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는 반복된다

 


1. 개요
2. 배경
3. 관련 명언 및 명대사
4. 푸코주의자들의 반론
5. 관련 문서


1. 개요


영어: '''History repeats itself''', 숙어식으로 표현하면 '''Historic recurrence'''(역사 반복)
서양 속담/격언 중 하나로, 옛날부터 오늘날까지, 뉴스에서, 책에서, 강연에서 지겹게도 많이 듣게 되는 격언. 같은 원인에 같은 결과가 반복된다는 논리를 역사에 적용한 것으로, 이미 역사가 보여준 그 인과를 다시금 반복하지 말아야 한다는 경고가 담겨 있는 격언이라고 할 수 있다.
큰 줄기로 보면 비슷한 일이 실제로 일어나기도 하며 이를 멜서스 트랩이라고 한다.
사실 역사가 반복된다는 것은 당연한 말일지도 모른다. 한번 일어났다는 점에서 가능 여부를 증명했으므로 충분한 세월만 주어지면 다시 일어난다 해도 크게 이치에 어긋나는 것은 없기 때문이다. 그저 자주 보이는 패턴이 아닐 뿐.

2. 배경


이러한 격언의 사상적 배경은 주로 왕조사관이나 상인사관에 근거를 두고 있다는 의견이 있다. 중국 역대 왕조의 흥망성쇠를 살펴보면 비슷한 과정을 되풀이하는데, 정치적 문란으로 혼란에 빠진 와중에 농민 봉기가 일어나고 농민 지도자가 집권한다는 시나리오가 반복된다는 점에 착안한 주장이다. 또 상인들의 경우 호황과 불황이 반복되는 사이클에 민감하게 반응하기 때문에 그들의 역사관을 역사가 반복된다는 주장에 쉽게 적용할 수 있었다.

3. 관련 명언 및 명대사


역사는 영원히 되풀이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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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키디데스

'''Was die Erfahrung aber und die Geschichte lehren, ist dieses, daß Völker und Regierungen niemals etwas aus der Geschichte gelernt und nach Lehren, die aus derselben zu ziehen gewesen wären, gehandelt haben.'''

역사와 경험이 가르쳐주는 것은, 민족과 정부가 역사를 통해서 무엇을 배우거나, 원칙을 끌어내고 그에 따라 행동했던 적이 없다는 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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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오르크 빌헬름 프리드리히 헤겔, 《역사의 철학에 관한 강연 중 서론》, 1832년

'''헤겔은 어디선가 세계사에서 막대한 중요성을 지닌 모든 사건과 인물들은 반복된다고 언급한 적이 있다. 그러나 그는 다음과 같은 말을 덧붙이는 것을 잊었다. 한 번은 비극으로 다음은 소극(farce)으로 끝난다는 사실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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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를 마르크스, 《루이 보나파르트브뤼메르 18일》, 1852년

'''역사는 언제나 동일한 방식으로 반복되지는 않는다. 그렇다고 한 번은 비극의 형태로, 다음에는 우스꽝스러운 희극의 형태로 나타나는 것도 아니다. 때로는 상이한 형태의 비극들로 계속 반복되기도 한다. 하지만 거기에는 몇몇 법칙, 작용과 반작용의 원리들이 있으며, 그것에 비추어 볼 때 역사학은 수사학적 의미가 아닌 지극히 과학적인 의미에서 여전히 "삶의 스승"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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움베르토 에코, 《미네르바 성냥갑》

'''과거는 그대로 반복되지는 않을지라도, 분명 그 운율은 반복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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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크 트웨인

'''Hegel was right when he said that we learn from history that man can never learn anything from history.'''

우리가 역사에서 배울 수 있는 것은 우리들은 역사에서 아무것도 배울 수 없다는 것이라는 점에서 헤겔은 옳았다.

'''If history repeats itself, and the unexpected always happens, how incapable must Man be of learning from experience.'''

