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카시노카타

 


1. 개요
2. 특징
3. 행적
4. 기타


1. 개요


明石の方
겐지모노가타리의 등장인물.
아카시에 사는 아카시 뉴도(대처승)의 딸로, 히카루 겐지의 고명딸인 아카시 중궁의 생모이다.[1]
[image] <아사키 유메미시>의 아카시노카타

2. 특징


외모는 로쿠조노미야스도코로와 약간 닮았다고 한다.
어지간한 황녀보다도 훨씬 기품 있고 우아하게 행동하며 작중 인물들 중 가장 악기 연주에 능한 명인 중의 명인으로 나온다.
자신의 아버지인 아카시 뉴도는 대신의 아들이자 겐지의 외당숙이고 어머니는 중무 친왕의 손녀[2]에 수도의 귀족 못지않게 집을 꾸미는 높은 신분의 여자지만 시골 구석에서 자라 신분이 낮은 취급을 당한다. 헤이안 시대에는 중앙이 아닌 지방에서 산 것으로도 취급이 달랐기 때문. 또 아카시 뉴도가 겐지의 친어머니인 기리츠보 갱의와도 친척이기 때문에, 겐지의 친족이기도 하다. 대략 겐지 기준에서 모계로 6촌 정도.

3. 행적


明石の君 → 明石の方
아카시노키미 → 아카시노카타[3][4]
스마에 퇴거한 당시 히카루 겐지는 스마에서 무라사키노우에와 연락을 주고받으며 자신의 재산과 사람들을 맡겼고 무라사키노우에는 이조원에서 니조노키미(二條の君)라 불리며 훌륭히 관리해내는 것으로 이조원의 여주인이자 겐지의 처로서 입지를 굳혔다.
그러던 어느 날 꿈에서 아버지 기리츠보테이를 만나 경고를 듣게 되고 아카시에서 찾아온 아카시 뉴도가 그를 이용해 출세하고자 찾아와 아카시로 옮기라는 말을 하게 된다. 이에 겐지는 처음에는 시큰둥했으나 스마에서 태풍이 몰아치자 집이 망가지기 전에 아카시로 옮겨 뉴도의 집에 머무르게 된다.
본래 아카시 뉴도는 수령이었는데 탐관오리 짓을 해서 많은 피해를 끼쳐 지방으로 쫓겨온 인물이다. 부패한 관리로 내쫓겨 도읍에 면이 안 선다고 출가해 그곳에 눌러앉고, 출가까지 하지만 그 욕심은 어디 안 가서, 딸 아카시노키미(明石の君)를 이용해 가문을 일으킬 욕심으로 여러 교양을 배우게 한다. 중앙귀족 하나가 스마로 온 걸 보고 저 자다 싶어서 접근해 자신의 딸인 아카시노키미를 겐지에게 소개시켜준다. 겐지는 아카시노키미와 만남을 가지고 서로 어울리게 되는데 아카시노키미(明石の君)는 중앙귀족인 겐지에게 최대한 조심해서 처신하는 한편 뛰어난 능력으로 겐지를 사로잡게 된다. 그렇게 이 둘은 아카시에서 초라하지만 식을 올려 혼인하고 이때부터 아카시노카타(明石の方)라 불리게 된다.
2년 정도 함께 부부생활을 했지만 아카시노카타(明石の方)는 겐지의 아이를 임신해 아카시노히메키미(明石姬君)를 낳게 되고 겐지는 자신의 예언을 떠올리면서 그게 이루어지리라 예감한다.[5] 겐지는 오래되지 않아 스자쿠테이의 요청을 받아 권력자로서 아카시에서 상경하게 되고 중앙정계에 복귀하게 되는데, 겐지는 딸을 중궁으로 만들 생각이었던 만큼 벽촌에서 기를 수 없기 때문에 아카시노카타(明石の方)와 아카시노히메키미(明石姬君)를 비롯한 아카시 일가 전부 수도 근처까지 오게 된다.
본래 겐지는 로쿠조노미야스도코로에게 받은 육조원을 계절 저택으로 개축하기 전만 하더라도 니조히가시노인에 이들이 살게 하겠다는 계획이 있었고 하나치루사토가 니조히가시노인의 여주인이 되었는데, 그곳에 와서 살라고 했지만 그건 거절하고 일가족이 오이 강변 저택에 집을 마련해 살게 되었다.
엄밀히는 아카시노히메키미를 낳기 전까지는 아카시노키미로 나오다가 딸이 태어난 뒤에 아카시노온카타(明石の御方)라는 경칭으로 불린다. 온카타는 그 사람이 사는 곳이라는 주거를 가리키는 데서 나온 호칭으로 추정되는데, 아카시노키미는 아카시노온카타로 존대받을지언정 정처를 뜻하는 우에로 불리지 못하는 데서 무라사키노우에에게 미치지는 못했음을 알 수 있다.
하지만 겐지는 어머니의 신분이 높지 않다는 것을 우려해 이조원으로 가서 당시 처의 역할을 맡던 무라사키노우에의 자식으로 키우게 한다. 그 때문에 아카시노카타는 어린 딸과 생이별해야 했지만 별다른 수가 없었다. 무라사키노우에의 입장에서는 매우 기분 나쁜 소리가 아닐 수 없으나, 겐지는 과거 예언과 자식복이 없다는 소리를 들어 무라사키노우에와의 사이에서 자식을 기대할 수 없었다.
무라사키노우에는 아카시노카타에게 질투심을 가지고 있었고 아이에 대해서도 처음부터 좋게 여길 수는 없었지만 본시 아이를 좋아하는 성품이라 여자아이 기르는 재미에 흠뻑 빠져 나중에는 이 귀여운 딸과 생이별한 아카시노기미의 처지도 동정하게 된다. 자식을 직접 가질 수 없다는 걸 본인도 알았기 때문에 그 아이를 위안으로 삼았다고.[6]
아카시노히메키미는 성장한 이후 레제인의 뒤를 이은 금상에게 입궐해 아카시 여어(明石女御)가 되고 나중에는 아카시 중궁(明石中宮)이 된다. 아카시 여어 시절 겐지가 육조원을 조영한 후에는 아카시노기미도 수도에 와서 육조원에서 살면서 아카시 여어의 생모로서 대접받게 되고, 이 때 처음으로 육조원에서 무라사키노우에와 대면하게 되는데 서로 경계와 질투를 가지던 사이였지만 직접 만나자 서로의 아름다움과 재주를 인정하고 원만히 지내게 된다.

