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민주당(포르투갈)

 


[image]
'''Partido Social Democrata'''
'''약칭'''
PPD/PSD
'''한글명칭'''
사회민주당
'''슬로건'''
''Paz, Pão, Povo e Liberdade''
'''상징색'''
주황색
'''창당일'''
1974년 5월 6일
'''이념'''
자유보수주의
기독교 민주주의
'''정치적 스펙트럼'''
중도우파
'''주소'''
Rua de S. Caetano à Lapa, 9
1249-087, 리스본
'''당수'''
후이 히우
'''당원 수'''
108,437명(2020년 기준)
'''국제 조직'''

'''청년 조직'''
젊은 사회민주(JSD)
'''기관지'''
Povo Livre
'''유럽 정당'''
유럽 인민당
'''유럽의회 정당'''
유럽 인민당 그룹
'''공화국의회 의석 수'''
'''79석 / 230석'''
'''유럽의회 의석 수'''
'''6석 / 21석'''
'''웹사이트'''


1. 개요
2. 역사


1. 개요


포르투갈의 정당으로, 사회당과 함께 양당제를 구성하고 있는 거대 정당이다.
명칭 때문에 중도좌파, 사회민주주의 정당으로 오해하기 쉬우나, 실제로는 중도우파, 자유보수주의 정당이다. 이는 브라질도 마찬가지.[1] 이유는 후술.

2. 역사


1974년 카네이션 혁명 직후 "민주인민당(Partido Popular Democrático, 약칭 PPD)"으로 창당되었으나, 2년 후 지금의 당명으로 개명하였다. 다만 현재도 민주인민당 시절의 유산을 남겨두는 차원(?)으로, 공식 약칭은 PPD-PSD이다.
초기에는 사민주의 정당으로 창당되었으나, 이것도 또렷한 사민주의를 표방하는 건 아니었으며, 오히려 노동계의 지지를 기반으로 하고 있던 사회당과 마찰을 빚었다. 무엇보다도 카네이션 혁명으로 '''극우''' 독재정권이 붕괴되었고 보수층이 갈 곳이 없었는데, 둘 다 사민주의를 내세울 경우, 자칫 보수층을 위시로 친독재 정당이 부활할 여지가 컸다. 이에 사민당은 1979년 총선 때 기타 중도우파 정당과 연대하는 등 서서히 우경화하기 시작했고, 1985년 새 대표로 취임한 아니발 카바쿠 실바[2] 밑에서 우파 정당으로서의 입지를 굳히게 된다. 이 전략은 매우 성공적이어서, 후에 극우 독재의 망령이 부활하는 것을 원천적으로 차단할 수 있게 되었다.
민주화+갈 곳 없는 보수층의 표를 끌어들이며 성공한 사민당은, 1979년부터 1995년까지 무려 18년 동안 장기집권을 이루게 된다. 특히 당을 성공적으로 이끈 실바 대표 치하에서, 사민당은 1987년과 1991년 총선에서 단독 과반 의석을 확보해, 타 정당의 도움 없이 단독정부를 무난하게 구성할 정도였다. 하지만 장기집권으로 유권자들의 피로감이 유발되었고, 결정적으로 경기침체에 봉착하면서, 실바는 1995년 1월 대표직을 사임하게 되었다. 이후 페르난두 노게이라가 새 대표로 취임했지만, 230석 중 88석 밖에 얻지 못해 원내 2당으로 추락했으며, 사회당에 정권을 넘겨주게 된다.[3]
이후 사실상 처음으로 야당 생활을 맞이하게 된 사민당은[4] 조제 마누엘 두랑 바호주를 새 대표로 선출했고 1999년 총선에서 재집권을 꾀하지만, 오히려 7석이 줄면서 앞날에 먹구름이 낀 듯 보였다. 그러다 2002년 인민당과의 연정으로 재집권에 성공하지만, 바꿔 말하자면 즉슨 단독 과반에 실패할 정도로 과거와는 달리 기반이 약해졌음을 의미했다. 이후 2005년 다시 패하고, 2011년까지 야당으로 있게 되었다.
하지만 사회당이 재집권한 2008년 ~ 2009년 세계 금융위기를 피하지 못했고, 이 여세를 몰아 페드루 파수스 코엘류 대표를 앞세워 2011년 인민당과의 연정으로 재집권하게 된다. 코엘류는 임기 초반 지지율이 좋았으나, 곧바로 지지를 잃더니 2012년 후반기에 사회당에 도로 1위를 내주게 된다. 그렇게 20%의 지지율에서 허덕이면서 2014년 유럽의회 선거마저 패하게 되고, 사회당이 리스본 시장으로 인기를 얻은 안토니우 코스타를 앞세우자 이에 대한 반격으로 인민당과 연합해 포르투갈 전진당(이하 전진당)을 결성한다.
그렇게 2015년 총선에서 전진당은 230석 중 102석을 차지해 1위에 오르게 되었으며, 사민당도 그 중 89석으로 원내 1당이 되어 85석의 사회당을 압도하게 되었다. 이 때만 해도 언론들은 총선에서 "여당연합이 승리했다"는 식으로 보도했고, 사회당은 총선 패배로 코스타 대표가 사임할 수도 있다는 예측까지 내놓았다. 그러나 연합에도 불구하고 과반 의석에 미달했고, 단순 좌우 스펙트럼으로만 보자면 좌파[5]가 이미 과반이라 실질적으로는 애로가 발생한 꼴이었다. 이 때문에 정부 구성에 난항을 겪게 되었고, 일각에서는 재총선 가능성도 조심스레 점쳤다. 그럼에도 전진당은 일단 단독으로 소수정부 출범을 강행했으나, 어떻게든 코엘류를 끌어내리려고 애를 썼던 좌파 3당(사회당+좌파전선+통일민주연합)이 손을 잡고 불신임을 가결했으며, 이후 코스타가 이끄는 사회당 소수정부가 출범하면서 야당으로 복귀한다.
이후 코스타의 인기가 좋아진 탓에 사민당은 지지율 20% 대에서 허덕이게 되었으며, 심지어 2019년에는 지지율이 단 20%밖에 나오지 못해 창당 후 최악의 성적까지도 예상되었다. 하지만 후이 히우 신임 대표가 토론에서 선방한 덕택에 최악의 성적까지는 막는 데 성공했다. 그러나 탈당파가 CHEGA!를 결성했고, 오랜 연대 파트너인 인민당이 역대급으로 몰락하면서 전망은 밝지 않은 편. 게다가 현재 사회당이 점점 진보적인 정책보다 더 나은 새로운 보수주의-국가주의적 정책을 받아드리고 있어 점점 중도 보수층의 표도 흩어지고 있다.

[1] 브라질 사회민주당(PSDB)과 사회민주당(PSD) 둘이 있는데, 포르투갈의 사민당은 전자와 비슷하다.[2] 후일 대통령이 된다.[3] 참고로 이 때 새로 취임한 총리가 훗날 UN 사무총장이 되는 안토니우 구테흐스이다.[4] 1976년 총선에서도 사회당에게 패했지만, 이 때는 혁명 직후 혼란기였던 지라, 본격적으로 민주주의가 정착된 1979년 이후만을 따지자면 사실상 처음으로 야당 생활을 하게 된 것.[5] 사회당, 좌파전선, 통일민주연합, 사람-동물-자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