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계관

 


성명
신계관(申啓寬)
이명
신광조(申光祚), 신광우(申光祐)
생몰
1898년 3월~1921년 11월 23일
출생지
황해도 신천군 사직면
사망지
황해도 서흥군 신계면
추서
건국훈장 애국장
1. 개요
2. 생애


1. 개요


한국의 독립운동가. 1990년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받았다.

2. 생애


신계관은 1898년 3월 황해도 신천군 사직면에서 태어났다. 그는 1919년 신천군에서 3.1 운동에 가담한 뒤 만주로 망명해 관전현에서 대한독립단에 가입하고 국내특파원을 맡았다. 1920년 7월 남만의 각 독립운동 단체가 광복군사령부로 통합되자 그 제2영 제7대장에 임명되었으며, 1921년 4월에는 김창곤(金昌坤), 한철수 등과 함께 황평 지방에 출동했다가 귀환 중 의주교외에서 일경과 싸워 2명을 사살하였다. 또한 그해 6월에는 의주 광평에 출동하여 악질 주구로 알려진 전면장 윤씨를 사살했다.
1921년 가을, 그는 장필석(張弼碩)·이관인(李寬仁) 등과 같이 평남지방에 출동하여 조창룡(趙昌龍)·김진준(金珍俊)·이영달(李永達) 등과 함께 동지를 규합하고 군자금 모집 활동을 하였다. 그리고 독립단 단장이 되어 부단장 박경만(朴京萬)과 자신의 부인 김간란(金干蘭) 등과 함께 황해도 서흥 신계에서 활동했다. 그러다 부고리에서 신계서 경찰관들의 습격을 받아 교전하여 한인 순사 이희춘(李熙春) 등을 사살했지만 자신도 부상을 입은 뒤 마지막 남은 총탄을 머리에 쏴서 자결했다.
대한민국 정부는 1977년 신계관에게 건국포장을 추서했고 1990년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