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루살렘

 



ירושלים
القُد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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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스라엘 측 휘장
행정구역
이스라엘 예루살렘 구
(도심부도심만 실효지배)
팔레스타인 예루살렘 주
(동쪽의 농촌들만 실효지배)
면적
653km2(예루살렘 구)
인구
약 111만 명(예루살렘 구)
링크
이스라엘 예루살렘 시청
관련 언어별 이름들
히브리어
ירושלים
(예루샬라임)
아랍어
القُدس
(알쿠드스)
아람어
아람 문자
𐡀𐡅𐡓𐡔𐡋𐡌
(우리슐렘)
사각 문자
אורשלם
(우리슐렘)
시리아 문자
ܐܘܪܫܠܡ
(우리슐렘)
고대 그리스어
Ίεροσόλυμα
(히에로솔뤼마)[1]
그리스어
Ιερουσαλήμ
(예루살림)
고전 라틴어
Hierosolyma
(히에로솔뤼마)
교회 라틴어
Ierusalem
(예루살렘)
'''위치'''

1. 개요
2. 지리
3. 행정구역
4. 구시가지
4.1. 무슬림 구역
4.2. 기독교인 구역
4.3. 아르메니아인 구역
4.4. 유대인 구역
4.6. 모로코인 구역
6. 국제사회의 입장
7. 대중문화에서
8. 사건사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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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레반트 지역에 있는 도시이자, 아브라함 계통의 종교(유대교, 크리스트교, 이슬람교)의 성지.
오늘날 세계에서 가장 큰 관심을 받는 도시들 가운데 하나다. 현재의 예루살렘은 이스라엘수도로서 서예루살렘(실제로는 행정수도)과 팔레스타인의 기본법(Basic Law)에서 규정한 법률상의 수도로서 동예루살렘(실제로는 농촌 마을들의 집합)으로 나눌 수가 있다. 이스라엘 중앙통계국의 2018년도 이스라엘 통계초록(Statistical Abstract of Israel 2018)에 따르면, 이스라엘 국가의 영토에 속한 예루살렘 구(區)의 인구는 약 111만 명에 이르렀다.
서예루살렘의 이스라엘 민정관청은 도심부도심을 포함한 '''예루살렘 시가지 전체를 다스리는''' 반면에 동예루살렘의 팔레스타인 민정관청은 농촌달동네를 포함한 '''동쪽 방면의 교외만 다스리고''' 있다.

2. 지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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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이 귀한 이스라엘 본토에서 나라의 수도로 삼을 만한 최적의 위치는 예루살렘 지역이다. 고대 시대의 지리를 고려하면, 예루살렘은 오랫동안 식수를 공급하면서 험한 산지에 의지하여 방어전을 펼칠 수가 있는 도시들 가운데 하나다. 소규모의 무력으로 요르단강 계곡을 따라가는 무역로와 지중해 바닷가를 따라가는 무역로를 통제하는[2] 매우 특별한 장점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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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날에는 이스라엘수자원공사(מקורות חברת מים בע"מ)가 바닷물의 담수화를 꾀하면서 골란 고원물을 끌어와 전국 대수로(המוביל הארצי)를 통해서 하이파나츠라트, 텔아비브와 예루살렘, 베르셰바에일라트에 어마어마한 양의 식수(食水)를 공급하고 있다.

