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베노 나카마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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阿倍 仲麻呂
698~770
일본 나라 시대의 견당유학생.
698년 지금의 나라 현에서 태어났다. 어렸을때부터 학문에 뛰어나 제9차 견당사를 따라 당나라의 수도 장안으로 들어갔다가 죽을 때까지 당나라에서 살았다. 그는 당나라에서 공부하여 과거에 급제, 당나라 현종을 가까이서 모셨으며 외국인 유학생 출신으로 종 3품인 비서감, 산기상시 같은 고위직을 역임했다. 그리고 그는 관료 생활을 하면서 시선 이백, 시불 왕유, 저광희 같은 시인, 명사들과 교분을 쌓고 중국인 친구들과 어울렸다.
장년의 나이가 되어 고국으로 돌아가고 싶었던 나카마로는 당의 문물을 배우러 온 일본 견당사의 배를 타고 고향으로 돌아가려 했으나, 타고 있던 배가 난파되어 베트남에 표류하게 되었다. 나카마로는 견당사 정사인 후지와라노 키요카와와 함께 겨우겨우 장안으로 돌아갔으며 그 후로는 일본으로 돌아가는 것을 단념하고, 당 조정에 청원해 진남도호로서 베트남의 장관이 되었다.
재미있는 점은 그가 타고 갔던 배가 베트남에 표류하자, 장안에는 아베노 나카마로가 해상 사고로 죽었다는 잘못된 소문이 퍼졌다. 소식을 전해 들은 나카마로의 친구들은 오랜 친구의 죽음을 애도했고, 특히 나카마로와 친하게 지냈던 이백은 <곡조경형>이란 시를 지어 나카마로의 죽음을 애도했다.
阿倍 仲麻呂
698~770
1. 소개
일본 나라 시대의 견당유학생.
698년 지금의 나라 현에서 태어났다. 어렸을때부터 학문에 뛰어나 제9차 견당사를 따라 당나라의 수도 장안으로 들어갔다가 죽을 때까지 당나라에서 살았다. 그는 당나라에서 공부하여 과거에 급제, 당나라 현종을 가까이서 모셨으며 외국인 유학생 출신으로 종 3품인 비서감, 산기상시 같은 고위직을 역임했다. 그리고 그는 관료 생활을 하면서 시선 이백, 시불 왕유, 저광희 같은 시인, 명사들과 교분을 쌓고 중국인 친구들과 어울렸다.
장년의 나이가 되어 고국으로 돌아가고 싶었던 나카마로는 당의 문물을 배우러 온 일본 견당사의 배를 타고 고향으로 돌아가려 했으나, 타고 있던 배가 난파되어 베트남에 표류하게 되었다. 나카마로는 견당사 정사인 후지와라노 키요카와와 함께 겨우겨우 장안으로 돌아갔으며 그 후로는 일본으로 돌아가는 것을 단념하고, 당 조정에 청원해 진남도호로서 베트남의 장관이 되었다.
재미있는 점은 그가 타고 갔던 배가 베트남에 표류하자, 장안에는 아베노 나카마로가 해상 사고로 죽었다는 잘못된 소문이 퍼졌다. 소식을 전해 들은 나카마로의 친구들은 오랜 친구의 죽음을 애도했고, 특히 나카마로와 친하게 지냈던 이백은 <곡조경형>이란 시를 지어 나카마로의 죽음을 애도했다.
2. 백인일수
'''제7번 아베노 나카마로(阿倍仲麻呂)'''
天 の原 ふりさけみれば春日 なる三笠 の山 に いでし月 かも드넓은 하늘 우러러 바라보니 뜬 저 달은 고향산에서 바라 본 달과 같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