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르투갈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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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르투갈인은 금발벽안부터 흑발흑안까지 다양한 모습으로 나타난다. 한 나라 안에서 흑인에 가깝게 보일만큼 피부색이 어두운 사람부터 모르고 보면 북유럽, 동유럽인이라 생각될만큼 금발벽인 백인까지 골고루 발견되는건 지중해권 나라들의 공통적인 특성이지만, 포르투갈은 특유의 역사적 경험 때문에 사하라 이남 아프리카, 인도, 아메리카 원주민, 동아시아계의 혼혈까지 한층 더 다양하게 섞여있다.
영어: Portuguese people
포르투갈어: Portugueses
1. 개요
2. 상세
3. 포르투갈인의 특징
4. 사우다드
5. 포르투갈 인종통계의 문제점
5.1. 역사적 배경
5.2. 포르투갈 흑인과 이민자
5.3. 결론
6. 포르투갈인 목록
7. 관련 문서


1. 개요


넓은 범주로 보면 포르투갈인은 포르투갈 국적의 사람들로 볼 수 있거나, 포르투갈어를 모국어로 삼으며 이베리아 반도에 거주해 온 라틴 민족인 백인종 계열이나 그 혈통을 말할 수도 있다. 보통 포르투갈계 민족을 가리키는 용어로 사용되며, 포르투갈인들은 포르투갈어를 쓰며 대부분 가톨릭을 믿는다.
포르투갈 본토를 떠나 브라질, 앙골라, 모잠비크, 카보베르데, 마카오 등 식민지로 이주한 포르투갈인들도 많은 편이며 특히 마카오에서는 현지 한족과 피가 섞여서 토생포인 즉 중국 태생 포르투갈인이라 불린다. 마카니즈나 마카이엔사로 불리는 마카오인들은 그 수가 꽤 많다.
그 외에도 미국, 캐나다앵글로아메리카영국, 독일, 네덜란드, 룩셈부르크 등 북부 유럽, 그리고 베네수엘라, 페루, 우루과이남아메리카 국가 일부에도 포르투갈계 주민들이 거주하고 있다. 특히 캐나다는 동부지역인 토론토 일대나 래브라도 반도 등에 많은데 이들은 18세기 건너온 어부들의 후손들이다. 레브라도 반도라는 이름 자체를 포르투갈인 어부들이 명명했다. 그리고 미국은 펠리페 2세 때 이베리아 동군연합이 선언되자 장사 등을 하러 스페인 식민지로 흘러들어온 포르투갈 상인들의 후손으로 캘리포니아, 텍사스, 루이지애나, 뉴멕시코, 플로리다 등에 포르투갈 이민자들이 존재하며 남아메리카 북부에도 마찬가지로 스페인 땅이던 베네수엘라나 페루, 우루과이 등에 흘러들어간 포르투갈인 후손들이 좀 있어서 적게나마 이들 나라에서 포르투갈어가 가정에서 쓰이고 포르투뇰이라는 스페인어와 포르투갈어의 크레올도 존재한다.