역사는 되풀이되는데 이를 항상 예측하지 못한다면 인간은 얼마나 경험에서 배울 줄 모르는 존재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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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지 버나드 쇼

'''Toutes choses sont dites déjà ; mais comme personne n'écoute, il faut toujours recommencer'''

모든 것은 이미 일컬어졌으나 아무도 듣지 않기 때문에 언제나 다시 시작해야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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앙드레 지드

'''The one who does not remember history is bound to live through it again.'''

역사를 기억하지 못한 자, 그 역사를 다시 살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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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지 산타야나 (George Santayana, 에스파냐 출신의 미국 철학자)

'''Whoever wishes to foresee the future must consult the past; for human events ever resemble those of preceding times. This arises from the fact that they are produced by men who ever have been, and ever shall be, animated by the same passions, and thus they necessarily have the same results.'''

미래를 내다보고자 하는 자는 과거를 돌이킬지어다. 인간사는 선대의 그것을 닮게 되나니. 이는 그 사건들이 그때 살던 사람이든 지금 사는 사람이든 동일한 성정을 지닌 사람들에 의해 창조되고 생명을 얻었기 때문이며, 그로써 그것들은 같은 결과를 얻게 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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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콜로 마키아벨리, 《로마사 논고》

'''History, with all her volumes vast, hath but one page'''

역사라는 책은, 그 두께에도 불구하고 단 한 장의 페이지로 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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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지 고든 바이런

'''인간의 본성이 쉽게 바뀐다면 아무도 고생하지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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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라키 히로히코, 《죠죠의 기묘한 모험[1]

'''소는 잃어도 외양간은 고쳐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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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완서, 윤문규 등, '소 잃고 외양간 고친다'에 대한 반박. 널리 퍼져 있기에 정확한 출처는 찾을 수 없으며, 이외수의 명언에서 온 것으로 보인다.

'''소 잃고 외양간 고치는 사람을 비웃지 마라. 그는 지금 반성하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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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외수

'''History abhors a paradox'''

'''역사는 역설을 거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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케인

'''"전쟁. 전쟁은 결코 변하지 않는다." 그러나, 사람은 바뀔 수 있다. 자신이 걸어온 길을 통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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율리시스(폴아웃: 뉴 베가스), Lonesome Road의 엔딩에서.

"살다보면 항상 세상은 반복이라는 것을 느끼게 된다. '''구세대가 경험한 실수와 성공의 사실들을 신세대들은 똑같이 답습한다. 아무리 구세대가 자신의 경험담을 신세대들에게 알려주어도.''' 그들은 실제로 경험해보기 전까지는 그 경험들을 애써 무시하거나 모르고 있다. 이것은 그 얼마나 시간 낭비이고 불필요한 진실인가? 마치 결혼 전 처녀가 양아치 같은 놈에게 눈이 멀어서 결혼을 감행하려는 것과 같은, 그녀의 부모들은 양아치의 앞날이 뻔히 보이기에 결사 말리지만 그녀는 모른다. 아니 알고 싶어하지도 않고 눈앞의 달콤함에만 빠져있다. 그러다가 결혼을 하고 시간이 지난 뒤에 알게 된다. '''먼 예전 자신의 부모들이 했던 말이 모두 사실이고 진실이었다는 것을!''' 그리고 자신의 딸에게는 그런 전철을 밟지 않게 해주려 또 말하지만, ('집어 쳐! 난 엄마처럼 살지않아! 난 멋지게 내 삶을 살 거니까 자꾸 내 인생 참견하지마.'[2]

) '''그러나, 멋진 삶? 엄마처럼 살지 않겠다고? 웃기는 소리다! 결국은 그 처녀의 딸 역시 그 처녀와 똑같이 살게되는 인생의 비극을 맛보고 깨닫게 되는 것이다.''' 이것이 그동안의 내가 삶을 바라보는 대부분의 결과였다. 하지만, 예외도 있다! 연장자의 경험을 인정하고 그 경험을 자신의 삶에 대비하는 자들! 결국 인생의 승리자는 그런 사람들의 몫으로 남겨지기 마련이다. 그런 면에선, 우리 업계도 마찬가지다. 왜? 뻔히? 결과적으로…. 되지도 않을 싸움을 하려 드는가?"[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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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성모, 《대털 2.0》 中 류존하의 대사

