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데마르

 


1. 개요
2. 생애


1. 개요


르퓌의 아데마르 또는 아데마르 드 몽테유(Adhémar de Monteil : 약 1045년 ~ 1098년 8월 1일)는 1087년 부터 남프랑스의 도시 르퓌앙부레(Le Puy-en-Velay)의 주교를 지냈고, 제1차 십자군 원정 당시 우르바노 2세에게 교황 대사로 임명되어 주요 지도자 중 한 명으로 십자군을 총 지휘했다. 그는 일반 성직자라기보다 말 그대로 무기를 직접 들어 기사와 병사들을 이끌고 그들과 함께 난전을 벌일 정도로 전투 기량이 뛰어났었다. 특히나 도릴라이움 전투와 안티오크 공방전에서 두각을 드러냈지만 안티오크에서 그만 병사하고 만다.

2. 생애


1045년 즈음하여 발렌티누스(Valentinois) 백작가의 귀족 가문에서 태어났다. 3명의 형제들 중 장남인 아데마르는 성직자가 되기 전 기사로 활동했다고 여겨지지만, 이 시기 기록은 거의 남아있지 않아 갑자기 교회에 투신한 이유를 정확히 알 수 없다. 그렇지만 과거의 경험으로 군사와 전투에 관해 잘 알았기 때문에 훗날 1차 십자군에서 주도적인 역할을 맡게 되었고 두 동생 기욤 드 몽테유(Guillaume de Monteil)와 위그 드 몽테유(Hugh de Monteil)가 함께 참전했다.
1080년 경에 르퓌(Le Puy)의 주교로 선출된다. 그는 교황 그레고리오 7세가 선포한 그레고리오 개혁의 열렬한 주창자였으며 그의 지지자들 가운데는 미래의 교황 우르바노 2세와 남프랑스의 실질적 지배자이자 가장 부유하고 강력한 귀족인 툴루즈의 백작 생질의 레몽도 있었다. 1086년부터 1087년 까지 예루살렘으로 직접 순례를 갔다고 전해진다. 아데마르는 1095년 8월 교황 우르바노 2세가 프랑스를 순회하다 르퓌를 방문했을 때 만났다. 이미 전부터 잘 알던 사이였던 그들은 함께 떠났고 그 해 클레르몽에서는 아데마르는 대단히 열성적으로 십자군의 필요성을 설파하는데, 공식적인 클레르몽 공의회을 치루기 전에 하던 행동들은 그가 교황가 이미 사전에 얘기가 다 끝났었음을 반증한다. 1095년 11월 27일 아데마르는 우르바노 2세에게 교황 대사라는 직함을 받았고, 이미 예루살렘으로 순례를 수행한 경험이 있었기에 십자군을 이끌게 된다.
아데마르는 교황청의 선언에 따라 군자금을 모으고 병사를 모집했으며 1096년 8월 15일 성지로 출발했다. 그 옆에는 툴루즈의 레몽이 동행했다. 레몽과 다른 지도자들은 종종 십자군의 총 사령관 직책을 가지고 서로 다투었지만, 아데마르는 죽기 전까지 항상 십자군의 영적 지도자로 인정 받았으며 십자군 대다수의 지지를 받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