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우렐리온 솔/배경

 


출처
1. 단문 배경
2. 장문 배경
3. 두 개의 새벽
4. 구 배경
4.1. 단문 배경
4.2. 장문 배경


1. 단문 배경


"웅크리고. 찬양하고. 애원하지. 그래, 내가 기대했던 대로다.”
아우렐리온 솔은 경이로운 별들을 손수 빚어 한때 텅 비어 있던 광활한 천상계를 수놓았지만 타곤의 성위들에게 속아 자신이 창조한 태양의 비밀을 빼앗겼다. 그의 막강한 힘은 보잘것없는 룬테라를 지키는 불멸의 신성전사를 만드는 데 사용되었다. 다시 우주를 지배하려는 열망에 불타는 아우렐리온 솔은 자유를 되찾기 위해서라면 자신이 창조한 별들을 하늘에서 없앨 각오마저 되어 있다.

2. 장문 배경


밤하늘에 나타난 혜성은 보통 격변과 혼란을 알리는 불길한 징조라고들 한다. 이렇게 '불타는 전령'이 나타날 때면 오래된 문명이 무너지고 새로운 제국이 세워지며 별들마저도 하늘에서 사라진다고 한다.
그러나 진실은 그보다 더 우려스러운 것일지 모른다.
아우렐리온 솔이라는 이름으로 알려진 전능한 존재는 룬테라의 필멸자 종족이 생겨나기 전부터 이미 아주 오래된 생명체였다. 창조의 첫 입김으로 태어난 그와 그 같은 존재들은 텅 비어 있는 광활한 태초의 천상계를 어슬렁거리며 보는 이에게 성취와 기쁨을 가져다주는, 반짝이는 빛의 띠라는 경이로 막대한 넓이의 빈 캔버스를 채우고자 했다.
아우렐리온 솔은 돌아다니며 자신과 대등한 존재를 거의 만나지 못했다. 불멸의 성위들은 감정이나 호기심이라곤 없는 존재라 창조의 본질을 우스울 만큼 자기중심적으로 해석하는 데 만족할 뿐 거의 도움이 되지 않았다.
그러던 어느 날, 영겁의 세월이 흐르기 전 자신이 만들었던 특별할 것 없는 태양의 햇볕을 쬐던 그는 무언가를 발견했다. 세상. 새로운 세계였다.
누가, 어떤 이유로 만든 세상인지는 알 수 없었다. 그러나 자신이 만들지 않았다는 것만은 확실했다.
그 세상에 이상하리만치 열중한 듯한 성위들은 그에게 가까이 오라고 애원했다. 이곳에는 생명과 마법뿐 아니라 자신들을 인도할 위대한 존재를 기다리는 막 꽃피운 문명이 있다는 것이었다. 새 추종 세력의 등장에 의기양양해진 아우렐리온 솔은 자신을 향한 찬사를 만끽하기 위해 별에서 온 무시무시한 거대 용의 모습으로 강림했다.
타곤이라는 보잘것없는 땅의 자그마한 거주자들은 그가 선물한 황금빛 태양의 이름으로 그를 부르기 시작했다. 성위들은 그들에게 보답으로 적절한 공물을 가져오라 지시했다. 필멸자들은 가장 높은 산의 정상에 올라 아우렐리온 솔에게 찬란하게 빛나는 왕관을 바쳤다. 세심하고 정교한 마법으로 제작한 왕관에는 천상계의 신비로운 무늬가 새겨져 있었다.
그러나 왕관이 이마에 닿는 순간, 아우렐리온 솔은 이것이 선물이 아니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저주받은 왕관은 그조차 어쩌지 못할 정도로 어마어마한 힘을 자랑하며 머리를 꽉 죄었다. 아우렐리온 솔은 자신과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열등한 존재들이 태양과 그 창조에 관한 지식을 빼앗아 들여다보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설상가상으로 왕관의 힘은 그가 다시 이 세상에 가까이 오지 못하도록 천상으로 밀어냈다.
그는 간사한 타곤의 성위들이 필멸자들에게 위대하게 빛나는 원판을 만들도록 지시하는 모습을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 성위들은 이 원판으로 그가 지닌 천상의 힘을 빼앗아 불멸의 신성전사 군단을 만들며 훗날의 충돌에 대비했다.
