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장문 배경
신이라든지, 악마라든지, 다르킨의 검에 대해서는 많은 이야기가 전해진다... 하지만 그의 진짜 이름이나 그가 타락하게 된 이유에 대해 아는 자는 거의 없다. 아주 오래전, 사막의 모래가 제국을 집어삼키기 훨씬 이전에 슈리마의 한 용맹한 전사가 태양 원판 앞에 섰고 지금은 잊혀진 천계의 이상을 전하는 화신이 되었다. 초월체로 새로이 태어난 그의 날개는 새벽의 황금빛을 내뿜었고, 갑옷은 위대한 장막 너머에 존재하는 희망의 별자리처럼 빛났다. 그의 이름은 아트록스였다. 모든 고귀한 전투의 선두에는 항상 그가 있었다. 진실하고 공정한 그는 자신을 따르는 신성전사들을 이끌었고, 만 명의 필멸자들이 그의 뒤를 따라 행군했다. 이케시아의 반란을 제압하려는 초월한 전사 여왕 세타카의 부름에도 아트록스는 지체 없이 응했다. 하지만 이 반란이 가져올 결과는 누구도 예상하지 못했다. 공허가 이케시아의 지도자들을 순식간에 굴복시켰고, 마주치는 모든 생명을 소멸시켰다. 오랜 세월에 걸친 절망적인 전투 끝에 아트록스와 그의 종족은 마침내 공허의 위험한 진군을 멈추게 했고 이 세계와 공허를 잇는 가장 큰 균열을 봉쇄하는 데 성공했다. 하지만 이 전투에서 생존한, 자신들을 태양의 자손이라고 칭했던 초월체들은 공허라는 존재를 마주한 이후로 영원히 변해 버렸다. 슈리마는 승리했지만 모두 그 과정에서 무언가를 잃어버렸다... 고귀했던 아트록스도 마찬가지였다. 그렇게 시간이 흐르고, 슈리마는 몰락했다. 모든 제국이 걸었던 길이었다. 지켜야 할 황제도, 그들을 위협하는 공허의 존재도 없었다. 아트록스와 태양의 자손들 사이에서는 충돌이 일어나기 시작했다. 그리고 이 충돌은 결국 그들의 세계를 파멸시킬 전쟁으로 번졌다. 이 싸움에 말려들지 않기 위해 도망친 필멸자들은 경멸을 담아 그들을 새로운 이름으로 부르기 시작했다. '다르킨'이라는 이름이었다. 공허의 습격 이후, 이 타락한 초월체들이 룬테라를 멸망시킬 것을 두려워한 타곤 인들이 개입했다. 전해지는 이야기에 의하면 여명의 성위[1]는 필멸자들에게 다르킨을 함정에 빠뜨려 가두는 방법을 전수했고, 다시 태어난 전쟁의 성위는 다르킨과 맞설 수 있도록 수많은 필멸자들을 결집했다고 한다. 어떤 적도 두려워해 본 적 없는 아트록스와 그의 군대는 완벽히 준비되어 있었지만, 자신들이 속임수에 빠졌다는 사실을 깨달았을 때는 이미 너무 늦은 후였다. 천 개의 죽은 태양보다 강력한 힘이 아트록스와 무수한 전투를 함께했던 검 안으로 그를 끌어당겼고, 불사신 아트록스의 정기를 검에 영원히 가둬버렸다. 무기는 그에게 감옥이었다. 숨 막히는 영원한 어둠이 의식을 짓눌렀고 자결을 택할 힘까지도 빼앗았다. 수백 년이 지나도록 아트록스는 이 지옥 같은 감옥에서 벗어날 수 없었다... 그러던 어느 날, 이름 없는 어느 필멸자가 멍청하게도 그가 봉인된 검을 쥐고 휘두르기 전까지는. 아트록스는 이 기회를 놓치지 않았다. 자신의 의지와 본모습을 본 떠 숙주에 심었고 새로운 육체의 생명력을 빠르게 흡수했다. 그 후로도 수년 동안 아트록스는 뛰어난 생명력이나 의지를 지닌 남성과 여성을 가리지 않고 숙주로 삼았다. 그가 아는 이런 류의 마법은 생명력에 관한 것이 전부였지만, 눈 깜빡할 만큼 짧은 시간 안에 필멸자를 지배하는 방법을 터득하게 된 그는 전장을 찾아다니며 희생자를 포식하여 더 거대하고 강해질 수 있다는 사실까지 깨우치게 되었다. 아트록스는 예전 초월체의 모습을 되찾기 위해 끝없는 고난의 여정에 올랐지만... 검의 수수께끼는 풀 수 없었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결코 검에서 해방될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다. 그가 훔쳐 조악하게 만들어 낸 육체는 과거 영광스러웠던 모습의 모조품일 뿐이었다. 그저 검보다는 약간 큰 감옥에 불과했다. 아트록스의 마음속에서 절망과 혐오가 자라났다. 