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비에트연방영웅

 

'''소련 훈장의 순차 '''
전승훈장
최상위

레닌훈장

10월혁명훈장

Герой Советского Союза
Hero of the Soviet Union
소비에트연방영웅 (소련영웅)
[image]
소련영웅 칭호 75주년[1] 러시아 기념우표. 비록 이 훈장은 소련 붕괴 이후 사라졌지만 러시아 정부는 그 권위를 부정하지 않는다.
1. 개요
2. 수훈
2.1. 주요 수훈자
3. 관련 문서


1. 개요


1934년 4월 16일 '''소련 중앙집행위원회'''(ЦИК СССР)가 '''소련 영웅''' 칭호를 제정

1939년 8월 1일 '''소련 최고회의 상무회'''(Президиум ВС СССР)가 '''금성메달'''을 제정

1973년 5월 14일 소련 최고회의 상무회에 의해 새 영웅칭호 수여에 대한 규정 승인

1992년 3월 20일 '''러시아 연방 헌법'''(Закон Российской Федерации)에 의해 '''러시아연방영웅''' 칭호를 제정

1934년에 제정되었으며, 소련에서 수훈할 수 있는 '''최상위 칭호이자 가장 높은 훈격'''이다.
'''순도 95%의 으로''' 만들며, 메달 자체는 '''금성메달'''(Медаль "Золотая Звезда") 이라고 불린다. 원래 무공훈장으로 출발한 것은 아니었지만, 거의 대부분이 독소전쟁 기간에 수여되었고 민간 부문은 사회주의노력영웅이 맡고 있었기 때문에 '''사실상 무공훈장'''이다. 물론 어디까지나 '사실상'일 뿐이고, 원칙적으로는 영웅 ''''칭호''''이기 때문에, 법적 기준으로 하면 전승''''훈장''''보다 격이 높다.
1939년 이전에는 영웅칭호(Звание Героя)만이 존재하였고, 인증서와 레닌훈장만을 수여하였다. 1939년 금성메달 제정 이후 메달 제정 이전에 영웅 칭호를 받은 사람들도 금성메달을 받았다. 이런 취지의 영웅칭호는 동독, 중국, 베트남, 체코슬로바키아, 유고슬라비아, 알바니아, 루마니아, 몽골 같은 공산주의 국가에 전파되었고, 북한에서 사용하는 공화국영웅 칭호의 원조도 이것이다.
한편 소련이 붕괴한 이후 러시아, 우크라이나, 벨라루스는 같은 디자인의 영웅 칭호를 만들어서 사용 중이다. 아제르바이잔, 아르메니아 등의 다른 소련 소속국은 다른 디자인을 사용하고 있다. 러시아에서는 '러시아연방영웅(Герой Российской Федерации)'이라는 명칭으로 사용하며 금색 별은 그대로고 리본만 러시아 3색기 색으로 변경하여 사용한다.

