], (iii)[2], (iv)[3]
지정번호
1188
페르시아어سلطانيه‎
영어 Soltaniyeh / Sultania
1. 개요
2. 역사
3. 올제이투 영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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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이란 중북부의 도시. 수도 테헤란에서 서쪽으로 240km, 카즈빈에선 120km 떨어져 있다. 말그대로 '술탄의 도시'란 의미인 술타니야는 14세기 일 칸국의 수도로 지어졌다. 현재는 인구 7천의 작은 도시지만 당대에는 서아시아 최대의 도시 중 하나였다. 14세기 페르시아 건축의 보고로서 2005년, 시가지 전체가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지정되었다.

2. 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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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래 작은 마을에 불과했으나 1290년, 일 칸국의 아르쿤 칸이 여름 별장을 지으며 왕실과 인연을 맺었다. 사냥을 즐겼던 왕실은 사냥감과 말에게 먹일 목초지가 넓게 펼쳐진 술타니야의 초원을 선호하였다. 특히 아르군 칸의 차남 무함마드가 이곳을 즐겨 찾았고 1302년부터 자신의 영묘를 짓기 시작하였다. 1304년에 그는 올제이투 칸으로 즉위하였고 1306년에 타브리즈에서 이곳 술타니야로 천도하였다. 1312년에 영묘가 완성되었고 이듬해까지 주요 건축이 끝났다.
한편, 이슬람 수니파의 법학파인 하나피와 샤피이 간의 당쟁에 지쳐 있던 올제이투 칸은 시아파의 열두이맘파 학자인 알 힐릴리의 설교에 시아파로 개종하였다. (1310년) 이후 그는 알리, 후세인 등 이맘들의 유골을 술타니아로 옮겨오려 했으나 사당을 이전하는데 그쳤다. 한편, 크리스트교[4], 불교, 순니/쉬아 이슬람 모두를 경험한 올제이투 칸은 종교적으로 관대하였다. 따라서 1318년 가톨릭 주교구가 설치되어 1450년경까지 유지되었다. 올제이투 칸은 술타니야가 세계에서 가장 크고 위대한 도시가 되길 바랐고 이곳에서 임종을 맞았다. (1316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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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세기의 삽화
올제이투 칸의 사후 술타니야는 정치적 중요성을 상실하였다. 1384년, 도시는 티무르에 의해 약탈당했는데 올제이투 영묘는 무사했다. 근대 카자르 왕조 대에 술타니아 평원은 군사 훈련에 이용되었다.

3. 올제이투 영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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랜드마크인 올제이투 영묘
이슬람 문명권의 무덤 양식인 모졸렘의 걸작으로서, '타지마할을 예견한' 건축물로 평가받는다. 터키석으로 장식된 돔은 피렌체 두오모, 하기아 소피아 다음으로 세계에서 3번째로 큰 돔이다.


[1] 오랜 세월에 걸쳐 또는 세계의 일정 문화권 내에서 건축이나 기술 발전, 기념물 제작, 도시 계획이나 조경 디자인에 있어 인간 가치의 중요한 교환을 반영[2] 현존하거나 이미 사라진 문화적 전통이나 문명의 독보적 또는 적어도 특출한 증거일 것[3] 인류 역사에 있어 중요 단계를 예증하는 건물, 건축이나 기술의 총체, 경관 유형의 대표적 사례일 것[4] 디교황 니콜라오 4세를 대부로 니콜랴라는 세례명까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