2. 상세


기원전 12세기 경 상인과 항해사였던 페니키아인이 아시아 서쪽 끄트머리인 레바논팔레스타인에서 출발해 이베리아 반도 남부[1]에 도착하고 뒤이어 아프리카아시아어족 혈통인 이베리아인이 북아프리카에서 이베리아 반도로 들어왔다.[2]
기원전 7세기 경에는 상인이었던 그리스인들이 이베리아 반도에 사군툼 등 식민지를 건설하였으나 포르투갈과는 거리가 닫지 못했다. 대신 기원전 6세기 경 페니키아인이 현 포르투갈 영토에 정착하고 그 뒤 켈트인이 오늘날의 갈리시아 지방을 중심으로 정착을 한다. 이들은 혼혈화가 진행이 되어 기원전 3세기전 현 포르투갈이 위치한 이베리아 반도 서쪽은 루시타니, 켈티키, 쿠네이 등의 부족으로 나타나게 되었으며 기원전 2세기 로마 제국에 식민지에 편입되면서 모두 싸잡아 루시타니아인으로 불리운게 시초이다.
또한 로마의 정복 이후 페니키아 민족의 단일국가인 카르타고가 로마에 피배하자 페니키아인들은 이베리아 반도에서 축출되었으며 기존 이베리아 원주민인 이베리아인과 이주한 켈트인의 혼혈로 켈트-이베리아인들과 켈트인과 혼혈이 안된 루시타니아인들이 모두 현 포르투갈 영토에서 공존하다 로마인들과 혼혈이 진행이 되었고 5세기경 이베리아 반도를 지배했던 로마인들이 게르만족에게 점령당하자 게르만 민족인 수에비족과 반달족, 알란족이 분할해서 지배하였다.
그 후 바로 같은 게르만 계인 서고트족에 의해 이베리아 반도가 점령되어 서고트 왕국이 탄생한다. 이 서고트 왕국이 들어서도 대부분 이베리아 주민들은 라틴계 혈통에 켈트페니키아가 섞인 로마계 이베리아인이었고 고트족은 극소수 왕족들뿐이라 이들은 라틴어를 공용어로 쓰고 인명, 지명 등을 로마식을 흉내낸다. 그러나 이 고트족에서 자신들의 정체성을 찾으려는 가문이 많았는지 스페인어포르투갈어 인명에 게르만계[3] 흔적이 많이 남았다. 그 다음에는 카탈루냐바스크 성씨들이다.[4]
7세기 무슬림 아랍인베르베르인으로 구성된 이른바 무어인이 이베리아 반도 북서부를 제외하고 이베리아 반도 전체를 지배하게 되었으며 이베리아는 '''이슬람화/아랍화'''하였다. 그러자 남아있던 게르만족+로마인으로 구성된 기독교 계 왕국들이 레콩키스타로 9세기는 포르투 중심으로 한 북부를 시작으로 11세기는 포르투갈 중부를 12세기와 13세기에는 리스본지역과 포르투갈 남부를 모두 회복하였다.
이리하여 포르투갈인은 페니키아, 이베리아인, 켈트,라틴, 게르만, 무어, 베르베르인, 세파르딤 유대인 등 다양한 혼혈로 이루어진 민족이 되었으며 이는 포르투갈 한 영토에서 독일, 러시아, 아일랜드, 앵글로색슨처럼 금발벽안인 사람부터 모로코, 알제리북아프리카의 북부 지중해 연안이나 시리아, 그리스, 터키[5], 이라크 등 같이 흑발흑안의 외모를 가진 다양한 사람들이 공존하며 살게 된 것이다.
물론 평균적인 포르투갈인 외모는 비교적 켈트, 게르만족의 영향을 많이 받은 포르투갈 북부를 제외하고는 전반적으로 스페인 남부, 이탈리아 남부, 그리스, 터키, 모로코, 팔레스타인 등 처럼 게르만, 슬라브족에 비해 비교적 작은 체구이며 흑발흑안에 구리빛 피부에 눈과 코가 비교적 크고 수염이나 털이 있는 경우가 많다.[6][7]
참고로 여자들의 경우 라틴계 혈통 특성 상 몸에 털이 많아서 제모를 자주 하는 편이다. 남자들의 경우 소위 '''가슴에 털 난 남자'''들이 아주아주 많다.
그리고 대항해시대를 거치면서 위에 서술했듯이 포르투갈인 남자들은 항해를 하면서 브라질, 아프리카, 인도 등이나 마카오, 동티모르동남아시아 에서 현지인 여자들과 결혼을 하여 코카소이드 피와 아메리카 원주민, 아프리카의 흑인종, 아시아계인 중국인 등이 섞인 혼혈을 만들었다. 대표적 그룹이 마카오의 포르투갈과 중국 혼혈 원주민인 마카이엔사.[8]
뿐만 아니라 포르투갈 본토에 살던 남자들, 특히 군대에서 장교로 복무하던 귀족층 남성 상당수가 해외로 나가 정착해 돌아오지 못하자, 결혼할 남자마저 부족해져 식민지 영토나 해방 노예 출신 비백인 남성과 포르투갈 현지 여성과의 결혼하는 일이 흔했다.
이로 인한 혼혈이 광범위하게 이루어졌다.
원래 이베리아 반도는 고대부터 다양한 혼혈이 이루어진 지역이다. 또 스페인에서는 식민지 출신 주민들을 순혈주의를 가지고 차별한 것과 다르게 대항해시대 이후 포르투갈은 흑인 노예와 식민지 주민[9]의 유입이 많았던 역사가 있었기 때문에 지금의 포르투갈인들은 DNA 검사를 실시하면 게르만, 켈트, 라틴, 이베리아, 아랍, 베르베르 등 코카소이드 인종뿐만 아니라 상당한 수준의 사하라 이남 아프리카흑인, 남아시아인, 동남아시아인, 중국인 그리고 아메리카 원주민 DNA도 함께 검출된다.
현대에도 이주민들은 끊이지 않아서 포르투갈 축구 국가대표팀의 스타플레이어 중 하나였던 데쿠브라질 출신 이주민이며 일본계 브라질인 혈통으로 일본인과 라틴계가 반반 섞인 외형이다. 그리고 에데르 역시 기니비사우 출신 이민자이다.

