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련 해군
[clearfix]
1. 개요
소련 해군은 1991년에 사라진 과거의 해군이다. 러시아가 소련의 정치적 지분을 계승하면서 소련 해군도 대부분 러시아 해군으로 계승되었고 일부는 우크라이나 같은 구소련 소속 국가의 해군으로 분열되었다. 소련 해군은 1960년대까지는 근해 방위능력 정도만을 지닌 연안해군 전력에 가까웠으나 쿠바 미사일 위기 이후 미 해군과의 직접 대치로 인해 받은 충격을 세르게이 고르시코프의 개편하에 1970년대부터 대규모 대양해군으로 개편되어 오케안 70 기동훈련을 기점으로 미국 해군의 가장 큰 라이벌로 부상한다.
잠수함 전력은 미 해군과 대등하거나 부분적 우위를 갖춘 굉장한 전력을 가졌으나 수상함들은 미군에 비해 상대적으로 빈약했고 그 때문에 미 해군에게는 뒤져 세계 2위급의 해군력을 가지고 있었다. 현대의 러시아 해군도 여전히 미 해군에 이은 세계 2위권의 해군력을 가지고 있지만 러시아 해군은 소련 해군 시절과 비교한다면 처참할 정도로 약화된 상태이다.
소련 해군은 북한 해군과 중국 해군은 물론 공산권 해군들에게도 막대한 영향들을 끼쳤다. 소련 해군은 미국의 항공모함, 함대에 대응하기 위해 비대칭 전력을 양성했다. 대표적인 비대칭 전력은 SSBN이나 SSGN같은 미사일을 장착하고 핵원자로를 탑재한 핵잠수함 전력이다. 이러한 영향으로 소련 해군의 특징은 대량으로 순항 미사일을 사용하는 공격형 해군이다. 소련은 서방세계의 대공 요격 체계를 같은 방식으로 대응하지 않았고 대신 초음속 미사일에 치중하여 적 함선이 공격하기 전에 무력화시키는 방법을 선택하였다. 때문에 작은 고속함이나 초계함에도 초음속 미사일로 중무장한 경우가 많았다. 하지만 이를 막기 위한 서방세계의 대공 미사일 개발과 위상배열 레이더를 포함한 이지스 시스템 등의 등장으로 전체적인 세력에서 밀리기 시작한다.
소련 함선은 항공모함에도 과무장을 하는 등 독특한 설계사상이 들어간 함선이 많았다. 또한 소련은 아쿨라급 같은 초대형 원자력 잠수함과 키로프급 같은 순양함을 건조하는 등 거대한 해상 병기를 많이 운용하였다. 이는 거대한 플랫폼을 이용하여 다량의 미사일을 운용하기 위해서다. 또한, 공군의 지원을 기대하기 어려웠고 숫자가 부족한 함정 전력을 만회하기 위해 해군 항공대를 대규모로 육성했으며, 이들은 항모 함재기보다는 육상 기지에서 발진해 작전했다. 뇌격기와 폭격기, 대잠초계기 외에 전투기도 많았으며, 이들 해군 항공대는 독소전쟁 당시 개전 초반에 전멸한 공군이 우랄 산맥 너머에서 재건될 때까지 버팀목이 되어 주었다. 또한, 소련 해군은 1941년 8월 7~8일 사이 야간에 베를린을 발트 함대의 DB-3 뇌격기 15대를 이용해 공습하는 데 성공했으며, 이는 소련의 첫 베를린 공습 성공 사례이다.
징병제하에서 국경수비대 및 경찰 등과 함께 지원제로만 인원을 충당했으나, 대우가 육공군에 비해 매우 좋았기 때문에 육공군 징병시 2년보다 더 긴 3년의 의무 복무 기간을 가졌음에도 지원자가 몰려 인력 걱정은 안 했다고 한다. 이는 공산권 국가의 특수성에서 기인하는 측면도 있었는데, 소련에서는 해군을 혁명의 선봉으로 프로파간다적 측면에서 우대하였기 때문이다. 이러한 소련의 영향으로 다른 공산권 국가들에서도 대체적으로 해군을 우대하는 풍조가 있었다.
