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척
羊陟
(? ~ ?)
후한 말의 인물. 자는 사조(嗣祖). 팔고(八顧)의 한 사람. 태산 양보 사람.
태산 양씨 가문은 대대로 이천석의 관직을 지내온 명문가 출신으로, 양척은 효렴에 올라 태위 이고에게 벽소되었으며, 높은 성적으로 시어사가 되었다. 147년에 이고가 양기의 무고로 죽자 이고의 관리였다는 이유로 연좌되어 여러 해 동안 관직에 나아갈 수 없었다.
고제로 기주자사, 호분중랑장, 성문교위, 상서령을 역임했고 태위 장호, 사도 번릉, 대홍려 곽방, 태복 조릉, 대사농 풍방 등이 환관과 혼인해 뇌물을 바치자 양척은 이들을 파면하고 싶었지만 할 수 없었다.
태위 유총#s-3, 사례교위 허빙, 유주자사 양희, 양주자사 유공, 익주자사 방애 등과 함께 맑고 투명한 자들을 추천했으며, 환제에게서 칭찬받았고 하남윤이 되었다. 하남윤 시절에 조일이 찾아왔고 날마다 가서 조일이 양척의 집 대문 앞에서 기다렸다.
어느날 조일이 곧장 들어가서 양척에게 다가서면서 "삼가 서주에서 오랫동안 공의 고상한 풍모를 우러르다가 오늘에야 비로소 만났는데, 갑자기 돌아가시니 이 운명을 어찌할까!"라고 하면서 큰 소리로 곡을 했으며, 문하의 사람들이 모두 놀라 달려 들어와 옆에 가득 들어섰다.
양척은 그가 비범한 인물임을 알아보고 일어나 그를 맞이해 얘기를 나눴으며, 다음날 아침은 양척은 거마를 크게 거느리고 조일을 찾아갔다. 당시 여러 계리들은 대부분 거마와 장막을 성대하게 치장했지만 조일은 낡은 수레에 짚 가리개를 한 채 그 옆에서 노숙했으며, 조일은 양척을 맞이해 수레 아레에 앉아 서로 이야기를 나눴다.
저녁이 되어 떠나갈 때 양척이 그의 손을 잡으면서 "좋은 옥돌을 쪼개보지 않으면 반드시 피눈물을 흘리며 설명하는 자가 생기게 될 것이오!"라고 말했으며, 양척이 사공 원봉과 함께 조일을 칭찬하고 천거하자 조일의 명성이 도성에 진동했다고 한다.
앙척은 검소하게 식사했고 당고의 금으로 인해 집에서 죽었다.
후손으로 양호, 양탐, 양휘유, 양헌용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