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폰소 6세
1. 개요
스페인 왕국의 전신 중 하나[1] 인 레온-카스티야 왕국의 왕. '''용맹왕 알폰소'''라는 별명이 있다. 보통 엘 시드 전설과 에이지 오브 엠파이어 2: 정복자에 의해 '''찌질이'''로 왜곡되었지만 실제는 '''중세 이베리아 반도의 걸출한 명군 중 하나다.''' 한때 '''전 스페인의 황제'''를 자칭해서 유럽 세계의 비난을 받은 적도 있다.[2]
2. 생애
레온-카스티야 왕국의 페르난도 1세의 둘째 아들로 태어났다. 페르난도 1세는 죽으면서 형인 산초 2세에게는 카스티야 왕국, 알폰소에게는 레온 왕국, 막내 가르시아에게는 갈리시아를 물려주었다. 이후 알폰소 6세는 산초 2세와의 대립 중에 잠시 왕위를 빼앗기고 망명을 가기도 했으나, 산초 2세가 의문의 암살[3] 을 당하면서 레온-카스티야 왕국의 왕이 되었다. 이때 재미있게도 알폰소 6세는 9개월 동안 톨레도의 타이파(طائفة, '''이슬람 군주''')인 알 마문의 보호를 받았으며 그와 개인적인 친분을 쌓게 되었다.
알폰소 6세는 후우마이야 왕조 멸망 후 소국(타이파)으로 쪼개진 이슬람 세계의 분열을 이용해서 세력을 확장했다. 이때 레온-카스티야 왕국은 1만의 군대를 동원할 수 있다고 일컬어졌는데, 이는 당시 이베리아 반도에서 가장 강력한 군사력이었다.[4] 그는 이를 이용해 각지의 타이파들로부터 파리아스, 즉 보호금을 상납받았으며 때론 이들의 싸움을 틈타 영향력을 과시하기도 했다. 1074년에 알폰소 6세는 알 마문과 힘을 합쳐 코르도바를 공격했고, 알 마문 사후 내분을 틈타 1085년 가장 중요한 대주교구 중 하나인 톨레도를 무어인들에게서 수복하였으며, 그의 시대에서야 이베리아의 기독교도들은 본격적으로 무슬림에 대한 공세를 취하게 되었다. 몇 차례 성공적인 군사행동 끝에 알폰소 6세는 1083년 안달루시아가 자신의 발밑에 있다고 오만하게 발언할 정도로 레온-카스티야 왕국은 강성해졌다. 다만 이것이 알폰소 6세의 치세의 전성기였고, 곧 당시 기독교 세계의 공격은 일시적인 것임이 드러났다.
알폰소 6세의 세력 확장에 위협을 느낀 세비야의 타이파 알 무타미드는 무라비트 왕조의 유수프 이븐 타쉬핀에게 구원을 요청했다. 1086년 유수프 이븐 타스핀은 군대를 이끌고 이베리아로 들어왔고, 사그라하스 전투(또는 잘라카 전투)에서 알폰소 6세는 3배에 달하는 적의 군세를 과소평가하고 정면대결에 나섰다가 엄청난 피해를 입고 패퇴하고 말았다. 그에게는 다행스럽게도 유수프 이븐 타쉬핀은 곧 후계 문제 때문에 일부 기병대만 남기고 일단 북아프리카로 돌아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전투의 결과는 치명적이었는데, 군사적 피해도 피해였지만 이제 이베리아 최강의 세력은 레온-카스티야 왕국이 아니라 무라비트 왕국임이 드러난 것이다. 타이파들은 이제 알폰소 6세가 아니라 유수프의 보호를 받길 원했고 이들은 카스티야에 바치던 상납금을 끊어버렸다.[5] 이후 유수프가 다시 이베리아로 돌아와 안달루시아의 여러 타이파를 해체시키고 무라비트 왕국에 흡수한 뒤에는 카스티야에 대한 공세에 나서는데 이때 알폰소 6세는 그동안 확장시켰던 것을 토해내고 수세에 몰리게 되었다. 카스티야 연합 왕국은 1097년 콘수에그라 전투에서 패배했고 무라비트 군은 톨레도 주변 성채를 점령했지만 다행히 톨레도는 카스티야의 필사적인 항전으로 지켜낼 수 있었다. 그러자 무라비트 군대는 1102년 발렌시아를 공격했고, 알폰소 6세는 지원군을 파견했지만 패배하여 발렌시아를 구원하는데는 실패했다. 그리고 1108년 우클레스 전투에서 카스티야군은 또 패배하였으며, 이때 알폰소 6세의 유일한 아들인 산초 알폰세스도 전사했다. 알폰소 6세는 이듬해 톨레도에서 사망했다.