지옥과 저승은 아무리 들어가도 한이 없듯이 사람의 욕심도 끝이 없다.[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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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 잠언 27장 20절(공동번역)

지금 있는 것은 언젠가 있었던 것이요, 지금 생긴 일은 언젠가 있었던 일이라. 하늘 아래 새 것이 있을 리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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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 전도서 1장 9절(공동번역)

이 상소[5]

의 맺음은 부녀자에게 일을 시키고, 사치품을 금하자는 매우 엉뚱한 결론이었지만… 시대상은 현대의 그것과 일맥상통하는 부분이 존재한다고 본다. 그리고 이렇기 때문에 언제나 역사를 알고 배우는 게 매우 중요한 것이다.

"언제나 말하지만 삼국지는 1800년전 이야기입니다. 겨우 청동기 지나고, 철기를 쓰던 시대라구요. 1800년전 사람들도 현대인들과 이리 비슷하게 생각하고, 움직이는데, 100년안 사람들의 사고와 행동은 말할 필요도 없죠. '''역사는 끝없이 반복되고,''' 그래서 미리 알고 있을 필요가 있는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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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훈, 《삼국전투기》 中[6]

미래에도 이미 내가 들은 것과 똑같은 주제가 다시 울려 퍼지리라. 이성적인 사람이 이성적인 목적을 위해서, 또는 미치광이가 어이없는 일과 대참사를 위해서 똑같은 짓을 저지르지 말란 법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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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지프 캠벨, 《신의 가면 : 원시신화학》 서문에서

유행은 돌고 돈다.

'''Know your history, or be doomed to repeat it.'''

'''자신의 역사를 기억하지 않으면, 그것을 되풀이해 파국을 맞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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콜 오브 듀티: 블랙 옵스 콜드 워의 핵심 캐치프레이즈


4. 푸코주의자들의 반론


역사를 공부하는 효용을 제시할 수 있기 때문에 많은 지지를 얻고 있으나 반대하는 의견이 없는 것은 아니며 대표적으로 푸코디언(푸코주의자)들은 역사는 반복, 순환하는 것이 아니라고 주장한다. 역사는 단순히 원인과 결과로 이루어지는 단편적인 사건들의 모음이 아니라 수많은 맥락들과 얽혀있는 총체이기 때문에 현상적으로 비슷한 일이 일어난다고 해서 그것을 반복되는 사건으로 볼 수는 없다는 것. 가령, 구한 말에 청, 일본, 러시아, 영국 등 열강들이 조선에 진출하고자 많은 관심을 기울였던 것과 1990년대 동구권이 붕괴하면서 러시아, 중국, 일본, 미국 등이 한반도에 큰 관심을 가진 것이 비슷한 사건이라 하여 1990년 당시 국사학계에서 구한 말 연구가 붐을 이루었지만 제국주의 시대의 논리와 탈냉전 시대의 논리를 똑같은 사건으로 보는 것은 맥락을 무시한 단편적인 사고에 불과하다. 흐름은 비슷한 것 같아도 시대 여건에 따라 상황은 변하고, 그렇기 때문에 해결책도 옛날과는 달라질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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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하준의 저서 '그들이 말하지 않는 23가지' 서문중에서
또한 정말로 역사가 진보하지 않았더라면 역사가 반복된다는 말조차 없었을 것이다.
좀 더 이론적인 얘기로 들어간다면, 역사의 반복성을 긍정하는 것은 곧 과거의 역사적 경험을 토대로 보편적인 어떠한 이론아니 설명체계를 구축하여, 미래를 설명할 수 있는 어떤 보편적인 원리로 일반화해낼수 있다는 보편주의를 긍정하는 것으로 이어지게 되는데, 이것은 사회학의 영역이지 역사학의 영역이 아니다. 모든 역사적 사실들은, 그 사실이 발생하던 사회를 구성하는 문화적, 경제적, 심지어 질병과 같은 자연적인 요소들이 총체들이 유기적으로 결합되어 만들어진 단 하나의 특수한 사실이다. 인간의 발전 정도가 미약하여 생활 및 문화가 거의 고정되었던 고대사의 왕조들에서조차, 반복적으로 일어나며 전혀 개별적 특수성이 없어 보이는 보이는 왕위찬탈이라는 사건들조차 그 개개는 복잡하고 재현 불가능한 어떤 특수성을 가지고 일어난 것임을 자세한 시선으로 바라보았을 땐 깨달을 수 있다. 반면, 사회학에서 가정하는 '투명한' 어떤 사회는 이러한 특수한 맥락을 획득하지 않은, 어떠한 추상적이고 일반적인 사회로 정의된다.
아래에서처럼 역사가 반복된다는 말을 했던 마르크스도 개인적으로는 역사를 일반화하여 현실의 정강으로 사용하려는 것, 또는 뉴턴의 자연법칙과 같이 현실을 예언하는 어떤 도구로 남용되어 역사의 영역을 벗어난 어떤 부문에서 소비되는 것에는 경계를 표했다.