2. 수훈


소련영웅 칭호는 '''소련 정권과 사회주의 사회에 대한 영웅적인 위업의 달성, 용맹스러운 공적을 치하'''하기 위해 수여된다.
'''즉, 분야에 관계없이 최고이기만 하면 누구나 받을 수 있다.'''
'''수훈 대상''' : 다음에게 수여된다.
소련 국적자
소련 내의 단체[2]
외국인 및 외국 주재 단체
한마디로 '''아무나'''
1934년 4월 20일에 처음 수여되었다. 북극 탐험을 위해 출항했다가 북극해에서 조난된 쇄빙선 '첼류스킨(Челюскин)'의 승조원들을 구조한 파일럿 10여명에게 수여되었으며, 그 이래로 소련 해체시까지 '''약 1만 2천명'''이 이 칭호를 수여 받았다.[3] 주로 '''독소전 시기에''' 많은 수가 수여되었고 전쟁이 끝난 후에 밝혀진 전쟁 영웅들에게도 사후 수여되었다. 유리 가가린 이후 우주인은 우주 비행을 성공하면 1개를 받는다. 사회주의노력영웅 칭호와 마찬가지로, 수여시 레닌훈장을 같이 준다.
'''영웅 칭호는 다른 훈장들과 급이 다르기''' 때문에 당연히 그에 걸맞는 조치들이 내려진다. 일단 수훈자의 업적을 기리기 위해 그의 고향에 '''영웅의 칭호가 새겨진 청동제의 표식(비문)'''을 설치한다. 영웅의 칭호를 받은 자는 소련 내의 각 명판에 이름이 기록되어 기념되어지며 '''생가는 영웅의 출생지'''로서 마찬가지 명판이 세워진다. 소련 최고회의 상무회의 기록에도 '''영웅'''으로 기입되어진다. 마찬가지, 신문 기사 등에서 해당 수훈자를 명기할 때는 거의 반드시 '''소련 영웅'''(Герой Советского Союза) 이라는 호칭을 앞에 붙인다.
대부분의 수상자가 1회를 받았다. 원래 영웅 칭호는 다른 훈장들과 달리, 말 그대로 '''명예로운 칭호'''로 제정된 것이었다. 그러나 '''나치 독일의 침공 이후 영웅이 폭발하게 되어 2중 영웅, 3중 영웅''' 등의 기현상이 발생하였다. 특히 공식적으로 수상 제한은 3회였지만, 주코프나 브레즈네프 같이 이를 초월하고 4회까지 받은 경우도 있었다.[4] 특히 전쟁이 끝나고 평화기에 접어들면서, 공산당 고위직에 있는 사람들이 별 이유 없이 수여받는 일이 잦았던 덕택에 1988년부터는 복수 수훈이 금지되었다.
군복의 경우, 위/아래 카라의 사이와 수평에 위치하는 '''직선 상'''에 패용하게 되어 있으나, 민간인 수훈자의 경우 1개만 받았을 때는 카라 단추구멍에 패용하는 경우도 있다. 소련영웅 금성메달과 사회주의노력영웅 금성메달이 같이 존재할 경우, 소련영웅 메달을 안쪽에 패용한다. 현재 러시아연방영웅 칭호를 같이 가지고 있을 경우에도 소련영웅 칭호를 안쪽에 패용한다.
군공 훈장인 만큼 소련군 최고위 계급인 대다수의 소련 원수들은 2차대전을 거치면서 적어도 한 개는 받았을 정도로 흔한 칭호였고, 표도르 톨부힌처럼 생전에 못받은 경우에도 나중에 사후 수훈 형태로 달아주는 것이 보통이었다. 다만 못 받은 경우도 없는 건 아닌데, 니콜라이 불가닌의 경우 소련 원수 계급은 갖고 있었지만 원래 군인이 아니라 정치인이었기 때문에 이 칭호 대신 사회주의노력영웅 칭호를 받았다. 필리프 골리코프도 군사기밀을 다루는 정보 계통에서 주로 근무하며 원수까지 오른 인물이었지만, 독소전쟁 초기에 잠깐 야전 지휘관을 맡았다가 자신의 담당 정치장교였던 흐루쇼프와 정치적 충돌을 빚으며 단단히 찍혔기 때문인 지 이 칭호를 받지 못한 채로 원수 진급 후 불과 1년 뒤 퇴역했다.
소련 최후의 원수이자 실질적으로 마지막 국방장관이었던 군부 보수파의 거두 드미트리 야조프의 경우에도 고르바초프가 다소 고깝게 봤는 지 영웅 칭호를 수여하지 않았고, 여기에 야조프가 야나예프 부통령 등 정계 보수 인사들과 손잡고 쿠데타를 일으켰다가 실패하고 소련이 망하면서 영웅과는 영원히 멀어져 버렸다. 그래도 나중에 체포되어 재판을 받을 때 자신이 잘못했다고 순순히 인정했던 까닭에 오래 복역하지 않고 석방되어 러시아군 군사 고문으로 재직하고 있지만, 소련 붕괴 후의 러시아에서도 쿠데타 가담자에게 영웅 칭호는 과분하다고 생각하고 있는 지 조국공훈훈장 4급과 명예훈장 정도만 서훈했다.
용감히 싸웠으나 대조국전쟁에서 포로가 되었다 살아 돌아온 군인들은 스탈린 시대에는 출당당하고 불이익을 받았으나 흐루쇼프 시대 이후 영웅 칭호를 받았다. 브레스트 요새 방어전의 영웅 표트르 가브릴로프와 여성 파일럿 안나 예고로바는 항복하지 않고 용감히 싸우다 부상을 입고 실신하여 포로가 되었지만 포로에서 풀려난 이후 모욕적인 심문을 받았고 굴라크 수용소에 가지는 않았지만 공산당에서 출당당했다. 그러나 흐루쇼프 시대 이후 공적을 인정받아 가브릴로프는 1957년, 예고로바는 1965년 영웅 칭호를 받았다.
개인뿐만이 아니라 전시에 영웅적으로 싸운 도시요새에게도 영웅칭호가 주어졌다. 이런 경우 '''도시는 영웅 도시라고''' 부른다. 세바스토폴이 대표적인 예이고 모스크바상트페테르부르크(레닌그라드)도 영웅도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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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바스토폴 연방시의 시 문장. 별이 달려 있는 훈장이 바로 소련 영웅 훈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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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 스탈린그라드였던 볼고그라드의 시 문장. 윗 부분에 소련 영웅 훈장이 보인다.