3. 포르투갈인의 특징


기본적으로 가톨릭 전통과 나머지 유럽에 비해 현격하게 늦은 산업화로 인해서 산업화, 도시화 이전 남유럽 농촌 사회의 전통과 관습이 많이 보존되어 있다는 세간의 평이 강하다. 서양에선 역사적 경험이나, 기질이나 문화적 성향이나 옆나라 스페인과 매우 비슷하지만 그보단 좀 더 차분하고 덜 시끄럽다는 포르투갈 본인들 입장에선 안습해도 딱히 틀리다곤 하기 힘든(...) 선입견이 있다.
안토니우 드 올리베이라 살라자르의 독재시절이 끝난지 시간이 많이 흘렀지만 여전히 종교적인 축제나 휴일 엄수를 하는 사람들이 존재하며 가톨릭 교회가 정치적으로 직접적인 관여를 안할 뿐[10] 여전히 국민들의 사회문화적으로 영향력이 상당히 크다. 옆나라 스페인도 카톨릭이 문화와 사회 전통에 강력한 역사적 영향력을 발휘하는건 마찬가지지만, 프랑코 정권을 겪으며 계속 카톨릭을 열심히 믿냐 안믿냐 자체가 좌우파, 보혁간 정치 쟁점거리가 되면서 탈카톨릭화도 상당히 급격하게 이루어진 편이다. 반면 포르투갈은 애초에 살라자르 정권 자체가 프랑코에 비하면 전국에 피비린내나는 트라우마급 대규모 정치적 유혈 탄압을 저지른건 아니라 카톨릭 교회와 정치적 야권의 관계도 비교적 덜 험악했고,[11] 따라서 민주화 이후 세속화도 마찬가지로 스페인에 비교해선 연착륙한 편이다.
어릴때 부터 부모나, 조무모에게 종교적 교육을 받으며 특히 중산층 이상 계층일 수록 예의범절, 타인에 대한 양보와 배려, 가난한 자를 돕는 것을 매우 중요하게 생각한다. 전반적으로 포르투갈이 산업화가 워낙 늦었고 미약했는지라 여전히 장유유서 같은 농촌 사회의 가치관이 강한편이다. 대부분 유럽 국가들이 무신론화될 때 옆나라 스페인도 그나라 특유의 근현대사, 정치적 상황과 맞물려 상당히 종교계가 타격을 입었는데 포르투갈은 이와 대조적으로 사람들이 굳이 가톨릭에서 발을 빼려하지 않는다. 그래서 스페인에서 개신교가 부흥하는데 비해 포르투갈은 개신교도 극소수에 불과하다. 근데 옆나라 스페인과 비슷하게 카톨릭 교회의 사회적 영향력이 강하다고 해서 사회 분위기가 딱히 금욕적인건 아니라서(...) 마약, 섹스 같은 현대 사회의 향락에도 관대한 분위기이다.
특히 식사예절을 중요시하여 식당에서 부모들은 어린 자녀들이 뛰어다니거나 큰 소리를 지르면 바로 주의를 주고 다른 사람들에게 사과를 하는 모습을 볼 수 있으며 아이들이 식사가 끝날 때까지 먼저 일어나는 것이 절대로 허락되지 않는다.
포르투갈인들은 유럽 내에서도 예의바름이 제법 잘 알려져 있으며 온순하고 낙천적인 성격 때문에 무언가를 빨리 얻으려고 서두르거나 하는 법이 없다. 같은 라틴계 국민인 스페인인, 프랑스인이나 이탈리아인들이 시끄럽고 성질머리로 유명한 것과 너무 달리 조용하고 온순하다.
그리고 같은 라틴 국가인 이탈리아, 프랑스스페인처럼 점심식사하는데 2시간 이상을 할애하는 편이며, 식당에서도 친한 웨이터와 인사 나누는데 5분 이상이 걸리며, 마트 계산대 앞에서도 천천히 계산하고 안부인사까지 나눌 정도이기 때문에 계산대 줄은 금방 늘어나게 되고 이를 불평불만하는 사람들이 거의 없다.[12]
일할 때도 절대 서두르는 법이 없어 공공기관 공무원들 역시 민원처리 하나 해주는데 한세월이며, 이에 습관이 몸에 밴 포르투갈 국민들도 그냥 기다린다. 이 외에도 자택에 인터넷 설치, 집수리 등 사람 한명 부르는 것도 미리 예약을 해야하며 예약하고 한달 뒤에 와서 처리해주는 일이 간혹 있긴 하다. 하지만, 시간 내에 해야할 일을 늑장부릴 정도로 게으른 것은 아니다.
또한, 함께 식사하거나 음주하기 위해 또는 생일 등을 축하하기 위해 많은 사람들이 함께 모여 흥겨운 시간을 갖는 것을 선호하는 편이며 개인의 시간을 더 중요하게 생각하는 서유럽이나 북유럽, 북미 문화권과 달리 가족,지인,이웃들과 함께 모여 시간을 보내는 것을 선호하는 특성을 볼 수 있다. 실제로 결혼식도 2~3일에 걸쳐서 양가의 가족,친척,이웃들과 축하해주는 문화가 여전히 존재한다.
음식은 다양한 대구, 문어, 정어리 등 해산물 요리를 즐겨 먹으며 짠 맛이 강하게 나는 것이 특징이다.[13] 다만, 이것은 문화를 잘 이해 못해서 발생하는 것으로, 주식인 빵과 같이 먹으면 그럭저럭 먹을만 하다. 한국음식도 밥 없이 반찬만 먹어보면 엄청 짜고 매운게 널려있다. 후식으로 단 맛이 나는 디저트를 먹는 것을 당연하게 생각하는 편이다.
포르투갈인들은 기본적으로 조용하고 소박한 이미지를 가지고 있으며 같은 라틴계 민족인 스페인, 프랑스, 이탈리아처럼 외향적이고 시끄러운 모습과는 상반된다. 물론 라틴인들의 다혈질적인 기질도 가지고 있어 운전시 무모할 정도로 거칠게 운전하는 모습을 종종 목격이 될 때도 있지만 기본적으로 타인을 배려하는 문화 덕분에 횡단보도에서 보행자가 걸어갈 시 자나가라는 손짓을 하면서 양보하는 면도 동시에 볼 수 있다.
포르투갈 현지인들의 얘기에 따르면, 세계 탐험을 자주 다니다보니 어딘가 세상사에 초탈해진 구석이 생겼다고 보고 있다. 포르투갈 영화 감독 페드로 코스타는 내한 당시 "우리는 더 이상 개발이나 아니면 세상의 다른 지역들을 탐험하는 데 대해서 관심이 없었습니다. 굉장히 유명한 작가, 시인인데요. 페르난두 페소아라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 사람이 한 말에 의하면 “우리는 모든 걸 발견하고 정복한 이후에는 할 일이 아무것도 없어서 실업자가 되었다." 우리는 할 일이 없어졌고요. 그래서 약간 시에도 관심이 생기고요. 바다를 바라봅니다. 그래서 기타도 치고 축구도 합니다. 그런데 축구를 잘 하지 못합니다. 그리고 가끔 영화도 만들죠. 이상한 영화를 만듭니다." 라고 밝히기도 했다. 어디까지나 개인 의견이지만, 포르투갈의 문화나 정서에서 대한 현지인의 관점을 엿볼 수 있는 부분.
옆나라 스페인과 마찬가지로 남자는 수염을 기르는 사람이 많다.