격노한 아우렐리온 솔은 하늘의 별들이 보살핌을 받지 못해 서서히 빛을 잃는 모습을 보고 왕관의 굴레에서 벗어나기 위해 안간힘을 썼다. 우주에 빛을 선사한 것은 바로 그였다! 성위와 그 천한 졸개 따위에 얽매일 이유가 없었다. 그는 태양 원판이 무너지는 것을 보고 기쁨에 차 포효했지만, 이내 더 강력한 새 원판이 그 자리를 대신하는 모습을 볼 수밖에 없었다. 결국 자신의 운명에 굴복한 그는 신성전사들이 경쟁자를, 기괴한 소리를 내는 순수한 암흑의 생물을, 마침내 서로를 쓰러뜨리는 광경을 지켜봤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세상은 끊임없는 마법의 재앙으로 황폐해졌다. 아우렐리온 솔은 타곤과 증오스러운 성위들이 마침내 무방비 상태가 되었다는 사실을 깨닫고 조심스레 접근을 시도했다. 자신을 얽매던 마법이 약해지고 있었다. 왕관에서 금 쪼가리가 떨어지며 하늘에서 혜성처럼 맹렬히 쏟아지기 시작했다.
곧 자유를 얻어 복수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한 가닥 가능성에 들뜬 아우렐리온 솔에게 룬테라는 터질 듯한 분노의 대상에 불과하다. 이 세계에서야말로 우주의 균형은 다시 한번 그에게 유리하게 기울 것이다. 우주는 감히 별의 창조자가 지닌 힘을 훔친 자들의 최후가 어떤 것인지 목격하게 되리라.

3. 두 개의 새벽


친숙한 이 세계의 태양은 아직 지평선 너머에 숨어 있다. 거칠고 다듬어지지 않은 대지가 그 아래 펼쳐져 있다. 산줄기들이 일그러진 손가락처럼 잡목으로 덮인 땅을 요새와도 같은 형세로 둘러싸고 있다. 저걸 궁전이라 할 수 있을까 싶은 건물들이, 아주 땅딸막한 언덕배기만을 겨우 굽어보고 있다. 행성의 만곡은 소수의 거주민만이 볼까 말까 한 고요하고 품위 있는 모습으로 별들을 맞이한다. 이들은 지구 전역에 흩어져 있고 조금이라도 자연의 이치를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되는 것은 맹목적으로 부여잡는다. 따라서 이들이 자신들이 처한 곤경을 전혀 인지하지 못하고 정복된다는 것은 결코 놀랄 일이 아니다.
이미 운명이 정해놓은 목적지를 향해 전속력으로 달리는 내 몸을 타고 흐르는 맹렬한 광채가 아래 세상을 밝힌다. 투쟁하는 생명들, 겁에 질린 생명들, 행복에 찬 생명들이 헛되이 안전한 틈새를 찾아 숨어든다. 아, 머리 위를 전속력으로 날아가는 나를 가리키는 저들의 모습이란. 예언자, 혜성, 괴물, 신, 악마... 그들이 나를 부르는 갖가지 이름은 익히 들어왔다. 모두 틀린 이름들이다.
너른 사막의 저 미개인들 중 그나마 가장 문명을 갖춘 도시에서 익숙한 마법의 기운을 언뜻 느낀다. 거대한 태양 원판을 만들고 있는 저 광경을 보라. 내가 지나간 길을 바라보며 힘들게 일하던 불쌍한 노예들이 머리를 두들기고 옷을 찢어발긴다. 이들의 잔인한 주인들은 전속력으로 지나가는 불처럼 보이는 나를 틀림없이 상서로운 징조라 생각하겠지. 내가 지나가는 광경은 투박한 상형문자로 돌에 새겨져 거대한 혜성에 대한 경의, 자신들의 성스러운 일을 축복하는 천신의 은총 등으로 남을 것이다. 태양 원판의 유일한 목적은 태양의 위엄을 저 살덩어리 인간 형상들 중 제일 '유명한' 것에 불어넣어 이 행성에 꼭 필요한 존재, 도저히 참아줄 수 없는 신적 존재로 변모시키는 것이다. 이러한 시도는 여지없이 제 꾀에 제가 당하는 꼴로 끝날 것이다. 뭐 그래도 잠시, 그러니까 아마 몇 천 년 정도는 그 신들이 유지될 것이다. 그들이 몰락하면 다시 다른 것들로 대체되겠지.