말년에 좀 비참하긴 했지만 그래도 그의 치세에 카스티야 왕국은 스페인의 중심지이자 전략적 요충지인 톨레도를 손에 넣을 수 있었고 이는 두고두고 큰 유산이 된다. 그의 치세는 일시적이기는 했지만, 이베리아의 기독교 왕국이 독자적인 힘으로 이베리아의 무슬림들을 제압하며 레콘키스타를 시행할 포텐이 있다는 것을 보여주었고 무라비트 왕조가 쇠락하는 13세기에 들어 이베리아의 기독교 왕국들은 활발하게 레콘키스타에 나서게 된다.
3. 대중 매체
거의 대부분 엘 시드가 주인공인 작품에 나오는지라 찌질이나 빌런으로 등장한다(...).
3.1. 게임
크루세이더 킹즈 2의 시나리오로 배우기를 하면 시작하는 캐릭터가 알폰소 6세이다. 원 역사에서는 1068년에 먼저 산초 2세 측에서 침략하지만 시나리오 자체가 튜토리얼 용이라 알폰소 6세가 40세가 되어 자동으로 사망할때까지 먼저 침략 받지 않는다. 크루세이더 킹즈 3에는 튜토리얼에서는 등장 안하는데, 계책력이 무지하게 높고 첩보장 계책력도 높아서 양 옆의 두 형제를 암살하거나 납치해서 이베리아 반도 북서부를 초장부터 병합할 수 있다. 그래서인지 시나리오에서의 난이도 판정도 "쉬움"으로 되어 있다. 그리고 시작할때부터 누나 우라카와 연인 관계이다. 아무래도 둘이 각별한 관계였다는 설을 반영한듯.
에이지 오브 엠파이어 2에서 앞서 언급되었듯 엘 시드 캠페인의 주적 중 한 명으로 나온다. 그러다 막판에 엘 시드가 발렌시아에서 무어인과 싸우다 전사하자 그때서야 엘 시드를 구국영웅으로 인정한다. 사실 행적 자체는 실제 알폰소의 행적과 크게 다르지는 않다. 정치적 상황이나 알폰소 본인의 입장은 무시하고 엘 시드의 시각으로만 바라보니 찌질이로 보일 뿐.
3.2. 영화
1961년작 "엘 시드"에서 나온다. 행적은 게임이나 엘 시드 전설과 마찬가지로 찌질이 + 빌런 포지션. 실제 나이에 비해 상당히 젊게 나오는지라 더욱 능력도 경험도 없는 찌질이 애송이처럼 보인다. 작중 형인 산쵸나 엘 시드에게 늘 열폭하며 그러면서도 누나인 우라카에게마저 잡혀살며 대다수의 행동을 누나의 결정에 따라 행동한다. 엘 시드는 자신에게 헌신적으로 충성하지만 그것이 자신에게 이득이 되어도 "모든건 내가 이루지 못하고 엘 시드가 다 했어!"라고 분개하며 사사건건 엘 시드와 반목한다. 물론 작품 막판에 엘 시드가 죽자 그제서야 그의 충성을 인정하는 행적은 동일하다.
[1] 스페인은 레온, 카스티야, 아라곤, 나바라가 합쳐져서 탄생하였다.[2] 당시까지 황제는 로마와의 연관성을 증명해야 인정받을 수 있는 것이었기 때문이다. "황제는 황제이되 로마의 황제는 아니다"는 식으로 어물쩡 넘어가는 경우도 있었지만 유럽 세계의 비난을 면하기는 어려웠다.[3] 각종 창작 매체에서는 알폰소 6세를 암살 배후로 취급하나, 실제 배후는 산초 2세와 알폰소 6세의 누나인 우라카 공주(알폰소 6세의 딸인 우라카와 동명이인이며, 서로 간의 관계는 고모와 조카 사이다.)라고 한다. 단, 우라카와 알폰소가 비밀 협약을 맺었다는 의심은 아직도 남아있다.[4] 당시 타이파들이 동원할 수 있는 병력은 작은 타이파는 고작 백 단위로 겨우 300명을 동원하는 것도 힘들어했고, 비교적 큰 타이파라고 하더라도 수천이 고작이었다. 이베리아의 기독교 국가들도 병력 사정이 비슷했다. 알폰소 6세가 유수프와 싸운 사그라하스 전투에서도 알폰소 6세가 동원한 병력이 4750명이었다.[5] 당시 타이파들은 카스티야의 공격을 받지않기 위해 상납금을 바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