'''"놀라울 만큼 유사하더라도 상이한 역사적 환경 속에서 발생하는 사건들은 완전히 다른 결과에 이르게 된다. 이러한 발전의 결과들을 따로따로 연구하고 난 후에 그것들을 비교한다면, 그 현상을 이해하는 열쇠를 쉽게 발견할 수 있다; 그러나 역사를 초월하는 것을 위대한 미덕으로 삼고 있는 어떤 역사철학 이론의 만능열쇠를 사용해서는 방금 말한 것을 결코 이해할 수 없다."'''

마르크스가 개인적으로 나눈 편지의 내용이다. 그렇다면, 이러한 객관적인 사실에도 불구하고 역사를 경험적 자료로 파악하여 현재로 이어지는 무엇인가로 환원해낼 수 있다는 인식, 또는 과거에 일어나고 있던 일이 현재에도 일어나고 있다는 여러 사람들의 통찰은 어째서 발생하는 것인가?
그것은 역사적 사실이라는 사실이, 인간의 인식적 한계를 벗어나는 거대한 피인식항, 관념적 객체라는 사실 때문에 발생한다. 우리는 역사적 사건들을 구성하는 요인들에 대해서 역사학자들에 의해서 승인된 일련의 판단들을 공유하고 그것이 사실이라고 받아들이고 있을 뿐, 정말로 그 결과에 이르게 만든 세계의 전적인 요소들에 대해서는 모두 파악할 수도 없고 이해할 수도 없다. 사회를 구성하는 모든 흐름들과 모든 맥락들은 편집해서 보지 않으면, 인간이 우주의 넓음을 시각적 한계 때문에 직관적으로 이해할 수 없듯이, 또는 11차원 공간을 인공지능의 도움 없이는 머릿속의 가상평면에 그려볼수조차 없듯이, 인식될 수가 없기 때문이다.
그러한 특수성과 개별성에도 불구하고 역사가 반복된다고 느끼는 이유는, 이러한 인식적 한계로 인해 현재의 상황을 과거에 투사하여 파악하기 때문에, 그리고 오직 그 방법으로만 역사에 대한 이해에 도달할 수 있기 때문이다. 과거의 역사를 되짚어보는 관찰자가, 관찰자의 시대를 바탕으로 형성된 시각으로 과거를 바라보았기 떄문에 현재와 역사적 사실로부터 동질성을 느끼는 것이다.
예를 들자면, 역사학의 불멸의 고전 '로마사'를 쓴 테오도르 몸젠은 로마의 번영의 원인으로 카이사르를 지목하며, 그 전까지의 논의와 다른 관점에서 발견된 자료들을 바탕으로 키케로를 깎아내렸다. 그가 그러한 역사관을 구성하여 로마 시대에 대한 통찰에 다다를 수 있었던 이유는, 그가 로마사를 저술하던 시기 그가 몸담고 있던 독일 사회의 혼란한 정치 상황을 그가 경험했기 때문이었다. 당시 독일은 민족적 열망의 실현이라는 거국적 과제에 대해 뚜렷한 공감대를 모든 국민이 가지고 있었던 상황이었음에도 불구하고 현학적 논의에 빠져 있던 자유주의자들의 지리멸렬한 다툼과 공박으로 인해 너무나 뻔히 보이는 실행안이 현실로 실현되지 못하던 상황이었다. 만인의 자유가 허용되는 바람에 결국 누구의 의지도 실현되지 못하는 자유주의의 무정부적 속성에 대한 이해를 이러한 독일의 시대적 상황이 몸젠에게 제공했기 때문에 카이사르에 대한 재발견으로 이어졌던 것이다. 독일은 곧 비스마르크 등 독재적 집권자에 의한 긴 통치 기간에 들어간다. 이와 같은 연구 상황을 염두에 두고도 과연 로마의 역사적 경험이 독일에서 반복되었다고 할 수 있을까?
