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나톨리 댜틀로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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Анатолий Степанович Дятлов[1]
Anatoly Stepanovich Dyatlov
1931년 3월 3일 ~ 1995년 12월 13일
1. 개요
2. 여담


1. 개요


소련의 원자력 기술자. 86년 당시 체르노빌 원자력 발전소의 부소장으로서 체르노빌 원자력 발전소 폭발 사고를 일으켰다. 원자로 가동이 비상 중지됐을 때 터빈의 관성으로 얼마만큼 에너지를 얻을 수 있는지 알아 보려는 '''실험을 강행하다가 원자로가 폭발'''했다.
아나톨리 댜틀로프는 1931년 시베리아의 크라스노야르스크 출신으로 14살 때 도망치듯 고향을 떠나 모스크바에서 공학과 물리학을 전공했다. 졸업 후 콤소몰레스크 주의 잠수함 조선소에서 핵잠수함 원자로 설치 등을 맡았다. 그러다가 1978년에 체르노빌 원자력발전소로 부임하게 된다. 그리고 1986년 4월 26일 대참사 당일, 대부분의 발전소 직원들이 피폭방사선 화상으로 즉사하거나 몇 주 내에 죽은 것과 달리 그는 사고 당시 3.9 시버트의 피폭을 당했으면서도 살아남았고, 이후 소련 정부는 청문회 끝에 그를 구속 수감했다. 위 사진이 청문회 당시 그를 찍은 것이다. 소련연방법원은 그에게 '''중과실치사''' 혐의로 10년간 노동교화형을 선고했다. 그러나 5년 후인 1990년 형을 유지할 수 없을 정도로 건강이 악화되면서 사면으로 풀려났다. 이후 독일 뮌헨으로 이송돼 연명 치료를 받았다.
체르노빌 원자력 발전소 사고가 발생한 후 소련 공산당 정권은 RBMK의 결함을 숨기기 위해 사고를 인재로 조작했다. 댜틀로프가 순전히 자기 독단으로 규정을 싸그리 무시하고 비상제어장치를 껐고, 제어봉도 거의 빼냈으며, 엔지니어들의 반대와 컴퓨터 분석 결과를 무릅쓰고 안전장치가 거의 해제된 원자로 출력을 올리라고 명령했다는 게 소련의 공식 입장이었다. 사실상 전 지구적인 원자력 사고를 고의적으로 일으키려고 했다는 주장이다.
뮌헨에서 체르노빌 사고의 원인에 대한 책인 "Chernobyl. How it happened"을 썼는데, 발전소 기술자들은 잘못하지 않았으며 원자로 방식에 문제가 있었다는 변명이다.[2] 비록 적은 양이지만 그도 결국 사고의 여파를 피해가지 못하고 방사능 피폭으로 설사, 구토, 무기력증 등을 앓고 폐인으로 여생을 살다가 1995년 심장마비로 세상을 떠났다. 심장마비의 원인 역시 피폭의 후유증으로 추정된다.

2. 여담


이 양반이 원자력 관련 분야에서 일하면서 성과를 남겨야 한다는 생각에 미칠 듯이 집착했다는 말도 있는데 체르노빌 사고가 나기 몆 년 전 자신의 뒤를 이어 원자력 분야 일을 했던 아들을 백혈병으로 잃고 나서 더더욱 광적으로 원자력으로 성과를 내는거에 혈안이 되어 있었다고 한다. 14세 때 부모 곁을 떠나 혼자 살면서 아득바득 공부해서 기술자가 되고 자수성가한 인물이었다.
2019년 미국 HBO 드라마 체르노빌에서 이 인물을 맡은 배우는 '폴 리터'.

[1] 발음은 자틀로프에 가까움. 한국에서는 '아나톨리 디아틀로프' 라는 이름으로도 불린다.[2] 그 또한 RBMK(흑연 감속 비등경수 압력관형 원자로)의 결함을 몰랐을 것이며, 소련 당국에서 이를 숨기고자 ECCS를 끄라는 실험 지시를 그의 독단으로 내렸다고 조작했기에 그의 억울한 심정은 어느정도의 정상참작의 여지는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