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창우

 


성명
전창우(全昌禹)
본관
황간 전씨
생몰
1868년 3월 23일 ~ ?
출생지
함경북도 온성군 영충면 북창평리[1]
사망지
미상
추서
건국훈장 애족장
1. 개요
2. 생애


1. 개요


한국의 독립운동가. 2006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받았다.

2. 생애


전창우는 1868년 3월 23일 함경북도 온성군 영충면 북창평리에서 태어났다. 그는 1919년 3월 말 독립선언서를 입수하고 이것을 베낀 후 3월 30일 영충면에 거주하는 김창욱(金昌旭)을 찾아가 독립만세운동을 전개하자고 제의하여 찬동을 얻었다. 4월 1일 전창우는 동지들과 만나 4월 4일 영충면 회덕동 회동교에서 시위를 시작하기로 결정하였다. 그리고 시위에 사용할 큰 태극기 1개와 작은 태극기를 제작하였다.
시위 당일인 4월 4일 오전, 전창우는 회동교에 모인 2백여 명의 시위대를 이끌고 만세시위를 전개하였다. 시위대는 독립만세를 외치며 영충면사무소를 지나 북창평 시장을 향하여 행진하였다. 급보를 받은 북창평 헌병파견소에서는 즉시 현병을 출동시켜 이를 해산하려 하였으나 수적으로 우세한 시위대는 동요하지 않았다. 결국 일본 헌병들은 시위대를 향하여 발포하였고, 다수의 사상자를 내고 시위 주동자는 체포되었다.
이렇게 체포된 그는 1919년 5월 21일 경성복심법원에서 징역 1년 6월을 받았으며, 1919년 6월 19일 고등법원에서 형이 확정되었다. 이후의 행적은 기록이 미비해 알 수 없다.
대한민국 정부는 2006년 전창우에게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했다.
[1] 황간 전씨 집성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