2. 역사
제1차 세계대전과 러시아 내전의 역사에서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가장 먼저 들고 일어났던 팔라다급 방호순양함 아브로라는 거의 혁명의 주역 취급을 받아 소비에트 혁명을 찬양하는 노래 가사들에 꾸준히 이름을 올렸으며,[8] 마찬가지로 승조원들의 반란으로 소련의 것이 된 강구트급 전함 강구트는 아예 이름이 10월 혁명(October Revolution, Октябрьская Революция)으로 바뀌었다.
2.1. 2차 세계대전기
제2차 세계대전 이전까지 소련은 내전으로 제국 시절의 장교와 지휘관, 공업 인프라 대다수를 직접 제거해버린 상태에서 유지관리도 안 되고 신규 함정을 건조할 여건도 안 되어 주변국의 도움을 받아(말이 주변국이지 땅이 넓어서 사실상 방방곡곡 문을 두드렸으나 공산국인 소련을 도운 나라는 별로 없다) 근근히 전투함을 모았다. 물론 손 놓고 남의 집 물건만 탐낸 건 아니라서 프로젝트 흑해 1929년형 구축함같이 당시 기준으로 준수한 설계도 그려냈고, 그것을 기반으로 한 프로젝트 1형 구축함은 1933년 소련이 난생 처음으로 자력건조한 현대적인 구축함이었다. 몇 번의 시행착오 뒤에 이탈리아의 마에스트랄레급 구축함을 기반으로 한 프로젝트 7형 구축함 또한 1차대전식 구형 함정이 대다수였던 해군의 주력 구축함 자리를 꿰차면서 중요전력으로 애용되었다.
제2차 세계대전 중에는 나치 독일 해군을 상대하게 되었다. 방대한 영토에 비해 허약한 해군력을 가진 소련 해군의 이 시절 전적은 미국 해군, 영국 해군, 일본 해군 등 당시 해군 강대국에 비해 많이 무시되지만, 들춰보면 흑해 함대의 민간인 및 부상병 후송, 북방 함대의 대지포격지원과 수송선단 호위와 같이 하루하루 급박한 나날이었던 소련에 적잖은 공을 올렸다. 전쟁 중 가장 고생했던 것은 역시 프로젝트 7형 구축함들이었다.
흑해 함대와 카스피해 분함대는 흑해 방면에서 독일 해군의 활동을 막아서 스탈린그라드 전투 및 이후 카프카즈 방면의 소련군의 승리에 큰 기여를 했다. 독일 해군의 주력이 지중해에서 영국해군에 막혀 있었기 때문에 독일 해군은 흑해에서 활발한 활동을 할 수 없었고,[9] 소련군은 이런 제해권을 이용해서 독일군 후방에 상륙작전을 실시, 독일군을 견제할 수 있었다. 물론 전쟁 초기의 상륙작전들은 교란 효과정도만 있었지 소련의 완패로 끝났다. 소련의 본격적인 상륙작전은 케르치 반도 상륙작전 등 전쟁 후기에 가서나 제대로 실현된다.
발트 함대는 개전 후 얼마 안 가 독일이 레닌그라드 주변에 조성한 기뢰밭과 공습에 발이 묶였음에도 레닌그라드 공방전 중 도시의 수비에 큰 역할을 했다.
북방 함대는 연합군에서 보낸 렌드리스 수송선단을 호위하는 임무를 맡았고, 공업이 완전히 회복되지 않은 대전 초기 소련에게 단비와 같은 존재였기 때문에, 독일 공군의 폭격으로부터 보호한느 임무를 맡았다. 그리하여 북방함대는 화려한 함대전보다는 함대의 방공포와 해군항공대의 전투기로 처절한 방공전을 펼쳤다. 독일은 비스마르크급 전함 티르피츠를 보내 길목을 틀어막을 작정이었으나 전함 후드가 격침되고 눈이 뒤집힌 영국 해군의 맹렬한 추격에 쫓겨 도피했다. 그리하여 전쟁 중반 이후에는 주적인 독일의 해군력이 거의 전멸하다시피 해 함대전을 할 필요도 없고 하고 싶어도 할 수가 없게 되어 종전까지 초계 및 호위 임무에 집중했다.