3. 행정구역


서(西)예루살렘은 1960년대에 가나안을 제패한 이스라엘 정부가 도심부도심을 실효지배하는 행정수도이며, 동(東)예루살렘은 1990년대에 비유대인 지역의 통치권을 인수한 팔레스타인국(國)이[3] 동쪽의 농촌들을 실효지배하는 법률상의 수도이다. 여기서 다루는 서예루살렘과 동예루살렘은 오늘날의 양국간(이스라엘 vs 팔레스타인) 행정구역을 가리키는 낱말이며, 유엔총회에서 거론하는 서예루살렘과 동예루살렘은 옛날의 양국간(이스라엘 vs 요르단) 휴전선이 지나가는 공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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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스라엘의 예루살렘 구(區) : 이스라엘 국가의 행정수도이며, 예루살렘 구(區)의 예루살렘 시(市)에 정부청사 단지를 차례로 완공했다.
1948년부터 1977년까지 텔아비브가 이스라엘의 임시수도였다. 6일 전쟁에서 승리한 이스라엘 정부는 예루살렘을 재건하는 도시계획을 수립하여 1968년부터 1992년까지 국회의사당과 중앙정부청사와 대법원 및 복지부처와 공안기관(공안부+경찰청+소방청+교도청)과 이스라엘은행을[4] 차례로 이전했다. 1977년에 이르면 예루살렘이 명실상부한 행정수도로 탈바꿈했다. 그러나 국내외의 정세가 불안하기 때문에 가까운 미래의 총력전에 대비하여 경제부처와 방위기관(국방부+육군청+해군청+공군청) 및 국유기업증권거래소는 여전히 텔아비브에 있다. 아래에서 언급하는 국제법상의 이유로 각국 대사관도 텔아비브 시내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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팔레스타인분리독립을 지지하는 비유대인들은 예루살렘이 이스라엘 국가의 정식 수도라는 현실을 인정하지 않고 있다. 요르단강 서안지구를 다스리는 팔레스타인국(國)도 예루살렘에 천도하고 싶은데, 이에 맞서 이스라엘 정부는 공안부 본부와 경찰청 본청을 예루살렘에 이전하고, 신 베트헌병대보통경찰국경경찰을 총동원해 비유대인들의 반체제운동을 무자비하게 탄압하고 있다. 또한 이스라엘 내무부와 예루살렘 시청에서 근무하는 유대인 도시계획 전문가들은 대(大)예루살렘 메트로폴리스를 조영하는 도시계획에 심혈을 기울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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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스라엘 치하에서 33년간 여의도공항처럼 운영한 예루살렘 국제공항은 확장이 불가능해 결국 폐쇄했지만, 예루살렘 구(區)의 도시철도 기능을 대행하고 있는 이스라엘철도공사(רכבת ישראל בע"מ)의 광역철도를 타거나 시외버스를 타고 벤 구리온 국제공항텔아비브에 갈 수가 있으며, 예루살렘 경전철시내버스가 통근과 관광에 매우 큰 편의를 제공하고 있다. 이스라엘 본토의 예루살렘 시내와 전용 도로망으로 연결되어 있는 마알레 아두밈미쇼르 아두밈크파르 아두밈유대아 사마리아 구(區)에 속한 유대인 정착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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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팔레스타인의 예루살렘 주(州) : 팔레스타인국(國)의 기본법(Basic Law)에서 규정한 법률상의 수도인데, 그냥 농촌 마을들의 집합이다.
요르단 왕국이 동예루살렘 지역에 설치한 예루살렘 주(州)와 예루살렘 시(市)는 1967년의 6일 전쟁으로 해체되었고, 곧이어 이스라엘 국가는 요르단강 서안지구가자 지구골란 고원시나이 반도를 군정 통치 지구(국방부↔헌병대↔비유대인 도시)와 민정 통치 지구(공안부↔경찰서↔유대인 정착촌)로 나누어 다스렸다. 1993년의 오슬로 협정에 따라 비유대인 지역의 통치권을 인수한 팔레스타인국(國)은 요르단 왕국의 지방행정을 복고했지만, 동예루살렘 지역은 예루살렘 주(州)만 복고했으며, 팔레스타인 입법평의회에 우편투표만 가능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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팔레스타인을 지지하는 이슬람 문화권에서는 예루살렘을 아랍어로 '신성한 곳'이란 의미인 알 쿠드스(Al-Quds=القدس), 정확히는 알-쿠드스 아쉬-샤리프(Al-Quds Ash-Sharif=القدس اششاريف)라고 부른다. 여기서 아쉬-샤리프(Ash-Sharif=اششاريف)는 성전산의 명칭이기도 하다. 라마단 마지막 금요일인 ‘쿠드스의 날’에는 이슬람권의 상당수 지역에서 팔레스타인의 분리독립을 지지하는 행사와 반미 집회가 열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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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요 지역으로는 예루살렘 시가지의 동쪽 방향으로 교외에 위치한 아부 디스가 유명한데, 거기에 현지 주민들이 많이 진학하는 알 쿠드스 대학교의 메인 캠퍼스(Main Campus)가 있다. 더 가디언(영국의 일간지)의 보도에 따르면, 미국 트럼프 행정부는 예루살렘을 이스라엘 국가의 수도라고 승인하면서 제프리 쿠슈너(트럼프의 사위)를 통해 "요르단강 서안지구의 곳곳에 있는 이스라엘 정착촌을 인정하면서 아부 디스(Abu Dis=أبو ديس‎)를 팔레스타인국(國)의 수도로 받아들이라는 협상안을 제시했다고 한다.