고독한 황야 너머, 초목이 군데군데 섞인 갈색 언덕 위로 빠르게 날아가는 내 뒤를 따라 어둠이 온다. 그 어둠 속으로 아래의 사막이 사라진다. 목가적인 풍경과는 달리, 이곳에는 죽은 이와 죽어가는 이들이 내팽개쳐진 전쟁터가 있다. 생존자들은 전투의 함성을 지르며 투박한 도끼로 서로를 공격한다. 한쪽이 절대적으로 열세다. 몸부림치는 전사들 옆에는 전사자의 유골들이 수습되어 있다. 아직 제 발로 설 수 있는 소수가 털이 덥수룩한 동물을 타고 있는 병사들에게 에워싸여 있다.
포위된 소수의 패잔병이 나를 보고 갑자기 용기가 용솟음치는 듯하다. 부상자들이 일어나 도끼와 활을 들고 방심한 적들을 급습하는 최후의 저항을 한다. 나는 이 싸움이 어떻게 되는지 보려 머무르진 않는다. 벌써 같은 내용을 천 번은 더 보았기 때문이다. 생존자들은 혜성 같은 나의 존재를 동굴 벽화에 새기리라.
천 년 후쯤, 그들의 후예들은 틀림없이 내 모습을 그린 깃발을 휘날리며 따분할 정도로 비슷한 전쟁으로 달려나갈 것이다. 역사를 포착하고 기록하는 그 모든 노력에도 불구하고 인간이 왜 실수로부터 배우지 못하는지 의문이다. 이는 나조차도 뼈저리게 느껴야 했던 교훈이 아닌가.
나는 인간들이 우울한 악순환을 반복하도록 내버려 둔다.
가는 길에 더 많은 사람들이 나타난다. 손가락질하고, 무릎을 꿇고, 돌 제단에 처녀를 희생제물로 바치는 등, 인간이란 집단의 반응은 전체적으로 일정한 범주를 벗어나는 법이 없다. 고개를 들어 혜성을 보고 그 불타는 표면 뒤에 무엇이 있는지 의문조차 품지 않는다. 오히려 자신들만의 자기중심적인 세계관에 혜성을 박제시켜 내 빛나는 얼굴에 먹칠을 한다. 그나마 좀 더 고등한 존재들은—물론 개중에서 좀 낫다는 뜻이지만—나를 올려다보고 예언을 하는 대신 과학 도감에 좌표를 기록한다. 그나마 좀 신선한 시도이긴 하다. 그러나 이들의 발전된 지성조차도 내가 예측 가능한 궤도를 지닌 주기적인 현상이라고 믿고 있는 듯하다. 아, 그들이 조금만 더 안다면 얼마나 많은 것을 이룰 수 있을 것인가.... 하긴, 단순한 지상인들의 낭비되는 가능성을 곱씹어봤자 무슨 소용이겠는가. 그들의 잘못만은 아니다. 이 세계의 진화는 정녕 힘들어 보인다.
아아, 이러한 유치한 익살들도 점점 진부해진다. 나를 옭아매는 에너지를 가진 마법의 굴레 덕에 나는 수 세기 동안 보잘것없는 세계들로 끌려다녔다. 이제 다시 이 낯익고 기분 나쁜 바위로 오게 되었다. 빛이 흘러넘치는 별은 내가 가장 먼저 만든 작품 중 하나로, 사랑과 광채가 하나 된 산물이었다. 아아, 만든 이만이 볼 수 있는 색채를 띠고 별이 태어나는 그 소중한 순간이란. 이글거리는 새 기운으로 내 얼굴을 데우고 내 손가락 사이로 흘러가는 별이 얼마나 그리운지. 별들은 창조주의 영혼을 반영하여 제각기 독특하고 귀중한 기운을 뿜어낸다. 무한한 어둠에 대항하여 타오르는 우주의 눈송이들이다.
내가 되새기고 싶은 이 추억들은 불행히도 배신으로 얼룩졌다. 그렇다. 타곤이 나를 속여 복종시킨 장소가 이곳이다. 그러나 지금은 과거의 실수에 머무를 때가 아니다. 저 케케묵은 성위들이 나보고 또 다른 균열을 막으라 한다. 물론 그들의 이름을 내걸고 말이다.