4. 사우다드


이러한 국민성 이면에는 우리 한국인의 '''정''' 그리고 '''한'''과 비슷한 국민적인 정서가 저변에 존재하여 이를 사우다드(Saudade)[14]라고 한다. 사우다드 역시 다른 언어로 딱히 번역할 수 없다는 점에서 정이나 한 비슷한 느낌이다.
포르투갈 사람들이 대항해시대 시절부터 바다와 살아오면서 느꼈던 모든 감정을 담고 있는 단어인데 특히 안타까움, 그리움과 애절한 감정을 총체적으로 의미한다.
이러한 정서에 19세기 항구도시 리스본으로 흘러들어 온 포르투갈 식민지[15]의 음악들이 합쳐져 탄생한 것이 바로 파두이다.

5. 포르투갈 인종통계의 문제점



5.1. 역사적 배경


사실 포르투갈의 인종통계는 잘 맞지 않는 경우가 많다.
일단 포르투갈정부에서는 프랑스, 터키처럼 인종적 구별을 절대로 하지 않는데 그 이유는 포르투갈 사회의 다양성을 추구하는 헌법에 위배된다고 간주하기 때문이다.
다만 포르투갈 통계국은 국적에 대한 자료를 수집하는 방식으로 집계하기도 하는데, 주로 양가에 포르투갈 국적을 가진 사람 사이에서 태어난 자녀를[16] 포르투갈인으로 집계하고 나머지 타국적 배경을 가진 사람들을[17] 서류상에 나타난 자료를 가지고 비포르투갈인으로 집계를 하는 방식이다.
이 집계에 따르면 포르투갈인은 96% 흑인은 1.5%, 기타 2.5%[18]로 나오게 되는데 이것은 포르투갈 현지인이 볼때 상당히 괴리감이 있다.[19][20]
일단 포르투갈은 1975년까지 아프리카,아시아 등지에 식민지를 유지하여 해외영토를 보유한 국가였으며 게다가 독재국가였기 때문에 포르투갈이 과거처럼 노예 제도가 있는 잔혹한 식민제국이 아닌 여러 민족/문화와 융합할 수 있는 공화국이라는 것을 주변 국가에 마케팅을 할 필요성이 다분하였기 때문에 필사적으로 아프리카, 인도, 동남아에 거주한 주민들을 본국으로 불러들었으며 당연 그들도 그당시에는 '포르투갈인'이었다.
반대로 코카소이드 포르투갈인들도 이웃 타유럽 국가로 이동하는 것을 제한했지만[21] 그 당시 포르투갈령 해외영토인 앙골라, 모잠비크, 고아, 마카오 등지로 자유롭게 이동이 가능했다.
그러다 식민지 전쟁이후 포르투갈 식민지가 모두 나가 떨어지자 이미 포르투갈 본토로 유입된 구식민지 출신인 주민들을 당장 내쫓을 수가 없었으니 이들은 자연스럽게 '포르투갈인'으로 코카소이드 포르투갈인들과 섞여 같이 집계가 되는 것이 당연했던 것이었다.

5.2. 포르투갈 흑인과 이민자


1975년, 포르투갈카네이션 혁명으로 식민지를 포기하고 독재를 끝낸 이후에도 뒤늦게 포르투갈 과거 식민지였던 국가 출신들[22]이나 포르투갈이 경제성장이 시작된 1980년대 후반에서 1990년대 초반에는 브라질[23]들과 우크라이나, 몰도바, 루마니아, 크로아티아 등 동유럽계 이민자들이 몰려오기 시작했다.[24]
이후 2000년대2010년대에 와서는 영국, 프랑스, 독일, 이웃 스페인EU 국가에서 부동산 투자 및 은퇴이민 목적으로, 그리고 더 나아가 브라질, 멕시코, 중화인민공화국, 터키, 러시아, 아랍에미리트 등 선진 개발도상국들에서 돈많은 부자들이 포르투갈 부동산을 매입하고 투자하여 EU 국가내 자유로운 이동을 위해 골든비자를 얻어 영주권과 시민권을 취득 목적으로 물가가 저렴하고 치안좋고 외국인들에게 관용의 자세를 보여주는 포르투갈로 이민을 오는 편이다.
일단 정부는 갑자기 여기저기서 유입된 이민자들을 관리하기 위해 이들의 국적을 통계를 내고 있다.
우선 포르투갈의 법적 절차에 따라 포르투갈 시민권을 부여하고 있다.[25]