한때 그의 것이었던 천계의 힘은 이미 세상에서, 그리고 기억에서 지워져 있었다. 이 부당함에 격노한 아트록스는 갇힌 자의 절망에 빠져들었고, 그 절망으로 인해 하나의 해결책을 찾아냈다. 검을 파괴하거나 검에서 해방될 수 없다면 차라리 완전한 파멸을 받아들이기로. 이제 아트록스는 이 무정한 목표를 향해 진군하며 가는 곳마다 전쟁과 죽음을 불러온다. 그는 맹목적인 희망에 집착한다. 모든 피조물을 최후의 전투로 끌어들여 이 세계가 종말을 맞이한다면 아트록스 자신과 그의 검 역시 소멸할지도 모른다는 희망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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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감옥
[image] 어둡다. 숨을 쉴 수 없다는 사실이 날 괴롭힌다. 폐와 목구멍이 텅 비어 있다. 마치 숨을 내쉬던 도중에 멈추어 폐를 쥐어짜 내는 듯하다. 입을 벌렸지만 목구멍이 공허하다. 공기를 들이마실 수가 없다. 가슴에 무서운 압박이 느껴진다. 팔다리의 근육이 말을 듣지 않는다. 숨을 쉴 수가 없다. 숨이 막힌다. 압박이 강해진다. 가슴과 팔다리에 감각이 없다. 비명을 지르고, 눈물을 흘리고, 울부짖고 싶지만, 나는 갇혀 있다. 움직일 수 없다. 벗어날 수 없다. 어둡다. 기억해야 한다. 기억해야- 그 전투. 난 통제력을 잃었었다. 바보 같은 짓이었지. 필멸자들이 나를 향해 대형을 갖췄다. 난 돌진했고, 그들을 흡수했다. 너무나도 큰 유혹이었다. 그들을 차례차례 쓰러뜨리면서 내 진정한 형상과 조금이라도 더 닮을 수 있도록 육신을 변형했다. 필사적으로 육체를 흡수하고 또 흡수하며 아주 조금이라도 과거의 모습을 찾을 수 있길 바랐다. 그러나 나는 불처럼 빠르게 타올랐고, 내가 차지한 숙주의 육체마저 파괴해 버렸다. 어둡다. 그날은 비가 내렸다. 진흙과 오물로 뒤덮이면 어떻게 될 것인가? 이 감옥에 갇힌 채로 아무도 날 발견하지 못한 채 수천 년이 흐른다면? 공포가 두려움을 먹고 자라났다. 전투가 끝나간다. 느낄 수 있다. 내 모습을 되찾아야 한다. 반드시… 반드시... 팔도, 다리도 없다. 어둠이 고치처럼 날 감싸고 있을 뿐이다. 아니다. 나는 다시 일어날 것이다. 하지만 성공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 내가 아는 것이라곤 어둠뿐이다. 제발. 누구든 좋으니 날 발견해줘. 제발! 어둠 속에서 빌고 또 빌었지만 이 치욕스러운 간청에 대한 응답은 침묵뿐이었다. 하지만, 그때… 근처에 필멸자가 느껴졌다. 눈도, 귀도 없지만 누군가가 다가오고 있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그는 적에게서 도망치는 중이었다. 스스로를 지켜야 할 테지. 반드시. 날 쥐어야만 할 것이다. 내가 보일까? 날 지나칠 수도 있다. 그러면 난 여기에 남겨지겠지. 그의 손이 날 움켜잡는 것이 느껴졌다... 그리고 그의 의식이 내게 연결되었다! 나는 그 틈을 파고들어 그를 무너뜨렸다. 마치 배가 난파되어 물에 빠진 사람이 물 위로 올라가려고 동료를 잡아내리 듯 말이다. "이게 뭐지?!" 필멸자가 비명을 질렀다. 하지만 어둠이, 내가 방금 탈출한 그 끝없는 어둠이 그를 침묵시켰다. 그리고 난 눈을 얻게 되었다. 비가 내리고 있다. 오물과 피로 범벅된 학살의 현장이 보였다. 내 앞에는 두 명의 지친 기사가 창을 들고 서 있다. 난 그들을 베고 흡수하여 육신을 새로이 변형시켰다. 그들은 나약했다. 서둘러야 한다. 더 나은 그릇을 찾아야 한다. 더 나은 숙주 말이다. 주변에는 죽은 자들과 죽어가는 자들뿐이었다. 그들이 영혼이 이 세계에서 사라져 가는 소리가 들린다. 전투는 아직 끝나지 않았다. 전장은 성벽 안으로 이어졌다. 나는 절뚝거리며 전투가 벌어진 곳을 향해, 더 나은 숙주를 찾아 몸을 이끌었다. 