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키급 잠수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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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Подводные лодки проекта 667А «Навага»'''
1. 제원
2. 개요
3. 역사
3.1. K-219


1. 제원


1. 배수량: 수상 7,700톤, 수중 9,300톤
2. 속도: 수상 15노트, 수중 28노트
3. 크기: 길이 132m, 폭 11.6m, 흘수 8m
4. 추진기관: 가압수형 원자로*2, 증기터빈*2, 52,000 shp
5. 승조원: 114명
6. 작전지속기간: 70일
7. 작전심도:
8. 무장: 533mm 어뢰발사관*4, 400MM 어뢰발사관*2,
9. SLBM: 667A: D-5 발사 시스템, R-27 16발, 667AU: D-5U 발사 시스템, R-27U 16발.R-31:12발

2. 개요


'''양키급 전략 탄도미사일 원자력추진 잠수함(Подводные лодки проекта 667А)'''은 소련 해군이 건조하여 운용하였던 잠수함이다.
호텔급(K-19) 전략 탄도미사일 원자력추진 잠수함의 뒤를 이어 개발된 SSBN이며 후계함은 델타급 전략 탄도미사일 원자력추진 잠수함이다.

3. 역사


1958년 OKB-18은 신형 탄도 미사일 잠수함의 개발을 시작했다. 기존의 호텔급과는 완전히 새로운 잠수함 설계가 제안되어 프로젝트 667A로 명명되었으며 1962년 인증받았다.
잠수함의 외부는 수중 작전시 저항을 최소화하는 형태로 설계되었다. 이전의 잠수함들과 달리 수평타(horizontal hydroplanes)가 세일에 부착됐다. 실린더 형태의 압력선체는 10개의 구획으로 분리되었으며, 직경은 9.4m였다.
667A SSBN은 D-5 발사 시스템과 사정거리 2,400km의 R-27 미사일 16발로 무장하고 있다.
미사일들은 4, 5번째 구획에 2열로 장비되어 있다. 수심 40~50m에서 3~4노트의 속도로 잠항하며 미사일을 발사할 수 있다. 미사일들은 각 4발의 미사일을 4연사(four salvo)로 발사 가능하다. 발사전 준비시간은 8분이며 연속발사시 각 미사일간 간격은 8초이다. 연사가 끝난 이후, 잠수함이 발사 심도로 돌아오는데 3분이 걸리며 2, 3번째 연사를 위해 발사 튜브에 물을 펌프해넣는데 20~35분의 시간이 걸린다.
주추진기관은 좌현과 우현 각각 가압수형 원자로와 그에 딸린 터보기어 장치들로 묶여 서로 독립적으로 구성되어 있다. 잠항시 최고 속도는 27노트이다. 보조추진 모터는 어뢰 발사 및 비상시의 전력 공급, 부상시의 준비상태 유지를 위해 사용될 수도 있다.
잠수함의 특별한 프로펠러가 내는 소음을 줄이기 위해 압력선체는 음향흡수 고무 타일로 코팅되어 있으며 외부선체는 대수중소음 코팅으로 덮여 있다. 주추진기관과 보조추진기관 모두 고무층에 의해 독립되어 있다.
667A SSBN은 파라반 견인 안테나에 의해 수심 50m에서도 신호를 수신할 수 있는 '클라우드' 전투관리 시스템을 장비하고 있다. 1~4번함은 '시그마' 항법 시스템을 장비했으며, 5번함부터는 구소련 최초의 위성항법 시스템인 '토볼' 시스템을 장비했다. 이 시스템은 북극권과 태평양 지역에 신뢰성있는 항법을 제공했으며 85도 이하의 고위도 지역에서도 미사일의 작전능력을 유지하는 데 도움을 주었다.
1967년부터 1974년까지 총 34척의 667A SSBN이 건조됐다. 24척이 세베로드빈스크에서, 10척이 콤소몰스크-나-아무르에서 건조되었다.
1972년부터 1983년까지 다른 구형 잠수함과 함께 양키급은 D-5U 발사 시스템과 R-27U 미사일을 장비하는 개량을 받았다. R-27U는 사정거리 3,000km로 더 길어진 MRV(다탄두 재돌입체)였다. 업그레이드된 잠수함은 667AU로 지정되었다.
총 34척 (1척 양키II로 개량)이 취역했다.
667A: 1964~1974년 취역, 1983년까지 운용,667AU: 1972~1983년 취역(개장), 1994년까지 운용