4. 구시가지



'''유네스코 세계유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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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
한국어
예루살렘 옛 시가지와 성곽†[5]
영어
Old City of Jerusalem and Its Walls
아랍어
مدينة القدس القديمة وأسوارها
프랑스어
Vieille ville de Jérusalem et ses remparts
국가·위치
예루살렘(요르단이 제안한 유적)

등재유형
문화유산
등재연도
1981년
등재기준
(ii),[6] (iii),[7] (vi)[8]
지정번호
148
예루살렘 안에 있는, 성벽으로 둘러싸인 옛 시가. 면적은 0.9km2이고, 6일 전쟁 이전에는 요르단령 동예루살렘에 속해 있었다. 1860년까지는 여기가 예루살렘의 전부였다. 지금의 성벽은 16세기, 그러니까 오스만 제국의 술레이만 1세 때 다시 지어진 것이라고 한다. 성의 출입구인 11개의 문 중 7개는 지금도 개방되어 있다. 지금의 예루살렘 구시가는 '무슬림 구역', '기독교인 구역', '유대인 구역', '아르메니아인 구역'으로 4분할되어 있다.
1981년 유네스코 세계유산에 지정되었는데, 어느 나라의 유산인지는 밝히지 않고 그저 도시명과 함께 '요르단이 제안한 유적(Site proposed by Jordan)'이라고 덧붙였다. 실제 예루살렘의 세계유산 지정은 요르단이 해서 이뤄졌는데 당시 미국 정부는 예루살렘은 이스라엘이 실효 지배하고 있으므로 요르단에게는 신청 자격이 없다며 반대했지만 통과되었다.
아울러 1982년 이래 '위험에 처한 세계유산' 중 한 곳이기도 하다. 너무 많은 관광객, 난개발, 도시 관리 정책 미흡 등이 지적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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왼쪽 위부터 시계방향으로 기독교인 구역, 무슬림 구역, 성전산, 유대인 구역, 아르메니아인 구역이다.
6번 문인 Dung Gate는 말 그대로 "똥 문(門)"을 의미한다. 품위없게 똥이라고 할 수는 없어서 분문(糞門)이라고 돌려 번역하기도 한다.

4.1. 무슬림 구역


구시가의 북동쪽 사분면에 있는, 가장 넓고 인구가 많은 구역. 특히 예루살렘 인구의 3분의 1이 아랍인이며 아랍인 인구는 계속 증가하고 있다. 무슬림 구역이기는 하지만 기독교 관련 종교시설도 꽤 있는데, 성 안나 교회, 채찍질 교회, 시온의 자매 수녀원 등이 대표적인 기독교 관련 종교시설이다.

4.2. 기독교인 구역


구시가의 북서쪽 사분면에 있다. 무리스탄 시장(市場)이 있고, 예수십자가에 못박힌 뒤 그 시신이 묻혔던 장소로 기독교 성지 중 하나가 된 거룩한 무덤 성당골고타 언덕이 이곳에 있다. 그 외에도 라틴 총대주교좌, 정교회 총대주교좌, 세례자 요한 성당 등의 명소가 있다.
참고로 이 거룩한 무덤 성당을 참고하면 그야말로 성지에서 각 기독교 종파의 분열과 갈등을 실감할 수 있다. 기 들릴이 그린 만화 "굿모닝 예루살렘"을 보면 이스라엘에서 이 건물 안에서도 각 기독교 종파들이 뒤엉켜 싸움질하는 게 나와 비꼰다.