그때 그녀를 보았다. 조금 낮은 봉우리의 정상에서 홀로 성광석 창을 휘두르고 있는 이 세상에 찌든 전사. 번개로 가장한 작은 불꽃에 불과한 그녀가 인간의 육체 속에서 나를 바라본다. 주근깨가 있는 창백한 살결을 덮은 금색 갑옷의 어깨에 굵게 땋은 붉은 머리가 드리워져 있다. 투구에 가려지지 않은 얼굴의 유일한 부분인 눈은 섬뜩한 붉은 빛을 발산한다.
그녀는 자신을 판테온이라 부른다. 판테온은 타곤의 전쟁의 화신이다. 판테온의 껍데기를 두른 건 그녀가 처음이 아니다. 마지막도 아닐 것이다.
그녀가 반짝이는 망토를 등 뒤로 펄럭이며 근육이 잡힌 팔을 들어 거대한 사슬을 당기는 시늉을 한다. 상스러운 마법의 굴레에 전해진 힘에 이끌려 나는 원래 목적지에서 벗어나 그녀가 서 있는 산으로 향한다. 그녀는 내게 소리치고 있다.
별처럼 반짝이는 보석관을 통해 그녀의 목소리가 내 머릿속에서 울려 퍼진다. 그녀가 내 머리에 침입하자 다른 모든 소리가 희미해진다.
"드래곤아!" 그녀는 나를 시시한 주황색 불꽃을 뿜어 잘해봐야 나무 정도 그슬릴 수 있는 별볼일 없는 동물의 이름으로 부른다.
"놈들의 침입구를 막아!" 바위 아래쪽의 틈을 뾰족한 창으로 가리키며 그녀가 명령한다. 아래에서 소용돌이치며 현실을 침식하는 것들을 굳이 눈으로 확인하지 않아도 된다. 내가 오기도 전부터 이 세계를 오염시킨 썩은 독기의 냄새를 맡을 수 있기 때문이다. 나는 대신 판테온에게 시선을 고정한다. 그녀는 내가 끈에 매인 개처럼 협조하기를 기대하고 있다. 오늘은 다르다. 지난 실수에서 교훈을 얻었기에.
"드래곤?" 내가 으르렁거린다. "그렇게 천한 이름으로 나한테 명령하는 게 현명하다고 생각하나?"
한 순간 창을 잡은 손아귀의 힘이 풀려, 판테온은 무기를 놓칠 뻔 한다. 그녀는 뒤로 물러선다. 마치 한 발짝만 벗어나도 나의 분노로부터 무사할 수 있기라도 한 것처럼
그러고는 마치 전에 내린 명령이 들리지 않았기라도 하다는 듯이 더 크게 거듭 외친다. "입구를 막으라고!" 그러나 큰 소리를 내도 목소리의 미세한 떨림은 감추지 못한다. 그렇게 작디작은 무기로 나를 꿰뚫을 수라도 있을 것처럼, 판테온이 내 쪽으로 창을 찌르는 시늉을 한다.
타곤의 성위가 평정을 잃은 모습은 처음 본다. 그녀는 내게 명령을 반복해야 하는 것에 익숙지 않다.
"내 친구 판테온이여, 저 짹짹대는 것들은 때가 되면 내가 처리할 거다."
"명령대로 해, 드래곤! 아니면 이 세계는 끝이야!"
"이 세상은 타곤이 오만해진 때부터 이미 가망이 없었어."
나를 옥죄는 보이지 않는 굴레를 잡으려고 애쓰는 판테온의 치밀어오르는 분노가 당혹스러움으로 변하는 것을 느낀다. 내가 알게 된 것을 판테온은 이제야 겨우 깨닫기 시작한 것이다. 타곤 인들이 지금 딴 데 정신이 팔려 내 굴레에 걸린 마법이 옅어지는 것을 느끼지 못한다는 사실을.
판테온이 다시 한 번 고함을 친다. 이번에는 저항할 수가 없다. 상스러운 마법의 힘이 내 의지를 누른다. 한때 푸르르던 골짜기의 유역에 자리 잡은 그 틈으로 내 시선을 돌린다. 지금은 소름 끼치는 보랏빛 독기로 가득 차 있다. 끔찍한 공허태생들이 에테르에 보이지 않는 에너지의 파장을 내뿜고 하늘에 땅굴을 파면서 이동하는 것이 느껴진다. 공허태생들은 이동하면서 존재와 비존재를 가르는 장막을 찢어버린다.