하지만 이민자 일부는 포르투갈어를 아무리 원어민 뺨칠정도로 잘해도 우선 비자를 발급받으면서 생활해야하기 때문에 통계상 이중국적자일 경우에는 중복되어 집계가 되거나 외국인 신분으로 시민권이 없는 포르투갈 내 합법적으로 거주하는 흑인이[26] 15만 명으로 집계된다.
이들은 지금 당장 포르투갈 국적이 없지만 유럽식 포르투갈어를 잘 구사하기 때문에 의사소통에 전혀 문제가 없으며 조건만 충족한다면 포르투갈 국적을 얻어 시민으로서 투표도 할 수 있다. 하지만 대부분 이들의 노동시장이 건설노동,서비스 직종,운동선수,연예계에 치중되어있어 아무래도 유럽계 포르투갈인들에 비하여 저소득층에 놓일 수 밖에 없는 것은 사실이다. 그래서 국적취득이 쉽지 않은 상황이며 받기위해서는 포르투갈 국적자와 결혼을 하던지, 부양자로부터 입양이 되지 않은 이상은 짧게는 5년 길게는 10년이상 노동비자를 연장하면서 기다려야 하는 상황이다.[27]
그러나 일부 자료에서는 포르투갈 흑인 인구가 이 통계 그대로 15만 명이라고 알려져 있는 경우가 많은데 실제로 리스본, 포르투, 알가르베 등 대도시 지역에는 이보다 더 훨씬 많은 흑인 인구가 분포하고 있으며 이 통계자료와 실제 현실에서 피부로 느끼는 온도차이는 상당히 크다.
도시권 포르투갈인들은 상기된 사유로 실제 흑인 비중은 자국 내 최소 5~10%는 되는 상당수라고 생각한다.#
거기다 이것은 포르투갈 내에 체류 중인 외국인들을 대상으로 출입국 관리를 하기 위한 자료인 것이지 포르투갈의 인종비율을 알아내기 위한 자료 통계가 절대로 아니다.

5.3. 결론


포르투갈인들의 평균적인 인식을 감안해 비공식 통계[28]를 내면 실제 유럽계 포르투갈인은 전체인구의 비율이 대략 90% 정도[29][30]이고 흑인[31], 브라질인[32], 우크라이나인[33], 몰도바인[34], 인도인[35], 네팔인[36], 베네수엘라인[37], 마카오인을 포함한 중국인[38] 그리고 같은 EU국적자[39] 등 은 10%정도다.
식민지 시절부터 포르투갈 본토와 해외영토,지역과 왕래가 잦았던 아프리카,중남미 지역 출신들은 포르투갈이 EU가입하기전에 포르투갈에서 일을하고 오랜 거주를 하면 이들은 포르투갈어 구사능력이 기본으로 장착이 되어있었기 때문에 이미 포르투갈 국적 취득이 용이한 점 많았다. 그리하여 포르투갈 출입국 통계는 이와 다소 차이가 존재하지만 동유럽계 이민자(물론 이들도 브라질, 아프리카계 처럼 일부 불법체류자가 존재하긴 한다.)나 다른 EU국가 거주자들은 포르투갈이 EU가입 이후 경제성장을 어느정도 한 이후에 들어온 것이라 이들의 경우는 포르투갈내 실제거주자와 출입국 통계와는 어느정도 비슷한 편이다.
포르투갈 정부에서는 포르투갈어를 사용하며 비록 종교의 자유를 보장하지만 사회문화적으로 가톨릭 문화를 공유하며 포르투갈 영토 내에서 합법적으로 거주하면 그냥 '포르투갈인'으로 규정한다. 그리고 좌익은 특유의 국제주의 따라서, 우익은 상술한 살라자르 정권 시절 루소열대주의 사상의 영향으로 인하여 이런 비교적 널널한 민족관념은 상당히 오랫동안 초당파적으로 포르투갈 정계 주류가 공유해온 이념이다.
또한 포르투갈 사람들은 누군가 자신들을 금발벽안이니 흑발흑안이니 백인이니 흑인이니 다양한 인종적 특징을 고작 한 가지로 일반화시키고 규정짓는 것을 매우 못마땅해한다. 포르투갈은 전통적으로 인종차별이 없는 국가라는 자부심이 있기 때문이다. 취소선 드립이 있었는데 가톨릭을 믿는 것을 포르투갈에서 중요한 공통분모로 보는 거 자체는 엄연히 사실이며 마카오 역시 가톨릭을 믿고 포르투갈어를 써오면 굳이 포르투갈 피가 안 섞여도 그냥 국적을 포르투갈로 줘 버렸다.
이 문서가 작성된 이유도 바로 이 때문이며 실제로 유럽계 포르투갈인 사이에서도 이 것으로 '''항상 논쟁이 되고 있는 사항이고 민감한 주제'''이기 때문에[40][41] 혹시나 포르투갈을 방문해서 현지인들과 대화할 기회가 생긴 위키러들은 그들의 생김새가 어떻게 생기든 '포르투갈인'으로서 있는 그대로 받아주도록 하고 가급적 이 주제로 분위기를 망치지 말도록 하자.