나는 고함을 질렀다. 승리의 함성이 아니었다. 당연히 아니었다. 이 도시 전체를 흡수한다고 해도 얻는 거라곤 영광스러웠던 옛 모습의 기괴한 모조품뿐일 것이다. 나는 별들이 빚은 순수한 존재였다. 나는 빛이었고, 그에 걸맞은 모습이었다. 나는 역사에 남은 가장 위대한 전투에서 이 세계를 지켜냈다. 하지만 새로 얻은 인간의 육체는 나약하게 죽어갔고 근육과 뼈가 몸부림치며, 망가지고, 내가 만들어낸 혐오스러운 모습에 저항한다. 숨을 들이마셨다. “안 돼, 아트록스.” 내 목소리는 축축했다. 날 둘러싼 죽은 자들의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우리는 나아갈 것이다... 앞으로… 앞으로…” 최후의 망각이 찾아올 때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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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구 배경
고대 종족 다르킨은 지금까지 최후의 5인만이 생존한 것으로 알려졌는데, 그 다섯 중 하나가 바로 전설의 전사 아트록스다. 자신에게 주어진 칭호답게 그의 출현은 항상 전설로 기록되곤 한다. 거대한 검을 우아하게 휘두르며 차분하게 적군을 베어 나가는 전사... 아트록스의 검술 앞에서는 누구나 넋을 빼앗기기 마련이다. 마치 살아있는 듯 춤추는 그의 무기는 자신이 처단한 자의 피를 빨아들여 주인에게 더 커다란 힘을 선사한다. 보다 잔혹하고, 우아한 피의 카니발을 위하여.
아트록스의 이름은 인류가 역사를 기록한 이래 가장 오래된 기록에서부터 찾을 수 있다. 때는 먼 옛날, 마법군단과 수호군이 전쟁을 치르고 있었다. 마법군단은 압도적인 승리를 거듭하며 불구대천의 원수를 말살할 순간을 코앞에 두고 있었으며 수호군은 패배라는 참담한 현실을 받아들이고 있었다. 수적 열세, 형편없는 무기, 거듭된 패전으로 인해 사기까지 땅에 떨어져 버린 군사들에게 희망은 오히려 독이 되었다.
그리고 시간이 최후의 전장으로 두 진영을 이끌었던 그 날, 수호군의 대열 속에서 아트록스가 등장했다. 최후의 그 순간까지 일어서서 싸우자! 갑자기 나타난 그는 크고 짤막하게 소리친 다음 전장의 한복판으로 뛰어들었고, 그 모습은 절망의 늪에서 허우적대던 군사들에게 힘을 불어넣었다. 검과 한몸이 된 듯 적군을 베어 나가는 정체 모를 영웅을 군사들은 경외의 눈으로 바라보았고, 잠시 후 이상한 일이 벌어졌다. 병사들이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전투에 대한 타오르는 갈증에 사로잡히고 있었던 것이다. 선두에서 질주하는 아트록스를 따라 적진에 뛰어든 수호군 전사들은 불같은 분노의 힘으로 적을 제압해 나갔고, 결국 그 누구도 예상치 못한 승리를 쟁취해 냈다.
전투가 끝나자마자 아트록스는 자취를 감췄다. 그러나 수호군 전사들의 내면에서 눈 뜬 분노는 사그라지지 않았다. 기적적인 승리를 맛본 전사들은 여세를 몰아 승리를 이어나갔고, 마침내 월계관을 머리에 쓴 채 당당히 고국으로 귀환했다. 멸망의 기로 앞에서 모두를 구해낸 그들이야말로 시민들의 진정한 영웅이었다. 그러나 어쩐지 당사자들의 마음 한구석에는 어두운 그늘이 드리워져 있는 듯했다. 마음속 깊은 곳에서 무언가가 변하고 만 것이었다. 시간이 흘러 전투의 기억이 희미해진 후에야 이들은 깨달았다. 역사적인 그 전투의 현장에서 자신들이 저지른 짓은 영웅과는 거리가 먼, 극악무도한 학살에 지나지 않았다는 것을.
다양한 문화권의 신화들에는 비슷한 이야기가 등장하곤 한다. 이 모든 신화가 사실이라면, 아트록스는 중요한 전쟁마다 나타나 역사의 흐름 자체를 바꿔놓은 것일지도 모른다. 처참한 어둠 속에서 구원자처럼 등장하곤 했던 그가 이 세상에 남긴 유산은 불화와 충돌로 신음하는 분열된 세계일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