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자눌비자르 전투

 


1. 개요
2. 배경
3. 전쟁 과정
3.1. 모리아 관문 전투
4. 전투 이후


1. 개요


요정과 인간들에게 알려진 난쟁이 전투 중 대표적인 전쟁이자 난쟁이 7가문과 아조그가 이끄는 안개 산맥 오르크들의 거대한 전쟁 중 최후의 거대한 전투를 가리킨다. 난쟁이들은 아자눌비자르 전투라고 하며 요정어로는 난두히리온 전투라고 한다. 사실은 아자눌비자르 전투는 전쟁 막바지에 치뤄진 난쟁이와 오르크들의 대회전에 불과했고 지상에서 벌어졌기 때문에 그나마 알려져 이런 이름이 붙은 것이다.

2. 배경


외로운 산에서 거대한 부를 축적하던 두린 가문의 긴수염 부족 난쟁이들은 당대 최강이라는 3시대에 남은 가장 강력한 날개 달린 화룡 스마우그에게 왕국을 통째로 빼앗기고 말았다. 이후 스로르 왕과 그의 긴수염 부족들은 간신히 살아남은 생존자들을 이끌고서 남쪽으로 정처없이 방황을 하였다.[1] 그들은 떠돌이 생활 하면서 대부분 인간 마을 등지에서 대장장이나 광부 일을 하며 천대받았고 비참한 삶을 연명해 나갔다.
그것을 견디지 못하고 에레보르가 함락된 지 몇 년이 되지 않아 스로르 왕은 아들 스라인 2세에게 일곱 가문의 반지들 중 마지막 남은 반지를 넘겨 주고 늙은 시종인 '나르'만을 데리고 정처없이 떠돌기 시작하다 옛 조상의 터전인 모리아에 이르렀다. 그 곳에서 들어가지 말것을 간언하는 나르를 남겨둔 채 홀로 모리아 관문 안으로 들어갔다가 아조그에 의해 목이 베인 채 살해 당하고 만다.
아조그는 목이 베어진 스로르 왕의 이마에 난쟁이 룬 문자로 자신의 이름을 새겼고 더러운 수염난 거지라 조롱함과 동시에 나르에게 전혀 값어치가 없는 돈 몇 푼이 든 주머니를 스로르의 입에 넣어 스로르의 수급을 던져주며 자신이 스로르를 죽였다는 사실을 알리게 하였다. 그리고 스로르 왕의 몸뚱아리를 토막 토막 조각 내어 까마귀 밥으로 던져주는 희대의 모욕을 선사했다.
나르에게서 이 소식을 들은 스라인 2세는 수염을 쥐어뜯으며 울부짖었고 이레 동안 전혀 꼼짝하지 않았다.
그리고 마침내 자리에서 일어나 '''"이것은 도저히 참을 수 없는 일이다" 라고 울부짖으며''' 모든 난쟁이 가문에 사절을 보내 난쟁이 최고 어르신이 당한 모욕과 수치를 알리며 전쟁이 시작되었다.

3. 전쟁 과정


아자눌비자르 전투 자체는 모리아 관문 근방에 위치한 아자눌비자르에서 벌어진 전투였고 실제론 대부분 깊은 산맥 아래에서 벌어졌기에 요정과 인간들에게 많이 알려지진 않았다. 소식이 늦는 곳은 전쟁이 끝난 후에야 전쟁에 대한 소문이 알려진 곳도 있었다고 한다. 그나마 알 수 있었던 점은 매우 거대했던 전쟁이었다는 것[2]과 양측 모두 무척 잔혹했다는 점, 그리고 난쟁이들이 승리하여 창포강가에서 안개 산맥에 이르는 진격로 상의 거의 모든 오르크 요새, 야영지와 정착지들이 처참하게 파괴되었고 난쟁이들에 쫓긴 대부분의 오르크들이 모리아에 모여 아조그 아래에 결집하여 최후의 전투를 준비하게 되었다는 점이었다.