3.1. K-2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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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련 영상-음악이 슬프다...
1986년 10월 3일 버뮤다 제도 인근 대서양에서 소련 잠수함 양키급 K-219의 사고가 발생했다
1986년 9월 4일 K-219는 모기지인 소련 북해함대 가지예보를 출발, 작전 계획에 따라 미국 동부 해안을 순찰한다. 하지만 K-219는 긴급한 작전 명령으로 계획된 수리/정비를 끝마치지 못하고 출발하는데 출발 후 바로 6번 미사일 발사관의 방수에 문제가 발견되고, 심지어는 발사관에 물이 들어오는 것을 알려주는 알람장치에 문제가 있음을 발견하였으나 작전 중 수리가 불가능하다고 보고했다. 이 상황에서 작전 중단 후 귀환해야 하였으나 귀환 명령을 받지 못한 채 발사관의 물을 하루 2차례 퍼내는 식으로 응급 대응만을 했다. 또한 이런 상태에서는 미국 해군이 부르는 '미친 이반'Crazy Ivan이라는 회피 기동을 하지 말아야 하였으나 함미에 붙은 미 해군 로스엔젤레스급 원자력 추진 잠수함 USS 어거스타를 떼어놓기 위해 무리한 회피 기동까지 실시했다.
1986년 10월 3일 결국 문제의 6번 발사관으로 물이 쏟아져 들어오고(이것이 급격한 기동 탓이었는지, 크레이지 이반 기동 중 USS 어거스타와 가볍게 충돌하면서 추가로 충격이 가해졌는지에 대해서는 당시 관련자들의 증언이 엇갈린다) 긴급 부상 기동을 하기도 전에 6번 발사관에서 폭발이 일어나며 함체의 강화 외벽에 손상이 발생었으며, 해수와 미사일의 액체연료가 만나 유독 가스인 산화질소 화합물이 함내에 배출되는 가운데 브리타노프 함장의 지휘로 긴급부상했다. 하지만 이것으로 문제가 해결된 것이 아니었다. 잠수함의 원자로가 자동으로 정지되어야 했지만 계속 작동중이였다.
[image] 세르게이 프레미닌 수병 (당시 20세)
폭발로 원자로의 원격 조종이 불가능해지자 기관장 니콜라이 벨리코프 대위와 세르게이 프레미닌 수병이 죽음을 무릅쓰고 원자로에 접근, 원자로 작동 해제에 겨우 성공했으나 프레미닌 수병은 화제로 인해 발생된 기압차로 인해 문을 열지못했고 현장에서 질식으로 인해 사망했다.
또한 인근을 항해 중이던 소련 선박 '크라스노 그바르데이스크 (붉은 근위대)'호가 접근하여 K-219를 예인할 준비를 시작하였다. 사고 현장에는 이미 미 해군 정찰기들 및 미 해군 예인함 포와탄호가 도착했고, K-219가 회피 기동을 하게 한 장본인인 미 해군 USS 어거스타도 부상하여 지켜보고 있었다. 한편 예인을 준비하며 사고 당시 사망한 4명을 제외한 생존 승조원들 모두를 태운 '붉은 근위대'호는 k-219가 이미 침수되어 예인이 불가능해지자 K-219를 침몰하도록 내버려두었다.
결국 K-219는 대서양의 5500m 해저로 가라앉았고, 플루투늄 기반의 30여개의 핵탄두 역시 심해에 가라앉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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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저에 가라앉은 K-219의 상상도
목숨을 바쳐 원자로를 정지시킨 프레미닌 수병은 적성훈장을 추서받았으며, 1997년에는 러시아 최고훈장인 러시아연방영웅을 추서받았다.
함장 브리타노프 중령은 소련 해군에서 불명예제대를 당하고 군사재판을 기다리던 중 1987년 소련 국방장관의 교체로 기소중지 처분을 받았다. 하지만 소련 붕괴 후인 2004년 재심을 신청, 대령으로의 명예제대 판결을 받고 함을 죽인 함장이라는 오명에서 벗어났다. 또한 이 사건을 영화 'Hostile Waters'로 영화화한 워너 브라더스 영화사를 상대로 배상 소송을 하여 승소하였다.
소련/러시아 주장에 따르면 1988년 소련 해양 연구선 ‘아카데믹 므스티슬라프 켈디쉬’호[1]가 침몰지점 탐색을 한 결과 잠수함은 함교 후방부에서 두쪽으로 선체가 절단되었고 발사관 해치 몇 개가 강제로 열린 흔적이 있었으며 침몰 당시 잠수함에 실린 16개의 R-27 미사일이 핵탄두째로 없어진 것을 확인했다고 한다. 이것이 사실이라면 미국 해군 특수부대가 와서 탈취해 간 것으로 생각되지만 미국은 이에 대해 어떤 언급도 하지 않았다. [3]

[1] 영화 타이타닉에 나온 그 해양 연구선이다[2] 그것도 해류가 매우 안정되어있어 너도나도 스쿠버다이빙 하러 오는 태국 푸켓의 앞바다에서 측정한 기록이다[3] 실현 가능성이 매우 떨어지는데 무엇보다도 당시 미군이 침몰한 잠수함에서 핵미사일을 탈취할 방법이 없다. K-219의 침몰 깊이는 약 '''5000m''', 현재까지 인간이 잠수복을 입고 가장 깊게 내려간 깊이가 2003년 영국인이 기록한 '''313m'''이다.[2] 게다가 1980년대의 무인잠수정 기술 수준 및 대서양의 해류 상태를 감안한다면 미군이 무인잠수정을 동원해 핵미사일을 탈취했을 가능성도 없다. 선체 파손 부분도 이러한 사정에서 이해해야 하는데 수면에서 5000m를 수직 강하하여 해저 바닥에 박힌 잠수함이 멀쩡할리가 없다. 파손되는 것이 당연하며 발사관 해치도 이때의 충격으로 열렸다고 보는 것이 타당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