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병손
1. 개요
한국의 독립운동가. 2007년 건국포장을 추서받았다.
2. 생애
함경북도 온성군(穩城郡)에서 독립만세운동을 주도하였다가 체포되어 옥고를 치렀다.
온성군은 함경북도에서도 가장 북쪽에 위치하여 북만주 일대를 근거로 활약하던 독립군이 고국에 진입하는 첫 번째의 교두보였기 때문에 항일의식이 강렬한 지방이었다. 1919년 3월 말 안병손은 <독립선언서>를 입수한 전창우(全昌禹)의 제의를 받고 만세시위를 일으키는 데 동참하였다. 이들은 4월 4일 영충면(永忠面) 회덕동 회동교(懷洞橋)에서 시위를 시작하기로 결정하였다. 그리고 시위에 사용할 큰 태극기 1개와 작은 태극기를 제작하였다. 시위 당일인 4월 4일 오전 안병손은 전창우와 함께 회동교에 모인 2백여 명의 시위대를 이끌고 만세운동을 전개하였다. 시위대는 독립만세를 외치며 영충면사무소를 지나 북창평(北蒼坪) 시장을 향하여 행진하였다. 급보를 받은 북창평 헌병파견소에서는 즉시 현병을 출동시켜 이를 해산하려고 하였으나 수적으로 우세한 시위대는 동요하지 않았다. 결국 일본 헌병들은 시위대를 향하여 발포하였고, 다수의 사상자를 내고 시위 주동자는 체포되었다.
시위 후 체포된 안병손은 1919년 5월 21일 경성복심법원에서 징역 10월을 받았다.
정부는 고인의 공훈을 기려 2007년에 건국포장을 추서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