4.3. 아르메니아인 구역


구시가의 남서쪽 사분면에 있고, 면적이 가장 작다. 상당히 유서깊은 구역으로 아르메니아가 세계 최초로 기독교를 공인하고 나서 아르메니아 수도사들이 성지인 예루살렘에 정착해 형성한 디아스포라를 기원으로 한다.
아르메니아인기독교 신자이기는 하지만 어쩐지 별도의 구역으로 구분되고 있다. 이것은 예루살렘 내의 구역들이 확정되던 오스만 제국 시대에 정교회 신자들(룸)과 아르메니아인을 서로 다른 밀레트로 구분했기 때문이다. [9] 또한 예루살렘에 있는 기독교인들은 대부분 팔레스타인인들인데 반해 여기만 아르메니아인이라서 생긴 민족적인 이질감도 구역 분리에 한몫했다. 그러나 아르메니아 사도 교회의 총대주교좌가 위치하고 있기 때문에 중요성 면에서는 뒤지지 않는다. 그 외에 성 야고보 대성당, 다윗 탑과 성채 등의 명소가 있다.

4.4. 유대인 구역


구시가의 남동쪽 사분면에 있다. 2004년 기준 인구는 2,348명이었다. 통곡의 벽은 유대인의 성지로, 이 벽을 향해 기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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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의 '''연두색 선'''은 6일 전쟁 직전의 국경선이고, '''보라색 선'''은 2003년의 제네바 계획(Geneva Initiative)에서 제안된 국경선이다. 예전에 구시가 전체가 요르단령 동예루살렘 시청의 행정구역에 속했고, 주위의 다른 구역들이 비유대인들의 집중 거주 지역이기 때문에 제네바 계획에서는 구시가에서 여기만 따로 분리해서 옛날의 서예루살렘에 딸린 땅거스러미로 편입을 고려했다. 현재 유대인 구역에서 옛날의 서예루살렘으로 바로 통하는 곳은 시온문(Zion Gate)밖에 없다.

4.5. 성전산



이슬람의 성지인 알 아크사 모스크, 바위의 돔이 있다. 종교적인 분쟁과 폭동을 우려해 출입이 제한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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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네스코 세계유산 등재기념 우표. 발행 국가가 세인트빈센트 그레나딘이다.

4.6. 모로코인 구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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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는 사라진 구역. 12세기 말, 예루살렘을 십자군으로부터 탈환한 살라흐 앗 딘의 장남 알 아프달 알리의 후원으로 마련되었다. 무슬림 구역의 남쪽에, 유대인 구역과 성전산 사이에 위치해 있었다. 마그레브(북서 아프리카)와 안달루스(이베리아 반도) 출신의 무슬림들이 거주하였다. 하지만 6일 전쟁 직후에 이스라엘 군부가 통곡의 벽 광장의 터를 닦기 위해서 모로코인 구역을 싸그리 철거했으며, 이때 많은 이슬람 유적들이 파괴되었다. 대표적으로 아이유브 왕조 대에 지어진 셰이크 이드 사원과 무함마드가 천국 여행을 할 때에 탔던 말 부라크를 매어 두었다는 곳에 세워진 작은 사원, 맘루크 왕조 대에 지어진 파크리야 마드라사 등이 있다. 곧이어 모로코인 공동체는 예루살렘의 무슬림 구역이나 난민 캠프로 흩어졌고, 일부는 모로코 국왕 하산 2세의 초청으로 망명하기도 하였다. 지금도 그들은 없어진 구역의 무크타르(촌장)을 선출한다고 전해진다.

