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필수

 


[image]
성명
신필수(申弼秀)
본관
평산 신씨
생몰
1877년 9월 3일 ~ 1938년 9월 12일
출생지
황해도 평산군 세곡면 운봉리
사망지
경성부 사직동
추서
건국훈장 애족장
1. 개요
2. 생애


1. 개요


한국의 독립운동가. 1990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받았다.

2. 생애


신필수는 1877년 9월 3일 황해도 평산군 세곡면 운봉리에서 태어났다. 1907년 8월 고종의 밀서를 받은 목천부사 박정빈이 황해도 유림 채홍두(蔡洪斗)·신재봉·신필수·오식영(吳植英)과 함께 거병했다. 이때 그는 박기섭을 의병장으로 추대하고 평산의 도평산에 의병진을 정한 뒤 격문을 각 지방에 돌려 4천여 명을 모았으며, 자신은 서기를 맡았다.
1907년 10월 9일 의병대는 유격전을 주축으로 활동하여 배천읍(白川邑)을 습격하여 군아분견소(軍衙分遣所)·우편국 등을 점령하여 무기를 탈취하고, 연안읍(延安邑)을 습격하는 등 작게 19차례에 걸쳐 왜군과 싸웠으나 군비가 점차 쇠퇴하여짐에 살아남은 의병들은 동삼성으로 망명하여 조국광복을 위하여 계속 활동하였다.
그는 이진룡, 심노술, 우병렬 등과 함께 동삼성으로 망명한 뒤 이소응에게 사사하면서 구국운동을 지속했으며, 귀국 후 1921년 7월 31일 경성부 사직동으로 이사하여 인왕산 밑에서 족보 편찬 및 후진 양성에 전념하다 1938년 9월 12일에 사망했다.
대한민국 정부는 1986년 신필수에게 대통령표창을 추서했고 1990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