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비지

 

阿非知
생몰년도 미상.
1. 개요
2. 설화
3. 의문점


1. 개요


백제의 기술자. 황룡사 찰주본기[1]에 따르면 아비(阿非)로 기록되어 있다. 643년 신라황룡사 9층 목탑을 세우는데 참여했다고 기록되어 있다. 아비지는 신라의 요청을 수락한 백제가 파견한 기술자로 645년부터 소장(小匠) 200여명을 거느리고 완공한 것으로 되어있다.

2. 설화


삼국유사에서 아비지가 처음 찰주를 세운 날 밤, 그는 백제가 멸망하는 꿈을 꾸고 일손을 놓았다고 한다. 그런데 갑자기 큰 지진이 나더니 한 노승과 장사가 금당문에서 나와 기둥을 세우고 홀연히 사라지는 것을 목격한 아비지는 후회하면서 탑을 완공시켰다고 한다.

3. 의문점


그런데 이 당시 백제신라는 철전지 원수사이였다. 아무리 자장 법사의 요청을 받아들였다지만, 불과 1년 전 신라는 백제에게 미후성, 대야성 등 40여성을 뺏기고 이듬해 당항성이 위협당하는 등 수세에 몰려있었다.
다만 삼국이 서로 사이가 나빴다고 해도 불교라는 종교적 가치는 공유하고 있었기 때문에[2] 군사시설도 아닌 불교 시설물을 만들기 위해서라는 목적으로 백제에서 장인 파견을 허용했을 가능성도 있다. 당장 현대 남북한도 사이가 나쁘지만 개성 유적지를 공동으로 발굴하거나 스포츠의 A매치같은 비정치적 문화교류는 허용하는 경우도 있는 것과 같다. 물론 황룡사 목탑은 백제를 제압하겠다는 속뜻이 있었다지만 아비지가 꿈에서 보았다는 걸 봐선 처음엔 신라가 숨겨서 몰랐다고 볼 여지도 있다.
한편 삼국유사와 달리 황룡사 찰주본기에선 백제에 기술자를 '''요청한 기록이 없다.''' 이로 보아 아비지는 백제에서 신라로 끌려온 포로였을 수 있지만 기록이 거의 없어 확실치 않다.
[1] 남북국 시대인 872년 제작된 금문.[2] 그래서 이 시대에 유독 승려가 여러 나라를 오가며 여행, 유학하는 것은 자유로운 편이었다. 그래서 승려가 스파이나 정보통으로 이용되는 경우도 많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