4. 기타


작가인 무라사키 시키부가 상당히 띄워준 인물로 중류층 출신이던 무라사키 시키부의 신분상승 욕구가 드러난 인물로도 볼 수 있다. 작중에서 혈통을 꽤 높게 쳐주며 잘 부각이 안 될 뿐 아카시에서 엄연히 식을 올리고 혼인한 사이로 나오고, 능력적으로도 누구에게 꿇릴 것 없는 인물이며 정편의 여주인공 무라사키노우에가 직접 대면한 뒤 인정하기도 했다. 하지만 작중에서 무라사키노우에와 달리 온카타로만 존칭이 되며, 결코 노우에로 불리지 못하는 등 무라카시노우에보다 집안에서의 위치는 떨어졌다고 봐야 한다. 무라사키 시키부는 아카시노카타의 행복에 대해 굳이 겐지의 사랑을 다투지 않고 자신의 신분에 걸맞는 행동을 한 것이 행복의 비결이었다고 서술했다.
한편으로 중류층 출신으로서 여러 고난도 보여주는데 아카시노카타는 유독 자신의 신분을 의식한다는 서술이 많고, 사랑하는 딸도 출신문제 때문에 무라사키노우에에게 넘겨줘 오랫동안 만나지 못했다.
첫번째 각주에서 상술한 것과 같이 1951년에 제작된 영화에서는 아와지노우에(淡路の上)라는 이름으로 등장한다. 영화 후반부가 귀양에서 돌아온 겐지의 전후 이야기를 다루는지라, 아카시 뉴도의 딸이며 아버지의 욕심으로 겐지와 혼인하게 되는 것을 제외한 작중 행적은 정편 후반의 온나산노미야와 카시와기 이야기를 바탕으로 각색되었다. 겐지와 혼인하기전 오랫동안 몰래 연애해왔던 소꿉친구의 자식을 가진 것을 알게된 겐지는 이에 노발대발하지만, 무라사키노우에의 만류 밑 팩폭으로 그 둘을 어쩔 수 없이 용서하고 고향으로 돌려보낸다.
[1] 자식복이 없는 히카루 겐지의 수많은 여인들중 소생을 낳은 몇 안되는 여인이다.[2] 헤이안 시대에는 천황의 증손부터 신적강하였기 때문에 신분은 황별씨족인 겐지/헤이시/타치바나 중 하나가 된다.[3] 아카시노히메키미를 낳은 뒤 명칭. 겐지의 자식을 낳았음에도 무라사키노우에에게 서열, 신분이 밀려 평생 우에(上)로 존대되지 못했다.[4] 1951년에 제작된 영화에서는 아와지노우에(淡路の上)라는 이름으로 등장한다.[5] 겐지는 두 번 아들 하나는 덴노가 되고(레제인) 아들 하나는 태정대신이 되고(유기리) 딸 하나는 황후가 된다(아카시 중궁)는 예언을 들었다. 이 중 덴노의 예언은 레제테이로 이미 이루어진 상태였다.[6] 헤이안 시대 때 모노가타리는 대부분 남편에 의해서 맡은 의붓딸을 학대하던 계모 이야기라서 무라사키노우에는 상당히 특이한 부류였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