눈 여러 개가 달린 저 갑각류 괴물들이 내게 다가온다. 자신들에게 가장 위협적인 나를 먹어 치우려고 하는 것이다. 머릿속 깊은 곳으로부터 내가 속박되기 전에 불을 지폈던 태양의 용광로들의 이미지를 떠올린다. 한때 별들의 심장에 불을 붙였던 곳이다. 별빛 불꽃을 쏘아 갉작거리는 저 괴물의 무리를 계속 태우면서 저들이 왔던 사각의 무한대로 돌려보낸다. 검게 그을린 껍질들이 하늘에서 비처럼 쏟아져 내린다. 그들이 완전히 분해되지 않았다는 사실에 조금 놀랐지만, 그렇다 해도 공허태생들은 이 우주의 물리 법칙을 이해하지 못한다.
고약한 파동이 공기 중에 남아있다. 괴물의 근원지로부터 강력한 의지가 느껴진다. 평소 공허태생의 일탈적인 행동과는 다른, 뭔가를 갈구하는 불굴의 의지다. 현실 세계가 찢어진 균열이 아가리를 떡 벌리고는 본격적으로 주위의 모든 것을 비틀고 왜곡시킨다. 균열 저편에 있는 게 무엇인지는 모르겠으나, 웃고 있다.
판테온이 큰 소리로 내게 다른 명령을 하지만, 나는 그녀의 말을 무시한다. 우주의 이 이례적인 균열이 나를 도취시킨다. 이런 이례적인 일을 맞닥뜨린 게 처음은 아니지만, 이번에는 뭔가 다르다. 영역의 경계를 조종하는 이 놀라울 정도로 무시무시한 힘에 감탄하는 수밖에 없다. 존재와 공간의 구조를 찢어발기는 위대한 힘을 온전히 소유하는 것은 고사하고, 자기 자신의 복잡함이나마 헤아릴 수 있는 존재는 소수에 불과하다. 이렇게 정교한 균열을 저런 기어 다니는 벌레들 따위가 만들어냈을 리 없다는 사실을 마음속에서 깨닫는다. 아니다. 이번 침입에는 틀림없이 뭔가가 더 있다. 이렇게도 불안한 균열을 일으킬 정도의 능력을 갖춘 존재라니. 생각만 해도 몸서리가 난다. 판테온이 외치는 명령이 아니라도 이제 뭘 해야 하는지 안다. 어차피 판테온의 명령은 언제나 일정한 상상력의 범주를 넘지 못했다. 판테온은 내게 그 거대한 틈으로 별을 하나 던지라 명했다. 마치 불로 지지면 썩어들어가는 균열을 무사히 봉합할 수라도 있다는 듯이.
신 행세나 하는 저 멍청이들이 나를 속박시켰다고?
좋다. 적어도 우주의 별 몇 개로 이 문제를 해결하려는 그들의 '논리' 자체는 크게 잘못되지 않았다. 조금만 더 충실한 하인 노릇을 해주지.
이제 하려는 일은 나에게도 즐겁다. 그들의 기억에 남을 것이고, 예전의 내 힘을 마음대로 쓰는 것도 만족스럽기 때문이지만, 가장 큰 이유는, 그게 무엇이건 이 공허의 습격을 조종하는 지적인 존재에게 내 구역에서 감히 나를 비웃을 수 있는 건 아무 것도 없다는 것을 일깨워주고 싶기 때문이다.
내 의지에 따라 대기의 기초 원소들이 모여들어 가속하더니 플라스마 상태에 들어선다. 내 무언의 명령에 팽창하던 우주 먼지가 폭발한다. 그 결과 우주의 심해 속에서 불타오르는 내 영광스러운 창조물, 항성들의 조그마한 복제물이 생겨났다. 아무래도 이 연약한 세계에 진짜 별을 던질 수는 없지 않은가.