5. 역사




6. 국제사회의 입장


영국령 팔레스타인위임통치 철폐와 함께 가나안에서 유대인들이 이스라엘 국가를 건국하기 직전에 유엔 총회가 결의한 '''유엔 총회 결의안 181호'''에 의하면 예루살렘은 둘 중 어느 쪽의 영토도 아닌 별개의 구역으로 유엔에서 관리하기로 했었다. 그러나 1948년의 이스라엘 건국전쟁이 발발하여 무의미하게 되었으니, 이스라엘과 요르단이 예루살렘을 동서로 분할하여 다스리는 '''유엔 총회 결의안 194호'''로 대체했다. 1967년의 6일 전쟁으로 이스라엘 정부가 예루살렘 시(市)를 동서통일해 예루살렘 구(區)를 창설했으며, 1980년에 이스라엘 국회에서 '''예루살렘 기본법'''을 입법하자, 유엔 안전보장이사회가 결의한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결의안 478호'''에 따라 예루살렘에 상주하는 대사급 외교공관들의 철수를 요구했다.
유엔 총회유엔 안전보장이사회의 결의에 따라 예루살렘은 국제법상으로 이스라엘의 영토도 아니고, 팔레스타인의 영토도 아니다. 그래서 대부분의 나라들은 예루살렘이 이스라엘 국가의 수도라는 현실을 인정하지 않았으며, 이스라엘 주재 대사관들은 예루살렘이 아닌 옛 임시수도 텔아비브에 있다. 이스라엘을 열심히 옹호하는 미국도 아랍권의 엄청난 반발[10]을 우려해 1995년 외교공관 이전을 결정해놓고 안전상의 이유로 지금까지 미뤄왔었다. 그런데 2017년 12월 6일,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가 예루살렘이 이스라엘 국가의 수도라는 현실을 인정하면서 주이스라엘 미국 대사관의 이전을 추진했다. 예루살렘은 이스라엘의 수도' 美 이르면 다음 주 공식 인정 이에 대해서는 예루살렘 선언 문서 참조. 2018년 이스라엘 건국 70주년 맞이 겸 5월 14일에 옮겼다. 미국의 영향을 많이 받는 중남미 일부 소국들도 주이스라엘 대사관을 예루살렘으로 옮겼다.
미국의 예루살렘 선언 바로 직전에도, 비록 반쪽이긴 하지만 예루살렘을 이스라엘의 수도로 공식 인정한 국가가 있는데 바로 러시아다. 러시아는 2017년 4월부터 예루살렘을 이스라엘의 수도로 공식 인정하였다. '''그러나''' 이는 서예루살렘에만 한정되며, 러시아는 동예루살렘을 팔레스타인의 수도로 인정하는 2개 국가 해법을 지지한다는 의미로 예루살렘을 인정한 것이다.
현재까지 예루살렘을 이스라엘 국가의 정식 수도로 인정한 나라들은 미국, 영국, 러시아, 프랑스, 스페인, 독일, 이탈리아, 그리스, 터키, 네덜란드, 벨기에, 덴마크, 스웨덴, 핀란드, 체코, 슬로바키아, 헝가리, 루마니아, 몰도바, 세르비아, 코소보, 그루지야, 필리핀, 호주, 가나, 코트디부아르, 토고, 적도기니, 콩고민주공화국, 말라위, 탄자니아, 케냐, 에티오피아, 바누아투, 나우루, 과테말라, 온두라스, 엘살바도르, 코스타리카, 파나마, 아이티, 도미니카 공화국, 콜롬비아, 에콰도르, 베네수엘라, 볼리비아, 칠레, 브라질, 파라과이, 우루과이, 아르헨티나를 포함하여 약 50개국에 이르렀다. 여기서 미국과 체코와 나우루 및 바누아투와 과테말라와 온두라스를 제외한 나머지 나라들은 '서(西)예루살렘만 인정'하는 식으로 예루살렘을 자국의 수도로 인정받으려는 이스라엘의 욕구도 일정부분 들어주면서, 아직 인정하지 않은 '동(東)예루살렘의 여지'를 남겨둠으로서 중동 지역의 반발도 접수하고 있다는 정치적 메시지를 남기기 위한 형식적인 인정이다.

7. 대중문화에서


황금의 예루살렘 (ירושלים של זהב)‭. 나오미 셰메르가 작사/작곡한 곡으로서 유대인들이 가장 즐겨부르는 국민 가요이다. 러시아의 카추샤와 위치가 비슷하다고 보면 될 듯. 영화 쉰들러 리스트에 삽입됨으로써 세계적으로 유명해졌다. 이 노래는 1967년에 만들어졌는데, 2주 뒤에 6일 전쟁이 발발하여 예루살렘이 요르단에서 이스라엘로 넘어온다.

"예루살렘이란 게 뭡니까? (What is Jerusalem worth?)"

'''"아무것도 아니라네. (Nothing.)"'''

짧게 답하고 자신의 진영으로 발걸음을 옮기던 살라딘은 이내 다시 돌아선다.

'''"모든 것이기도 하지! (Everything!)"'''

- 영화 킹덤 오브 헤븐에서 기사 이벨린의 발리앙살라흐 앗 딘대화.

