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티브 블래스
1. 개요
메이저 리그 베이스볼에서 뛰었던 우완 선발투수. 그 유명한 스티브 블래스 증후군의 주인공으로, 은퇴 후 30여년 간 피츠버그 지역 방송의 해설자를 맡다가 지금은 그만두었다.
2. MLB 커리어
1960년 18세의 이른 나이에 피츠버그 파이어리츠와 계약한 블래스는 22세 때인 1964년에 메이저리그 데뷔전을 가졌고, 1966년에는 1군에 정착했다. 풀타임 4년차인 1968년에 커리어 하이 시즌을 찍었는데, 성적은 18승 6패에 무려 2.12의 평균자책점, 7완봉승을 기록했으며, 그 해 9월에는 5승 1패 1.65 ERA, 46탈삼진으로 NL 이달의 투수상을 받기도 했다.
1969년 16승 10패 ERA 4.46으로 주춤한 그는 1970년 ERA 3.52로 반등했고, 1971년에는 2.85까지 끌어내렸다. 이 시즌 피츠버그는 월드시리즈에 진출하여 볼티모어 오리올스와 격돌했는데, 블래스는 3차전, 7차전에 나서 모두 9이닝 1실점 완투승을 거두는 MVP급 활약을 선보였다.[1] 1972년에도 2.49의 평균자책점, 19승을 기록하며 명실상부 팀의 에이스로 자리매김했다. 이런 활약에 힘입어 생애 첫 올스타로 선정되기도 했으며, 사이영 투표에서도 2위를 기록했다.[2] 데뷔 후 8시즌 동안 정확히 100승을 찍고, 평균자책점은 3.24, 이대로 평탄한 커리어가 이어지는 줄 알았는데..
3. 갑자기 찾아온 재앙, 스티브 블래스 증후군
대활약을 펼쳤던 직후 시즌인 1973년, 블래스는 갑작스럽고 원인을 알 수 없는 제구력 난조를 겪게 되었다. 요컨대 '스트라이크를 던지지 못하게 된 것'. 이 해 그의 성적은 88.2이닝 '''9.85 ERA''', 84볼넷을 내줬고 삼진은 27개밖에 잡지 못했다.[3] 결국 마이너로 내려가게 되었지만, 1974년에도 회복방법을 찾지 못하면서, 1975년 3월, 충격의 은퇴를 선언하고 만다.
블래스의 사례를 계기로, 이른바 스티브 블래스 증후군이라는 현상은 일종의 야구 용어로 자리잡게 되었다. 이 현상에 대한 자세한 설명은 상기 항목을 참조. 한편 그로부터 몇 년 후의 인터뷰에서 블래스는 커리어 마지막이 끔찍하게 끝나고 말았지만, 피츠버그와 10년 간 좋은 인연을 만들면서 통산 100승을 쌓고 월드시리즈에 나설 수 있었던 야구 인생에 만족한다고 밝혔다. 또한 팀 동료이자 좋은 친구인 로베르토 클레멘테[4] 가 1973 시즌 직전에 사망한 것에 대한 슬픔 등이 블래스 신드롬의 원인은 아니라고 말했다.
4. 은퇴 이후
은퇴 직후인 1970년대 후반 블래스는 학교 졸업 기념 반지를 만드는 피츠버그의 한 회사에서 외판원으로 일했다. 그러다 1983년 피츠버그 파이어리츠 팀 TV 및 라디오 방송의 파트타임 해설자로 합류했고, 1986년에는 풀타임 해설자로 자리잡았다. 2005년부터는 가족들과 보다 많은 시간을 보내기 위해 홈 경기에만 나서다가, 2019년에는 해설자 인생에서 완전히 은퇴하였다. 그리고 그 해 9월에는 피츠버그 명예의 전당 첫 입성자가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