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토니우 코스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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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ntónio Luís Santos da Costa, 1961.7.17 ~
포르투갈의 정치인으로, 현재 사회당의 사무총장(2014 ~ )이자 현직 총리(2015.11.26 ~ ).
리스본에서 작가인 오를란두 다 코스타와 언론인 마리아 안토니아 팔라의 아들로 태어났다. 부친은 포르투갈령이었던 인도의 부촌 고아 출신이며, 모친은 포르투갈인이다. 즉, 혼혈이라는 얘기.
1980년대 리스본 대학교에서 법학을 전공했으며, 이 때 지방의회에서 활동하기는 했으나 학업, 병역 문제로 자주 활동하던 편은 아니었다. 이후 대학을 졸업하고 제대한 이후 본격적으로 정계에 투신하게 된다.
1980년대 후반 사회당에 입당했으며, 1991년 처음으로 국회의원에 당선되었다. 여담으로 부친은 공산당원이었는데, 본인도 부친의 영향을 받아 정계에 입문했을 가능성이 크다. 부자가 정당이 다른 것은, 코스타의 정계 입문 시기가 언제였는 지를 감안하면 굳이 설명할 필요가 없다.
1995년 안토니우 구테흐스[1] 총리 내각의 국회부 장관으로 처음 등용되면서 두각을 드러내기 시작했으며, 1999년 사회당이 재집권에 성공하자 법무부 장관으로 이동했다. 2002년 사회민주당(이하 사민당)에게 패한 뒤로 내각에서 자연스레 물러났으며, 이후 한동안 일개의 국회의원으로 있었다.
그러던 2004년 유럽 의회 선거를 앞두고 유력 후보였던 안토니우 드 소자 프랑코가 급서하면서 코스타는 이 자리를 대신하게 되었고, 이후 유럽의원으로 당선되어 1년을 재직했다. 본디 임기가 5년임에도 불구하고, 2005년 조제 소크라트스 총리가 그를 내정부 장관으로 임명하면서 유럽의원직을 사퇴했기 때문. 물론 이것도 2007년 리스본 시장에 당선되면서 사퇴했다.
평범한 각료직만 지내던 코스타는 리스본 시장에 당선되면서 단순에 거물급 인사로 급부상하기 시작했다. 이 때 뛰어난 시장직으로 인기가 매우 높았는데, 2009년과 2013년에 압도적인 득표율로 연임에 성공할 수 있었다. 이러한 여세를 몰아 2014년 사회당의 새 사무총장에 선출되었고, 이에 따라 2015년 총선의 총리 후보로 자연스레 선출되었다.[2] 물론 시장직은 내려놓게 되었지만...
페드루 파수스 코엘류 총리와 사민당 정권의 각종 실책으로 사회당은 압도적인 1위를 기록했으며, 이 때문에 당초에는 좌파전선, 공산당, 녹색생태당 등 타 극좌 정당들의 지지를 얻어 무난하게 집권할 것으로 보였다. 당연히 사민당이 가만히 있을 리가 없었고, 이에 인민당과 연합해 포르투갈 전진당(이하 전진당)을 결성했다. 이후 전진당에게 뒤지면서 2위로 끝났고, 예상치 못한 선거 패배로 사무총장직 사퇴가 기정사실화 되고 있었다.
그러나 전진당의 의석수가 아깝게 과반에 미달(107/230)했고, 전진당 외에는 죄다 좌파 정당들 뿐이었던지라, 정권 구성에 차질이 빚어졌다. 이러한 와중에 코엘류는 과반도 안 되는 상황에서 2차 내각을 출범시켰으나, 여기서 사회당-좌파전선-통합민주연합(공산당, 녹색생태당; 이하 통민련)이 연합했고, 이들은 코엘류를 무조건 끌어내리겠다고 약속했다. 마침내 좌파연합이 코엘류 내각을 상대로 불신임안을 통과시켰고, 이렇게 2차 코엘류 내각은 얼마 못 가 붕괴하였다. 이후 사회당을 이끈 코스타가 신임 총리에 취임하게 되었고, 좌파전선과 통민련이 지지하는 사회당 소수정부를 구성하게 되었다.
총리에 오르는 과정도 우여곡절이었지만, 총리직에 오른 이후로 긴축정책을 완화하면서 실업률을 크게 내리고 일부 우파적 정책을 받아들이는 등 효율적으로 국정을 운영하면서 인기가 매우 높아 좌우 모두에게서 호평을 받는 편이다. 취임 이후로 사회당 지지율도 덩달아 빠르게 올라가 현재 40%대에서 오락가락하고 있고, 2019년에는 이보다 의석수를 20석 가까이 늘렸다.
António Luís Santos da Costa, 1961.7.17 ~
1. 개요
포르투갈의 정치인으로, 현재 사회당의 사무총장(2014 ~ )이자 현직 총리(2015.11.26 ~ ).