6. 포르투갈인 목록



7. 관련 문서



[1]포르투갈 알가르베, 스페인안달루시아 지방이었다.[2] 이베리아 반도의 어원격인 이베리아인은 철기시대에 북아프리카에서 에브로 계곡으로 처음 이주했던 것으로 여겨진다. 이들은 함계 혈통이다. 기원이 불분명한 바스크인들을 이들과 엮어 설명하는 학설도 있다.[3] 예를 들어 German이라는 이름은 대놓고 헤르만이라 읽히는 게르만에서 유래한 인명이며 여러 성씨들이 고트족에서 유래했다.[4] 스페인/포르투갈과 라틴아메리카에서 가장 흔한 성씨인 가르시아(Garcia)는 바스크계 성씨다[5] 물론 터키인들도 3개 대륙에 걸쳐 큰 영토를 지배한 대제국이었기 때문에 슬라브인,그리스인, 아랍인, 이란인, 인도인 등과 혼혈이 진행되어 한 국가내 금발벽안부터 흑발흑안이 다양하게 존재한다. 애초 현 터키인이라 불리는 아나톨리아 원주민인 오스만리는 원래 '''투르크화한 그리스인과 쿠르드인'''으로 봐야 한다. 이들의 언어는 원래 중앙아시아의 몽골계 유목민인 튀르크에서 유래했으나 혈통은 황인 혈통 중앙아시아와는 전혀 딴판인 백인종 혈통이다.[6] 실제로 포르투, 브라가, 기마랑이스 북부지역은 주로 금발, 푸르거나 녹색눈에 하얀 피부의 외모를 가진 비율이 높고 리스본, 알렌테 주, 알가르베 남부지역은 흑발, 갈색이나 검은색눈 그리고 약간 선텐한 듯한 올리브색 피부를 가진 비율이 높다. 중부지방인 레이리아, 코임브라, 산타렝은 위에 언급한 지역들에서 나타난 특징에서 중간쯤 된다. 하지만 리스본, 남부지방에서 나타난 특징이 더 많은 편이다.관련지도 물론 포르투갈은 이동의 자유가 보장된 나라이다 보니 북부지방이라고 해서 흑발흑안이 안보이는 것도 남부지방이라고 금발벽안이 안보이는 것도 절대 아니다. 어디까지나 체감상 느껴지는 보이는 비율일 뿐 이 것을 대강 통계낸 자료는 있을지 몰라도 정확하게 통계낸 자료는 없다.[7] 포르투갈 북부도 포르투갈 지역에 비해서 높은 것이지 사실 포르투갈의 금발비율은 전체인구의 9%로 스페인 12%, 이탈리아 15% 보다도 낮은 편이고 터키 4%,그리스 4%,알바니아 8%,조지아 6% 보다 높지만 도긴개긴이다. 밝은색 계열(푸른색, 녹색 모두 포함)의 눈색깔 역시 포르투갈의 경우는 전체인구의 22%인데 역시 스페인 26%, 이탈리아 30% 보다도 낮으며 그리스 17%, 터키 18%, 조지아 23%와 별 차이도 없다.관련자료[8] 중국어로는 '''토착화한 포르투갈인'''이라고 토생포인이라 부른다. 외모는 중국인과 비슷하나 중국본토 사람들은 문화와 종교가 다른 이 토생포인들을 대놓고 포르투갈 사람 취급해왔다. 이들 중 성씨가 현재까지 이베리아 식인 사람도 꽤 있는데, 이들은 부계 조상이 포르투갈인이거나 포르투갈식으로 창씨개명한 중국인인 케이스다.[9] 대항해시대 초기가 지나면 선원 대부분을 가톨릭으로 개종한 식민지 주민들인 마카오 출신 중국인, 고아 출신 인도인, 그리고 서아프리카인들로 충당했다.[10] 여러 보수파 정당들도 중세시대나 포르투갈 제2공화국 시절에서나 볼 수 있을 법한 막장스러운 가톨릭 근본주의만 배제시킬 뿐 국민들의 가톨릭 문화정서를 정치에 이용하여 표를 얻고 있을 정도다.[11] 정파적 차이도 고려해야 되는게 스페인에서 반독재 좌익 운동을 주도한 두 조류, 공산주의와 아나키즘은 전투적 무신론이란 점 하나만큼은 공유하며 스페인 내전기때 사이좋게 카탈루냐에서 성당에 불지르고 신부 쏴죽이던 사이였고, 다른 나라 같으면 종교계와 진보 정치계간 그나마 어느정도 관계 조율할만한 중도 자유주의 세력도 스페인에선 그 사회의 역사적 특수성 때문에 반교권주의는 오히려 급진 좌파와 공유하는 성향이 강해서 스페인에서 국체와 교회의 관계는 더욱 분열적인 정치적 쟁점이 되버렸다. 반면 포르투갈은 산업화 선발주자 취급은 결코 못받는 스페인에 비교해서도 강성 좌파의 터전이 될 도시 산업 노동자의 비중이 현격하게 적을 뿐더러, 오랫동안 영국과의 무역으로 실력을 쌓아온 온건 자유주의자들의 영향력도 더 강했다.[12] 이는 같은 포르투갈어권인 브라질도 마찬가지이다. 