몸젠이 제시한 것은, 과거에 대한 연구처럼 보였지만 사실상 당시 독일이 어떻게 나아가야 하는가에 대한 예언이었고 당시 독일 사회에 대한 통찰이었다. 전혀 다른 역사적 맥락이 몸젠과 같은 역사학적 탁월성을 지닌 인물에게 제공되었더라면 우리가 현재 인식하는 카이사르의 입지와 위치는 전혀 다를 수 있었다. 즉 역사가 반복된다는 말은 정확히 말하면, 현재를 바탕으로 역사를 파악하는 인간의 본능적 함정과 인식적 한계에 대한 경고에 가깝다.[7]
즉, 역사는 반복된다는 주장은 지금까지 역사에 어떤 실용적인 의의를 부여하여 역사학 연구와 역사 교육 등등의 본질적 가치를 보조하는 역할을 하고 있었으나, 근대에 들어 학문적 개념이 끊임없이 발전하고 논쟁이 진화됨에 따라 역사는 반복된다는 주장은 이론적으로 보았을 때에는 의미가 없는 것으로 받아들여진다. 여기서부터는 각 학파와 사관 그리고 역사철학에 따라 무수히 새롭게 창조된 역사의 효용과 의의론이 등장하게 된다.
상기의 반론은 E.H 카의 역사란 무엇인가에서 전개된 내용을 바탕으로 작성된 것으로 카가 제시한 '역사는 일련의 승인된 판단'이라는 말은 과거 플라톤과 대립하던 소피스트들의 '더 강한 주장과 더 약한 주장'이라는 상대주의의 악습을 연상시키는 바가 있어, 또 많은 비판을 받기도 하는 부분이다.

5. 관련 문서



[1] 이 말은 본편 속에서 보잉고도 언급한다.[2] 이부분은 류존하가 예시로 든 처녀의 딸의 대사다.[3] 김화백 만화 명대사 대부분이 개그계 명대사로만 알려져 있지만 사실 이런 진중한 감동계 명대사도 적지 않으며 잘 알려지지 않아서 그렇지 럭키짱을 봐도 의외로 사회문제나 작가의 철학을 담아내고 있는 대사가 많다.[4] 흔히 "인간의 욕심은 끝이 없고 같은 실수를 반복한다."로 알려져 있다. 이쪽의 경우는 익명.[5] 전투외편 8-3에서 화핵이 올린 상소다.[6] 따옴표 안은 최훈의 오너캐가 말하는 부분이다. 실제 만화에서는 나레이션과 오너캐 대사가 반씩 2컷을 차지하고 있다.[7] 과학에서 사용하는 인과모델이 적용되기 위해서는, 사과를 탑에서 떨어뜨렸다-땅에 떨어졌다. 와 같이 재현 가능하고 특수성 없는 어떠한 일반적인 사건이 대상이어야만 한다. 역사를 바탕으로 인과모델을 형성하여, 가설적 한계를 인정하지 않은 일반화를 시도하는 것은, 이러한 역사의 짙고 짙은 특수성 때문에 불가능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