2. 생애
리스본에서 작가인 오를란두 다 코스타와 언론인 마리아 안토니아 팔라의 아들로 태어났다. 부친은 포르투갈령이었던 인도의 부촌 고아 출신이며, 모친은 포르투갈인이다. 즉, 혼혈이라는 얘기.
1980년대 리스본 대학교에서 법학을 전공했으며, 이 때 지방의회에서 활동하기는 했으나 학업, 병역 문제로 자주 활동하던 편은 아니었다. 이후 대학을 졸업하고 제대한 이후 본격적으로 정계에 투신하게 된다.
3. 정치 활동
1980년대 후반 사회당에 입당했으며, 1991년 처음으로 국회의원에 당선되었다. 여담으로 부친은 공산당원이었는데, 본인도 부친의 영향을 받아 정계에 입문했을 가능성이 크다. 부자가 정당이 다른 것은, 코스타의 정계 입문 시기가 언제였는 지를 감안하면 굳이 설명할 필요가 없다.
1995년 안토니우 구테흐스[1] 총리 내각의 국회부 장관으로 처음 등용되면서 두각을 드러내기 시작했으며, 1999년 사회당이 재집권에 성공하자 법무부 장관으로 이동했다. 2002년 사회민주당(이하 사민당)에게 패한 뒤로 내각에서 자연스레 물러났으며, 이후 한동안 일개의 국회의원으로 있었다.
그러던 2004년 유럽 의회 선거를 앞두고 유력 후보였던 안토니우 드 소자 프랑코가 급서하면서 코스타는 이 자리를 대신하게 되었고, 이후 유럽의원으로 당선되어 1년을 재직했다. 본디 임기가 5년임에도 불구하고, 2005년 조제 소크라트스 총리가 그를 내정부 장관으로 임명하면서 유럽의원직을 사퇴했기 때문. 물론 이것도 2007년 리스본 시장에 당선되면서 사퇴했다.
평범한 각료직만 지내던 코스타는 리스본 시장에 당선되면서 단순에 거물급 인사로 급부상하기 시작했다. 이 때 뛰어난 시장직으로 인기가 매우 높았는데, 2009년과 2013년에 압도적인 득표율로 연임에 성공할 수 있었다. 이러한 여세를 몰아 2014년 사회당의 새 사무총장에 선출되었고, 이에 따라 2015년 총선의 총리 후보로 자연스레 선출되었다.[2] 물론 시장직은 내려놓게 되었지만...
4. 총리
페드루 파수스 코엘류 총리와 사민당 정권의 각종 실책으로 사회당은 압도적인 1위를 기록했으며, 이 때문에 당초에는 좌파전선, 공산당, 녹색생태당 등 타 극좌 정당들의 지지를 얻어 무난하게 집권할 것으로 보였다. 당연히 사민당이 가만히 있을 리가 없었고, 이에 인민당과 연합해 포르투갈 전진당(이하 전진당)을 결성했다. 이후 전진당에게 뒤지면서 2위로 끝났고, 예상치 못한 선거 패배로 사무총장직 사퇴가 기정사실화 되고 있었다.
그러나 전진당의 의석수가 아깝게 과반에 미달(107/230)했고, 전진당 외에는 죄다 좌파 정당들 뿐이었던지라, 정권 구성에 차질이 빚어졌다. 이러한 와중에 코엘류는 과반도 안 되는 상황에서 2차 내각을 출범시켰으나, 여기서 사회당-좌파전선-통합민주연합(공산당, 녹색생태당; 이하 통민련)이 연합했고, 이들은 코엘류를 무조건 끌어내리겠다고 약속했다. 마침내 좌파연합이 코엘류 내각을 상대로 불신임안을 통과시켰고, 이렇게 2차 코엘류 내각은 얼마 못 가 붕괴하였다. 이후 사회당을 이끈 코스타가 신임 총리에 취임하게 되었고, 좌파전선과 통민련이 지지하는 사회당 소수정부를 구성하게 되었다.
총리에 오르는 과정도 우여곡절이었지만, 총리직에 오른 이후로 긴축정책을 완화하면서 실업률을 크게 내리고 일부 우파적 정책을 받아들이는 등 효율적으로 국정을 운영하면서 인기가 매우 높아 좌우 모두에게서 호평을 받는 편이다. 취임 이후로 사회당 지지율도 덩달아 빠르게 올라가 현재 40%대에서 오락가락하고 있고, 2019년에는 이보다 의석수를 20석 가까이 늘렸다.
5. 여담
- 언급했듯이 인도계 혼혈인데, 그가 총리에 취임하면서 포르투갈 역사상 첫 유색인종 총리가 되었다. 더불어 유럽 전체적으로도 사실상 첫 유색인종 지도자라고도 볼 수 있다.
- SL 벤피카의 팬이다. 시장 시절에도 벤피카 경기에 자추 찾아 왔었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