눈부시게 반짝이는 어린 별이 내 손에서 날아간다. 언제나 내 옆을 지키는 두 자매별이 그 어린 별을 따라간다. 별들은 내가 끌어당기는 먼지와 물질 더미를 하얗게 불타오르는 중심부로 집어삼키며 내 주변에서 춤추듯 달린다. 우리는 별들의 폭풍, 밤하늘의 화신, 미친 듯이 소용돌이치는 별빛의 물결이 된다. 나는 불타는 우주 먼지의 회오리를 일으킨다. 내가 내뿜는 고밀도의 순수한 열이 이 세계의 아우라를 약간 무너뜨리며 행성의 곡률을 영원히 일그러뜨린다. 별이 내는 불꽃의 반짝이는 빛줄기가 공허 쪽에서 열린 균열의 중심에서 빠르게 회전한다. 대부분은 인지하지 못할 색의 파장으로 중력이 와해된다. 중심부로 연료를 빨아들이면서 별들은 더 밝고 더 뜨겁게 불타고, 주변 물질을 왜곡시킨다. 이 모든 광경은 숨이 멎을 만큼 아름답다. 폭포처럼 눈이 멀 듯한 빛의 춤사위와 너무나도 뜨거운 불길로 생겨나는 찰나의 빛의 띠들. 얼마나 기분이 좋은지 등줄기가 살짝 저릿하다.
나무가 쪼개지고 강이 증발한다. 골짜기의 산들이 산사태로 연기처럼 무너진다. 쉼 없이 태양 원판을 세우는 노역자들과 언덕을 오르는 군사들, 점성가들, 숭배자들, 공포에 질린 사람들, 종말을 외치는 예언자들, 희망을 버린 이들, 세력을 키우는 왕들... 쏜살같이 나아가는 혜성을 이기적인 눈으로 바라본 이 모든 이들이 혜성의 뒤를 잇는 초신성을 일찍 찾아온 새벽이라 여긴다. 나의 휘광은 이 가련한 행성 전역에서 칠흑 같은 어두운 밤도 눈부신 낮으로 바꾸어 놓는다. 이 현상을 설명하기 위해 이들은 또 어떠한 소설을 만들어 낼까?
나를 부리던 타곤 인들조차 내 위력이 이토록 가공할 정도로 발휘되는 것은 거의 본 적이 없다. 분명 지상의 어떤 것도 한때 녹색으로 뒤덮였던 골짜기의 상흔처럼 심각한 상처를 입어본 적 없을 것이다. 이 일이 끝나면 아무것도 남지 않으리라.
판테온의 이번 화신조차. 차마 그녀나 그 무신경한 외침이 그리울 것이라고는 못하겠다.
광란의 여파 속에 한때 산이었던 것들이 그을린 채 골짜기 사이를 흐르는 돌무더기의 용암 줄기 속으로 무너진다. 이것이 이 세계에 내가 남긴 상흔이다. 그 망할 보석관으로부터 찌르는 듯한 고통이 내리쳐 내 몸을 관통한다. 이제 내가 대가를 치를 시간이다.
머리가 휙 젖혀지고, 죽어가는 별의 안타까운 모습을 보아야만 한다. 심장이 굳게 닫히고 머리가 마구 돌아간다. 무언가 귀중한 것을 잃어버렸는데 그게 다 자기 잘못인 걸 아는 그 통한의 깨달음처럼, 이윽고 깊은 슬픔으로부터 나오는 어찌할 수 없는 절망이 내 영혼의 중심에서 울려 퍼진다.
오래 전 만난 기이한 생물들이 어떻게 여태까지 만든 모든 별을 기억할 수 있냐고 물었다. 별을 만들 때의 기분을 단 한 번이라도 느낄 수만 있다면 그들도 그 질문이 얼마나 어이없는지를 바로 이해했을 것이다. 그래서 나의 사랑스러운 아이 중 하나라도 자취를 감추는 순간을 내가 알아차릴 수 밖에 없는 것이다. 에너지를 뿜어내며 사라지는 별과 함께 내 영혼의 한 조각 역시 소멸하기 때문이다. 그럴 때면 저 높이 천상에서 별의 종말을 알리는 신호를 본다. 그 아이는 마지막으로 환히 빛나며 폭발하는 화산처럼 형제들을 순간 뒤덮어버린다. 타곤 인에게 내 힘을 발휘한 데에 대한 잔인한 응징의 결과로 약화되는 천상을 보는 내 심장이 산산이 부서진다.