이 대사는 짧은 대사지만 영화 속에서 예루살렘 시민들을 지키려고 치열한 싸움을 벌이다가 결국 예루살렘을 포기하고 십자군가톨릭 교도들의 안전한 후퇴를 보장받는 발리앙과, 마침내 예루살렘을 점령하고 승자의 자비를 베푸는 살라딘 사이에서 오고 간 명대사. 질문하는 발리앙의 대사도 '예루살렘을 차지하기 위해 이런 전쟁을 할 가치가 있어요?'라는 의미와 '당신에게 예루살렘의 가치가 뭐죠?'라는 두 가지 의미로 받아들여 질 수 있고, 이에 대한 살라딘의 대답도 '아무것도 없지'였으나 얼마 뒤 '모든 것이기도 하고!'라고 덧붙여 발리앙의 두 가지 질문에 모두 답한다. 역사적으로 예루살렘이 가지는 가치를 단 한방에 정리하는 문답이다.

8. 사건사고


예식장에서 대참사가 일어나는 안타까운 사건도 있었다. 자세한 내용은 예루살렘 결혼식장 붕괴사고 문서 참조.

[1] 정교회 전례에서는 똑같이 쓰고 중세 그리스어식으로 '예로솔리마'라고 읽는다.[2] 고대 시대의 가나안에 대하여 자세한 내용을 알고 싶은 사람은 이스라엘 고고학자 요하난 아하로니구약성서지리학을 시군구 도서관과 대학교 도서관에 직접 찾아가 빌려 읽을 것.[3] 1978년의 캠프 데이비드 협정과 1993년의 오슬로 협정을 고려하면서 PLO의 민정관청을 개조한 팔레스타인 자치정부영사급 외교가 가능한 2010년대의 스코틀랜드와 비슷했지만, 오늘날의 팔레스타인국(國)은 최근에 유엔총회의 옵저버로 가입한 팔레스타인 자치정부의 새로운 현실을 반영하는 칭호로서 공사급 외교가 가능한 1920년대의 아일랜드 자유국과 비슷하다.[4] ㉠ 국회의사당: 6일 전쟁 이전에는 텔아비브와 예루살렘의 다양한 건물을 빌려서 국회를 열었다. 1966년에 서예루살렘에 현재의 국회의사당을 완공했지만, 국회의원들의 의정활동은 서예루살렘의 열악한 도로교통망과 전기통신망 덕택에 불완전한 수준에 머무르고 있었다. 때마침 6일 전쟁은 상전벽해의 기회였으니, 요르단군의 포격으로 파손된 부분들을 수리하면서 대규모로 확장하는 개축 사업을 재빠르게 실행했으며, 텔아비브와 예루살렘을 연결하는 고속도로를 착공하여 최단기간에 완공했기 때문에 이스라엘 국회의 예루살렘 시대는 1968년에야 개막했다. ㉡ 중앙정부청사: 1967년까지 서예루살렘 시내의 모든 관청들은 의전 위주의 작은 건물들 뿐이었다. 1968년부터 예전의 관청들을 차례로 철거하고 웅장한 관청들을 새로 지었다. ㉢ 대법원: 새로운 청사를 지을 돈이 없는 탓에 오랫동안 남의 부동산을 월세로 빌렸다.[5] 위험에 처한 세계유산[6] 오랜 세월에 걸쳐 또는 세계의 일정 문화권 내에서 건축이나 기술 발전, 기념물 제작, 도시 계획이나 조경 디자인에 있어 인간 가치의 중요한 교환을 반영.[7] 현존하거나 이미 사라진 문화적 전통이나 문명의 독보적 또는 적어도 특출한 증거일 것.[8] 사건이나 실존하는 전통, 사상이나 신조, 보편적 중요성이 탁월한 예술 및 문학작품과 직접 또는 가시적으로 연관될 것.[9] 참고로 오스만 제국 시대의 도시들은 지금은 거의 그 흔적이 남아있지 않지만 당시의 밀레트들이 거주하던 구역들을 서로 나누어놓은 모습을 볼 수 있다. 당장 이스탄불만 하더라도 테오도시오스 성곽 이내의 구시가지 남서쪽은 아르메니아 구역, 북서쪽은 정교회 구역, 중부와 동부는 무슬림 구역, 그리고 강 건너 갈라타는 가톨릭 신자들과 정교회 신자들이 거주했다.[10] 사이가 그렇게 나쁜 사우디와 이란조차도 인정할 수 없다며 둘이서 공동대응을 할 정도였다. 이스라엘에 한해선 시아파와 수니파의 오래된 원한관계도 잠시 봉합될 정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