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흥군
瑞興郡 / Sŏhŭng County
1. 개요
북한 황해북도의 군.
한서 기온차가 심하기 때문에 사과가 많이 생산되며, 지하자원으로는 석회, 슬레이트 등이 생산된다. 교통면으로는 경의선(평부선) 철도가 지나간다. 신막 부근은 석회암 지대로 카르스트 지형이 나타난다.
2. 역사
삼국시대에 고구려가 이곳을 차지해 오곡군(五谷郡)을 설치했다.
신라가 이곳을 차지한 후 신라 경덕왕 때 오관군(五關郡)으로 개칭했다. 일단 삼국사기 지리지의 기록상으로는 신라 9주 5소경 중 한주에 속했는데, 신라 후기에 한주와 구분되는 특수 행정구역 패강진을 신라 서북면에 설치했다는 설을 긍정한다면 이 곳도 위치상 패강진 관할이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고려 성종 때는 농서라는 별칭이 있었으며, 후에는 동주(洞州)라 불렀다.
해방 이전부터 존재했던 군. 광복 전에는 1읍(신막) 10면으로 구성되었으나, 지금의 서흥군은 신막읍,서흥면,매양면,용평면,내덕면,목감면,율리면 일대에 해당한다. 1940년 서흥면에서 철도와 가까운 신막읍으로 군청을 옮겼다.
3. 기타
여담으로 거창군 농어촌버스 회사 서흥여객 회사명의 어원이 이 지역인데, 창업주의 고향이 서흥군이라고 한다.
4. 출신 인물
5. 이북5도위원회 기준 행정구역
[image]
광복 당시 1읍 10면
- 신막읍(新幕邑)
- 관할 리 : 신막(新幕), 가창(加倉), 거문(巨門), 남한(南漢), 석락(石洛), 시담(矢潭), 와야(瓦野), 은현(隱峴), 이괴(梨槐), 주교(周橋), 증락(甑洛), 천곡(泉谷)
- 읍사무소와 군청이 신막리에 있었다. 부군면 통폐합 당시 동부면(東部面, 서흥강 이북 : 거문리, 남한리, 시담리, 와야리, 은현리, 천곡리)과 화회면(禾回面, 서흥강 이남 : 신막리, 가창리, 석락리, 이괴리, 주교리, 증락리)이었으나, 1940년에 병합돼 신막읍으로 승격됐다. 신막역(북한:서흥역)은 철도 교통의 요지가 되는 역이었다. 곳곳에 돌리네 등 카르스트 지형이 형성돼 있다.
- 구포면(九圃面)
- 관할 리 : 신당(新塘), 구정(九井), 오암(五巖), 운천(雲川), 자작(自作), 정문(旌門)
- 내덕면(內德面)
- 관할 리 : 신촌(新村), 감당(甘棠), 냉정(冷井), 다전(多田), 대화(大和), 덕성(德城), 상금(上金), 상석(上石), 석련(石蓮), 유판(柳板), 장포(長浦), 하석(下石)
- 도면(道面)
- 관할 리 : 능(陵), 국대(菊垈), 금교(金橋), 도통(道筒), 두무(杜茂), 성매(城梅), 송화(松花), 수곡(水曲), 신전(薪田), 양학(陽鶴), 화음(華陰)
- 북쪽 경계를 평안남도 중화군과 접하며, 북쪽에 크고 아름다운 연탄호(燕灘湖)가 있다.
- 매양면(梅陽面)
- 관할 리 : 녹안(綠鞍), 대평(大平), 덕암(德巖), 매정(梅亭), 백화(百花), 서봉(書峰), 양사(陽射), 월농(月農), 청포(靑浦)
- 목감면(木甘面)
- 관할 리 : 흥수(興水), 당현(唐峴), 백암(白巖), 복대(卜大), 소기(所己), 수곡(水曲), 입암(立巖), 장양(長陽), 창촌(倉村), 향교(鄕橋)
- 서흥면(瑞興面)
- 관할 리 : 명의(明義), 고성(古城), 구암(鳩巖), 덕어(德魚), 영파(暎波), 예운(曳雲), 오운(五雲), 와류(臥柳), 작문(作門), 잠두(蠶頭), 주산(舟山), 화곡(花谷)
- 전통적인 서흥군의 중심지였으나 경의선이 지나지 않게 되어 침체되었으며,[3] 급기야 1940년에 군청이 신막읍으로 이전해갔다. 안습...
- 세평면(細平面)
- 관할 리 : 지산(芝山), 간평(艮坪), 고읍(古邑), 어룡(魚龍), 이산(尼山), 직현(稷峴)
- 소사면(所沙面)
- 용평면(龍坪面)
- 율리면(栗里面)
[1] 아버지가 판사였던지라 부임지에서 태어난 것으로 보인다.[2] 전 전북 익산 갑 국회의원[3] 서흥역(북한:석현역)이 있기는 했지만 용평면 소재지에 있었고, 서흥면 명의리와는 3km의 거리가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