판테온 단 한 명의 값어치가 태양 하나라니. 이것이 마구 날뛴 내 분노의 대가이다. 이것이 내가 상대해야만 하는 천박한 마술이다.
몇 초가 지났을까. 나를 통제하는 힘을 되찾은 타곤 인들이 새로운 일을 시키기 위해 나를 부른다. 어느 세계에서든 이렇게 자유롭게 활개를 쳐본 적은 찰나의 순간이라도 없었다. 더군다나 그들의 실수에서 교훈을 얻지 않았는가. 나는 조금이나마 자유로워졌었고, 때가 되면 이 세계로 돌아와 이 신비한 에너지의 원천을 이용해 굴레를 마저 벗어던질 것이다.
전쟁의 성위에 정신을 집중해 본다. 우주 전역에 흩어진 화신들의 육신 속에서 찌푸리며 몸부림치고 있다. 아무래도 이 세계로 보낸 화신이 죽은 일이 언짢은 것 같다. 하지만 벌써 어느 불운한 인간이 새로운 판테온의 화신으로 선택되었다. 타곤 산 기슭에서 살면서 찰거머리처럼 산의 정기를 빨아들이는 라코어 부족 출신의 전사다. 언젠가 이 새로운 판테온의 화신을 만나게 될 것이다. 그는 그 우스꽝스러운 창을 버리고 새로운 무기를 찾을까. 우주 전역에 흩어져 있는 판테온의 동족들을 느낀다. 자신들의 무기로 증발해버린 현세의 성위가 있는 이 세계로 그들의 정신이 단숨에 집중된다. 나를 다시 통제하기 위해 서로 다투는 그들의 당혹스러움이 점차 커지는 절망으로 변한다. 그들의 얼굴을 볼 수만 있다면.
룬테라의 중력권 밖으로 솟아오르자, 타곤 인들에게서 일찍이 느끼지 못했던 감정이 느껴진다.
공포가.

4. 구 배경



4.1. 단문 배경


“웅크리고. 찬양하고. 애원하지. 그래, 내가 기대했던 대로다.”
아우렐리온 솔은 천상의 경이로운 별들을 손수 빚어 한때 텅 비어있던 광활한 우주를 수놓았다. 그러나 이제 그는 속임수로 자신을 복종시킨 우주 제국의 명령에 따라 자신의 막강한 힘을 발휘해야 하는 처지가 되었다. 별을 만들던 때로 돌아가려는 열망에 불타는 아우렐리온 솔은 자신의 자유를 되찾기 위해서라면 자신의 창조물인 별들을 하늘에서 없앨 각오마저 되어 있다.

4.2. 장문 배경


혜성의 출현은 보통 격변과 혼란의 시기를 알리는 불길한 징조라고들 한다. ‘불타는 전령’이 이렇게 나타날 때면, 오래된 문명이 멸망하고 새로운 제국이 세워지며 별들마저도 하늘에서 추락한다고 전해진다. 그러나 이러한 설명들은 훨씬 더 기이한 진실의 겉핥기에 지나지 않는다. 사실, 혜성의 광채는 헤아릴 수 없는 위력을 지닌 우주적 존재를 가리고 있는 장막이다.
지금은 아우렐리온 솔이라는 이름으로 알려진 이 존재는 별들의 잔해가 모여 첫 세계들을 이룰 때만 해도 이미 아주 오래된 생명체였다. 창조의 첫 입김으로 태어난 그는 텅 비어있던 무한한 세계를 어슬렁거리며 막대한 넓이의 빈 캔버스를 경이로움으로 채우고자 했다. 반짝이는 색의 띠로 그를 기쁘고 자랑스럽게 할 경이로운 별들로.
천상의 용이란 범상치 않은 존재이기 마련이라, 아우렐리온 솔은 자신과 대등한 존재를 거의 만나지 못했다. 다양한 생명체가 우주에 나타났고, 수많은 원시적인 존재들이 하늘을 수놓은 그의 아찔한 작품을 경탄하며 바라보게 되었다. 아우렐리온 솔은 무수한 세계에서 자신의 창조물을 바라보는 이들의 시선에 의기양양해졌으며, 자신이 창조한 별들을 우스울 만큼 자기 중심적으로 해석하는 세계관을 만들어낸 여러 생명체의 초보적인 문명들에 매력을 느꼈다.