2.1. 주요 수훈자


수상자 이름 - 업적, 혹은 직책
  • 1회 수훈
    • 알렉산드르 민 - 소련군 대위. 독소전쟁당시 605 소총 연대의 지휘관으로써 1943~1944년 사이의 총 9번의 독일군 역습을 격퇴하고 우크라이나 볼린 주 해방에 기여한 공적으로 고려인중에서 유일하게 소비에트연방영웅 칭호가 추서되었다.[5]
    • 니콜라이 쿠즈네초프 - 소련 해군 원수이자 소련 해군의 아버지.
    • 니키타 흐루쇼프 - 스탈린그라드 전투 당시 야전군 정치장교. 훗날 소련 공산당 서기장.
    • 이오시프 스탈린 - 소련 공산당 서기장. 일단은 나치 독일히틀러를 무찌르고 함락시킨 공훈이 있었기에 수여받은 것이다. 스탈린은 자신이 연방영웅훈장을 수여받을 자격이 없다고 생각했는지 연방영웅훈장은 패용하지 않았고 노력영웅 훈장만 패용하였다.
    • 라몬 메르카데르- NKVD에 포섭되어 레온 트로츠키를 암살한 남자이다.
    • 레오니트 텔랴트니코프 - 체르노빌 원자력 발전소 사고 당시 소방대 대장[6]
    • 류드밀라 파블리첸코 - 소련군 여성 저격수. 오데사와 세바스토폴에서 독일군 309명 사살.
    • 리디아 리트뱌크 - 소련군 여성 전투기 에이스. 포로가 되었다는 누명을 썼지만 1979년 추락한 전투기와 시신이 발견되어 복권, 1990년에 영웅 칭호를 받았다.
    • 리하르트 조르게 - 소련의 전설적인 스파이.[7][8]
    • 바실리 자이체프 - 소련군 저격수. 스탈린그라드 전투에서 독일군 225명 사살.
    • 발렌티나 테레시코바 - 세계 최초 여성 우주인.
    • 발터 울브리히트 - 동독의 서기장
    • 세르게이 크리칼료프 - 소련-러시아의 우주인[9]
    • 알렉산드르 오스킨 - 소련의 전차 에이스. T-34/85 전차의 전차장으로 1대의 T-34-85로 한 전투에서 독일군의 티거 2를 무려 3대나 격파했다.[10]
    • 유리 가가린 - 세계 최초의 우주인.
    • 이반 판필로프 - 소련군 제28보병사단장. 모스크바 공방전에서 영웅적인 전투를 수행하여 수훈받았으나 최근 연구에 따르면 그 진실성이 의심받고 있다.
    • 표도르 톨부힌 - 소련군 원수 (사후 수훈).
    • 발렌티나 그리조두보바 - 마리나 라스코바의 동료로 공군 조종사로 대조국전쟁에서 크게 공을 세웠다. 1938년에 여성 최초로 수훈받는다. 최종 계급도 대령.
  • 4회 수훈
    • 게오르기 주코프 - 소련군 원수. 더 이상의 자세한 설명은 생략한다.
    • 레오니트 브레즈네프 - 소련 공산당 서기장.[12]
외국인의 경우는 주로 공산권의 소련 우방국 인물에게 주어졌으며, 대표적으로 피델 카스트로, 발터 울브리히트, 가말 압델 나세르 등이 있다. 그 외에 외국인 우주비행사, 2차대전 전투기 파일럿들도 받았다.