3.1. 모리아 관문 전투


아자눌비자르 계곡은 모리아 관문 앞에 펼쳐진 켈레드자람 호수가 있는 거대한 산맥들 사이에 있는 곳이었다. 그 곳에서 두린 가문과 그의 방계 가문의 난쟁이의 대규모 병력들이 모여들자 모욕자 아조그는 아끼고 아껴두었던 오르크 대규모 병력들을 아낌 없이 투입했다. 일진일퇴의 무자비한 전투가 벌어졌지만 오르크들이 숫적으로 난쟁이들을 압도한 데다가 아조그는 교활하고 잔꾀가 많았기에 난쟁이들에게 불리한 상황이었다.
스라인이 직접 이끄는 선봉대가 첫 결전을 펼쳤지만 수세를 이기지 못하고 후퇴하여 근방에 있는 숲까지 쫓겨났으며 이 과정에서 스라인 2세의 아들이자 소린의 동생이었던 프레린이 전사하였고 스라인 2세의 친족이던 푼딘(발린과 드왈린의 아버지)을 비롯하여 소린 2세와 자신마저 부상을 입게되었다. 그리고 이 과정에서 소린이 참나무 가지를 베어 자신의 방패겸 보조 무기 삼아 휘둘러 참나무 방패 소린이란 이명을 얻게된 계기가 되기도 하였다.
이런 난쟁이들의 불리함은 이 후 철산에서 달려온 나인과 다인이 이끄는 난쟁이들이 합류함에 따라 전세가 역전되었다. 철산의 난쟁이들은 힘 쎄기로 유명한 난쟁이들 중에서도 특출나게 강한 난쟁이들이었고 막 합류하였기에 사기도 왕성했다. 아조그는 전세가 불리하게 되고 철산의 난쟁이들이 모리아의 문앞에서 자신을 부르며 도발하자 아껴두었던 정예 오르크[3]를 이끌고서 비로소 전투에 뛰어들게 되었다.
아조그는 오르크들을 베어넘기던 나인을 도발하였고 아조그의 도발[4]을 본 나인은 크게 분노하며 아조그와 격돌하였다. 하지만 이미 연이은 전투에 나인은 매우 지친 상태였고 그 상태에서 아조그가 끼어든 참인데다 아조그는 오크 중에서도 키 크고 힘이 쎈 데다가 교활하기까지 하여 나인이 분전함에도 불구하고 결국 아조그에게 목이 부러져 죽고 말았다. [5]
하지만 아조그는 마냥 승리에 취할 수 없었다. 나인을 죽이는데는 성공했지만 전황은 오르크들에게 매우 불리하여 이내 정예 오르크들이 난쟁이들에게 패배하여 쫓겨나기 시작했던 것이었다. 아조그는 황급하게 몸을 돌려 모리아 관문으로 도주하려고 했지만 나인의 아들 다인은 자신의 아버지가 죽자 어린 나이임에도 불구하고 아조그를 따라 잡아 피에 젖은 붉은 도끼로 단칼에 아조그의 목을 베는데 성공한다. 이 무훈으로 인해 그는 무쇠발 다인이란 호칭을 얻게 된다.
아조그가 목이 베어져 죽어 전쟁은 난쟁이들의 승리로 끝나게 되었다.

4. 전투 이후


아조그의 수급은 나르가 받았던 것 처럼 쓸모 없는 몇 푼의 돈주머니가 입에 쳐박힌 채 말뚝에 박히는 신세가 되었고 이 전쟁으로 안개 산맥에 걸쳐 이르는 대부분의 오르크들이 전사하였다. 이 전쟁 이후에 일어난 다섯 군대 전투에서 난쟁이와 요정, 인간 연합군에게 패배함에 따라 안개 산맥 오르크들은 세력이 크게 위축되었다.
오랜 시간이 흐른 뒤임에도 아자눌비자르 전투에 대한 언급이 나오면 오르크들은 여전히 몸서리를 치며 난쟁이들은 슬피 운다고 한다. 난쟁이들도 6년간 벌어진 전쟁으로 인해 대부분 전사하거나 부상당했고 아자눌비자르 전투에서는 워낙 많은 수의 난쟁이들이 죽었던지라 그들은 승리하였음에도 연회나 자축하지 못하고 그저 슬퍼할 뿐이었다.[6] 그들 가족들은 자신의 어르신이 돌무덤에 들지 못하고 화장하게 되었다는 말만 조용히 전함으로써 자부심과 아픔을 함께 표현하여야 하였다. 게다가 그렇게 크나큰 희생을 치뤘음에도 불구하고 그들이 얻을 수 있었던 거라고는 들어갈 수 없는 모리아 관문과 최고 어르신의 복수 뿐이었다.
이에 두린과 관계가 먼 여러 난쟁이 가문들의 난쟁이 병력들은 불만을 토로하며 흩어졌고 이후 난쟁이 가문들이 다시 뭉치는데 걸림돌이 될 정도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스라인 2세[7]를 따르는 무쇠발 다인과 철산 난쟁이들은 이후에도 계속 따를 것임을 맹세하며 충성하였다. 다만 당초 스라인은 모리아 광산을 차지할 생각이었지만 다인과 철산의 난쟁이들이 '''두린의 재앙'''이 아직 있는 한 무리라면서 들어가지 못하게 막았다.
[1] 후에 알려진 바로 에레보르가 함락 당시 생각보다 더 많은 생존자들이 탈출하는데 성공했지만 대부분은 철산으로 떠났다.[2] 전쟁은 6년 간이나 지속되었으며, 난쟁이 병력이 모여 결집하는데만도 3년이 걸렸다고 한다.[3] 아조그와 비슷하게 덩치가 큰 오르크들[4] 또 다른 거지가 문간에 와 있어? 네놈에게도 낙인을 찍어줄까?[5] 나인이 분노에 눈이 멀어 내지른 일격이 다른 곳을 친 사이, 아조그가 나인의 목을 쳤다. 원래는 목을 베어내려고 했으나 워낙 중무장한 상태였던 참인지라 칼날이 목을 감싸고 있던 갑옷을 뚫진 못했고 대신 매우 강력한 타격에 의해 목뼈가 부러졌다.[6] 난쟁이 전군의 절반 정도가 일어설 수 있거나 치료의 가망이 있는 부상자들이었다고 한다.[7] 참고로 이 전투로 인해 스라인은 애꾸눈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