역시 중화권이자 포르투갈어가 공용어인 옛 식민지 마카오도 이웃 홍콩에 비해 뭐든 한 템포 이상 느려터졌다. 이쪽은 버스탈 때 줄 따위 안 서는데 홍콩은 줄 안서면 야만인 취급받는다.[13] 포르투갈 여행시 음식점을 방문시 짠 것을 잘 못 먹는 사람들은 꼭 "소금 조그만 넣어주세요"라는 뜻인 "Sem sal, por favor"(쎙 쌀, 뽀르 파보르)라고 요청할 것을 추천한다. 관광객 대상 음식점은 짠 맛이 적으므로 짠지 안짠지 알아보고 하자.[14] 포르투갈 본토 발음으로는 사우다드, 브라질 발음으로는 사우다지로 읽힌다[15] 브라질, 그리고 서아프리카/남아프리카 식민지들과 인도 남부, 마카오의 중국음악 등[16] 입양아도 포함이다.[17] 주로 포르투갈 영토로 입국한 타국 여권 소지자 한하여 외국인 등록증명서, 국내거소 사실증명서 등을 포르투갈 공공기관에서 발급 받은자 쉽게말하면 합법적으로 비자를 받고 거주하는자[18] 브라질, 베네수엘라, 마카오, 인도, 네팔 그리고 우크라이나, 몰도바동유럽국가나 포르투갈을 제외한 영국, 루마니아, 프랑스, 독일, 그리고 이웃나라 스페인EU국적자.[19] 다민족사회인 프랑스도 오직 국적으로만 조사하는 방식으로 통계내면 프랑스인이 93% 이고 모로코, 튀니지, 알제리, 기타 사하라 이남 아프리카, 아시아, EU국가, EU제외 유럽국가 출신을 모두 다 합쳐야 7% 이다. 하지만 한 번이라도 프랑스를 방문한 적이 있는 사람들이 과연 이 통계를 믿을 수 있을까? 그만큼 프랑스 국적을 취득한 비백인이 많다는 것이고 포르투갈도 역시 마찬가지라는 것이다.[20] 대신 2004년에 마지막으로 인종통계를 낸 후 더이상 내지 않고 있는데 그 당시에는 유럽계 프랑스 백인이 87%, 북아프리카계 백인(유럽계 백인 제외)과 북아프리카 흑인인 투아레그인을 포함한 흑인, 그리고 중국인베트남인이 대부분인 아시아인이 13%로 나왔다.[21] 이웃 스페인과 철도의 궤간을 다르게 조정할 정도로 살라자르 독재정부가 국민들의 기본권을 극심하게 침해했다 철도 길이 막혀도 독재정부의 탄압을 피해 피레네 산맥을 직접 도보로 넘어 프랑스로 대탈출이 이어졌으며 현재 프랑스에 포르투갈계 이민자 그룹이 상당히 많이 형성되어 있다.[22] 카네이션 혁명에 의한 혼란은 식민지 주민과 군 관계자의 대규모 탈출을 초래하였다. 최대의 식민지인 앙골라와 모잠비크에서는 백인과 흑인을 불문하고 총 1백만명 이상의 주민이 떠났는데, 이 일련의 대탈주는 역사상 평시에 행해진 집단 이주 가운데서도 최대 규모였다. 1백만명이 넘는 인구 중 포르투갈 국적을 취득한 흑인들만 대강 추려내보면, 포르투갈 흑인의 비율이 전체인구 1.5%밖에 안된다는 통계가 얼마나 현실과 동떨어진 소리인지 알 수 있다.[23] 1985년 이후 군사독재가 끝난이후에 더 많이 늘었다. 하지만 이 것과 별개로 포르투갈과 브라질 인적왕래는 시기와 상관없이 활발했다.[24] 이들은 포르투갈이 경제성장이 본격적으로 시작되었을 때 공산주의 체제 붕괴로 경제가 완전히 무너져서 타국 이민이 불가피했다 특히 유고 내전을 겪은 가톨릭 국가인 크로아티아는 현실적으로 생존을 이유로 외국 이주를 택했다.[25] 5년~10년 이상 장기거주자에 한하여 포르투갈어를 일정 등급 이상 구사능력이 있는자, 포르투갈 국적자와 결혼을 하거나 포르투갈 국적자인 부부가 자녀를 해외에서 입양하거나 포르투갈에서 취업,혹은 사업이나 부동산,포르투갈 회사 주식투자를 한 자 대상으로 일정 세금을 내고 이를 관련 기관에 증명하면 심사후에 골든비자부터 시작해서 시민권 혹은 국적을 부여하고 있다. 최근 한국인들 중에서도 문호를 닫은 미국이나 은근히 까다로워진 캐나다, 호주 대신 포르투갈이나 키프로스, 몰타 그리고 포르투갈의 이웃 스페인을 통해 유럽연합 골든비자 및 여권을 취득하려는 사람들도 늘고 있다. 포르투갈은 이 중 이웃 스페인보다도 오히려 더 간단하여 인기가 많다.[26] 앙골라, 모잠비크, 카보베르데, 기니비사우 등 구 식민지들[27] 물론 이 것은 흑인들만 문제가 아니고 같은 유럽계인 우크라이나, 몰도바 등 비EU 유럽출신도 마찬가지이다. 