3. 관련 문서



[1] 영웅칭호(Звание Героя)의 75주년. 우표에 도안된 금성메달이 제정된 것은 1939년이다.[2] 군대를 포함, 소련 내 존재하는 '''모든 단체'''가 수여 받을 수 있다.[3] 이 칭호(훈장)의 대상자에는 소련 군인뿐 아니라 민간인도 포함하기에 1만 2천이라는 숫자는 거대한 소련이라는 나라의 인구를 생각해보면 지극히 적은 숫자라고 할 수 있다.[4] 주코프는 공적이 엄청나게 많기 때문에 그럴 수 있고 그러는게 당연하지만..브레즈네프는....[5] 올레그 최는 러시아연방영웅이다. 참고로 이 훈장보다 한 단계 격이 낮은 사회주의노력영웅을 고려인 출신 김병화가 2번 수훈받았다. [6] 휘하의 대원들과 분투하여 3호로가 터지는걸 막았다. 만약 3호로가 터졌다면 사고의 규모는 현재의 피해는 '따위'로 취급할 수 있을 정도로 커졌을 것이고, 수습 불가능한 대재앙이 벌어졌을 것이다.[7] 일본에서 활약하며 독일의 소련 침공 계획을 사전에 경고하였다. 하지만 스탈린은 나의 히틀러는 그러지 않아!로 일갈했다. [8] 조르게도 독소전에서 공을 세웠는데, 일본군이 진주만의 미군을 공격하고, 태평양과 동남아시아를 침공하며 소련과 전쟁할 의사가 없는것을 알아내 알렸다. 이 정보로 소련이 일본의 뒤통수를 걱정하지 않고 독일과의 전쟁에 극동과 시베리아의 병력을 동원할수 있었다. [9] 이 분은 소련 해체 후에 새로 제정된 러시아 연방영웅 훈장을 첫 번째로 수훈한 사람이다.[10] 고작 3대라고 여길 수도 있는데, 티거2는 T-34 몇대가 다굴을 놓아야 잡을 수 있다. 그것도 정면으론 어림도 없고 옆이나 뒤를 잡아야 그나마 가능하다는 점을 보면 흠좀무. 물론 나치의 전차 운용법 자체가 부족한 전차를 몰아서 한곳에 배치하여 상대 전차의 숫자를 맞춰서 상대하는 방식이기에 T-34 수십대가 티거2 1대를 상대로 몰려오는 경우는 전혀 없었고 있다면 T-34 한두대 잡고 티거2가 터지는게 정상이다. 비록 교전 거리까지 가기 전에 티거 2 전차포에 최소 10대는 터지겠지만. 물론 전쟁 말기에 베를린 전투에서 티거 2대가 각각 T-34를 30여대씩 잡고 리타이어 하거나, 티거2 5대가 몰려오는 소련군을 상대로 엘베강으로 가는 길을 며칠간 수비한 사례가 있긴 하지만, 대체적인 통계를 보면 결과적으로 10:1 수준의 전투 교전비는 리버 6마리가 한부대씩 몰려오는 히드라를 한 5번 정도 막아서 나온 교전비라고 보면 되며, 물론 히드라의 본진테러를 막으려다가 퍼지고 스캐럽 만들 돈도 없어서 전쟁에서 T-34에 발린 것도 동일.[11] 소련 해군의 아버지인 쿠즈네초프는 1개. 역시 사람은 오래 살고 볼일이다.[12] 이 사람은 별 다른 전공도 없이 서기장이 된 후에 자기 손으로 그냥 달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