이들 중 자신이 높이 평가한 일부와 더 깊은 관계를 맺길 원했던 아우렐리온 솔은 가장 큰 야망을 품은 종족에게 자신의 모습을 드러내기로 했다. 이 선택받은 종족은 우주의 신비를 밝히기를 갈망했고, 이미 자신들의 고향 행성을 넘어 세력을 확장하고 있었다. 별의 창조자가 이 작은 세계에 내려와 타곤 인들에게 모습을 드러낸 날에 대해 많은 노래가 전해진다. 어마어마한 별들의 폭풍이 하늘을 가득 채우더니 놀랍고도 무시무시한 거대한 형태로 휘몰아쳤다. 우주의 경이로운 별들이 별의 창조자의 몸 전체에서 회오리치고 반짝였다. 그의 기분에 따라 새로운 별들이 태어나 반짝이고 별자리가 새로 정비되었다. 우주를 밝히는 그의 위력에 감탄해 마지않던 타곤 인들은 이 용에게 아우렐리온 솔이라는 이름을 주며 존경의 표시로 별처럼 반짝이는 보석관을 선물로 주었고, 그는 이를 바로 썼다. 오래지 않아 아우렐리온 솔은 지루해졌고, 자신이 작업하던 거대한 우주 공간으로 돌아가려 하였다. 그러나 잠시 들렀던 이 작은 세계에서 멀어져 갈수록 그는 존재 깊숙이 무언가 자신을 붙잡는 힘을 느꼈다. 이 힘은 자신이 가려는 길을 방해하고 다른 쪽으로 그를 이끌었다. 그는 넓디넓은 우주 저 너머로부터 소리치고 명령하는 목소리들을 들었다. 그가 받은 선물은 알고 보니 선물이 아니었다.
격노한 아우렐리온 솔은 자신을 조종하려는 힘에 맞서 굴레를 벗어나려고 했으나 이에 대항하여 힘을 쓸 때마다 하늘에서 자신의 별들이 하나씩 사라지는 것을 알게 되었다. 이제 강력한 마법이 아우렐리온 솔에게 굴레를 씌워, 타곤 인들을 위해서만 그의 힘을 쓰게 한 것이다. 그는 이 우주의 구조 자체를 찢어발기려는 곤충 같은 괴물들에 맞서 싸웠으며 다른 여러 우주 생명체들과 충돌하였다. 이 중에는 그가 태곳적부터 알던 생명체들도 있었다. 그렇게 수천 년 동안 아우렐리온 솔은 타곤 인의 전쟁에 동원되어 그들의 지배를 위협하는 것은 무엇이든 짓밟으며 타곤이 빛나는 제국이 되는 데 이바지하였다. 이 모든 것은 숭고한 재능의 낭비였다. 우주에 빛을 선사한 이는 바로 자신이 아니었던가! 그런 그가 대체 왜 이런 천한 것들에게 복종해야 한단 말인가?
과거 자신이 만든 영광스러운 별들이 관리 부족으로 천구에서 서서히 사라지는 것을 보면서, 아우렐리온 솔은 다시는 새로 빚은 별의 따뜻함을 누리지 못하리라고 체념하였다. 그러던 어느 날, 그는 굴레가 약해지는 것을 느꼈다. 보석관에서 울리는 목소리들이 뜸해졌을 뿐 아니라, 서로 싸우고 충돌했으며 그중 몇몇 목소리는 불길할 정도로 조용해졌다. 무언가 알 수 없는 재앙이 조종자들의 균형을 깬 것이었다. 그들은 산만했고 어딘가 다른 곳에 정신이 팔린 상태였다. 희망이 가슴에서 꿈틀거렸다.
곧 자유를 얻을지도 모른다는 한 가닥 가능성에 부푼 마음으로, 아우렐리온 솔은 이 모든 일이 시작된 세계에 이르렀다. 룬테라. 여기에서야말로 상황은 마침내 자신에게 유리하게 돌아갈 것이다. 그리고 이제, 저 별 너머의 문명들은 자신의 반란을 지켜보며 그 권능에 다시 한 번 감탄하게 될 것이다. 우주 용의 위력을 훔쳐 소유하려는 자들의 최후가 어떤 것인지 모두가 알게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