심지어 이들보다 더 취약하고 어떠한 노동시장에도 편입하지 못한 집시은 길거리를 구걸하며 전전하기 일수이고 범죄비율도 훨씬 많이 분포되어 있다. 최소한 포르투갈에서 거주하는 흑인, 동유럽, 중남미 이민자들은 고소득 직종은 아니여도 최소한 경제활동이라도 참가하는데 반해 집시들은 이 것 조차도 못하는 것이 큰 차이점이다. 백인계 포르투갈인, 흑인계 포르투갈인, 브라질인, 우크라이나인, 러시아인, 몰도바인, 루마니아인, 인도인, 마카오인 상관없이 집시들은 멸시대상에 노출 되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사회적 멸시를 이겨내고 포르투갈 축구 국가대표팀으로 활약한 히카르두 콰레스마의 경우도 존재한다.[28] 포르투갈 정부는 절대로 자국내 인종통계를 공식적으로 내지 않는다.[29] 그러나 이들 중 절대다수가 조상 중에 서아프리카 출신 흑인을 포함하고 있다. 러시아인 중에 튀르크계, 우랄계, 몽골-퉁구스계 조상이 없는 사람 찾기 힘든 것과 비슷한 맥락이다.[30] 크리스티아누 호날두처럼 양가의 부모와 조부모는 백인계 포르투갈인이나 그의 증조할머니가 카보베르데 출신인 것 처럼 피부색이 약간 까무스름 할뿐 얼굴,외형 특징이 남유럽백인과 별 차이없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이들은 분명 직계 3~4대 조상중 최소 흑인이 한명이라도 포함이 되더라도 백인으로 비공식 집계되는 경우가 많다. 이런 것 까지 일일이 따진다면 포르투갈 백인비율은 엄청 낮아질 것이다.[31] 식민지시절부터 본토에서 살다가 포르투갈 국적을 취득한 흑인(포르투갈인으로 집계)과 포르투갈 내 타국출신 흑인 체류자 15만, 소수의 포르투갈내 흑인 불법체류자까지 모두 포함하면 포르투갈 전체인구 대략 7%로 70만 명으로 추정된다.#1#2 이는 포르투갈 내 소수민족중 2/3을 차지한다고 보면 된다. 거기다 아프리카계를 제외한 브라질 출신 흑인 혼혈과 피부가 상대적으로 짙은 인도,네팔,동남아계 이민자까지 더한다면 어두운색 피부를 지닌 포르투갈 거주자들의 비율은 이보다 조금 더 늘어날 것이다.[32] 2019년 기준 포르투갈내 브라질 국적자 15만 명관련자료[33] 2019년 기준 포르투갈내 우크라이나 국적자 3만 명관련자료[34] 2018년 기준 포르투갈내 몰도바 국적자 5천명관련자료[35] 2019년 기준 포르투갈내 인도 국적자 1만 7천 명관련자료[36] 2019년 기준 포르투갈내 네팔 국적자 1만 6천 명 관련자료[37] 2019년 기준 포르투갈내 베네수엘라 국적자 6천 명 관련자료[38] 2019년 기준 포르투갈내 중국&마카오 국적자 2만 8천 명관련자료[39] 2019년 기준 영국인 3만 4천 명, 루마니아인 3만명, 프랑스인 2만 3천 명, 이탈리아인 2만 5천 명, 스페인인 1만 5천 명, 독일인 1만 4천 명, 네덜란드인 1만 명, 불가리아인 8천 명 등관련자료[40] 중앙정부의 통제력이 약하고 지방권력이 강한 이탈리아, 스페인 만큼은 아니더라도 실제로 포르투갈도 북부 포르투 중심과 남부 리스본 중심으로 서로 지역감정 구도가 있는 편인데 서로 생김새 편견도 있는판에 포르투+북부 사람들은 리스본, 남부 사람들을 '아랍, 무어놈들'이라고 하고 리스본+남부 사람들은 포르투, 북부 사람들보고 '동유럽 집시같은 놈들'이라고 하며 싸움이 발생한다.[41] 거기다 두 지역간 경제적인 차이도 존재하여 브라질, EU국가, 중국, 터키, 러시아 출신 부자들이 4계절 내내 기후가 좋은 포르투갈에 부동산을 구입해 투자를 많이 하는 편인데 그들의 머니가 아무래도 상대적으로 쌀쌀한 포르투 주변 북부보다는 연중일조량이 많고 따스한 리스본,알가르베 등 남부에 집중되어있다. 고로 당연 리스본과 알가르브 등 남부지역의 땅값이 높을 수 밖에없다. 2013년 기준 1인당 구매력 기준으로 리스본 광역지역이 29,000$, 알가르베가 21,000$, 포르투포함 북부지역이 17,000$이다. 관련자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