발트함대와 북방함대의 잠수함들은 독일군과 핀란드군의 수송선을 무수히 격침, 독일군의 보급망을 둔화시켰다. 하지만 마찬가지로 잠수함을 대규모로 운용해본 독일군측 기록에 따르면 추축국 선단의 피해는 그다지 크지 않았고, 소련 잠수함들의 숙련도 역시 매우 낮았다고 한다. 소련 잠수함이 본격적으로 발트해와 북해에서 날뛰기 시작한 건 독일 해군이 전멸한 1944년 말부터다.
태평양 함대는 태평양 전쟁말기에 잠시 활약했고, 알류샨 열도의 일본군 점령지를 소련군이 점령하는데 큰 공을 세웠다. 사실 제법 막강했던 대전 초기 일본 해군력이면 충분히 막아낼 수 있었겠지만 이 시점에서 일본 해군은 증발했던지라...
일부에서 2차 대전 당시에 소련군이 이탈리아군조차[10] 가지고 있었던 전함을 보유하지 못했다는 편견을 가지고 있는데 사실과 다르다. 세간의 인식과는 다르게, 소련은 비록 낡았지만 강구트급 전함을 네 척이나 보유하고 있었고[11] 적어도 수치상으로는 경쟁자인 독일에 비해서 압도적이었다. 다만 전형적인 내륙 국가인 소련의 특성상, 전함이 나설 자리는 그렇게 많지 않았다.[12]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2차 대전 당시에 소련이 전함을 보유했다는 사실을 잘 알지 못한다.
사실 강구트급은 러시아 제국 때 설계 제작한 것이므로, 소련 성립 후 한동안은 신형 전함을 만들 생각이 없었던 것은 맞다. 해군력 제한을 위한 런던 군축회의나 워싱턴 군축회의에서 소련은 끼지도 못했으니... 그래도 1930년대부터 전함을 만들 계획을 세우고 소비에츠키 소유즈급 전함과 크론슈타트급 순양전함을 설계, 건조를 진행했으나 독소전 발발로 바다에 띄워보지도 못 한 채 건조가 중단되었다.
그렇다고 해서 강구트급이 마냥 항구에만 틀어박혀 있었던 것은 또 아니다. 비록 구식 전함이긴 하지만 다행히도 독소전쟁이 발발하기 전에 현대화 개장을 끝마쳐서 나름대로 쓸만한 정도는 되어 있었다. 발트 함대 기함 마라#s-4와 1번함 옥차브리스카야 레볼루치야는 레닌그라드 공방전에서 몰려오는 추축군을 향해 함포 사격을 퍼붓다가 각자 격침, 대파라는 엄청난 피해를 입었음에도 불구하고 '''선체를 바닷물에 담근 채로''' 레닌그라드 공방전이 끝날 때까지 함포 사격을 계속하여 훗날 레닌그라드의 불사신으로 불린다. 유일하게 무사했던 3번함 파리쥐스카야 코뮤나도 여기저기 싸돌아다니면서 포격 지원을 하며 요긴하게 써먹었다. 이 전함들은 전후 10년 동안 더 굴리다가 1956년에 스크랩 처리되거나 훈련용 표적함으로 생을 마쳤다.
종전 후 스탈린의 명으로 전력 확대를 위해 열심히 설계도를 그려내고[13] 구축함과 순양함을 다수 건조하려 했으나, 프로젝트 66형 순양함과 같은 대형순양함은 더 이상 설 자리가 없다는 것을 해군도 알고 있었기 때문에, 1953년 스탈린이 사망하자마자 냅다 취소해 버리고 새로운 패러다임인 구축함과 잠수함의 신규 개발에 집중하게 된다.
여담이지만 소련 해군은 전쟁 후 전력 강화를 위해 배상함 형식으로 넘겨받은 구 독일제 함선들을 1950년대 말까지 나름 요긴하게 이용했다. 영국이나 미국 등이 노획한 독일 해군 함선들을 표적함으로 쓰거나 바로 스크랩시킨것과는 대비되는 부분.[14]
2.2. 냉전기
소련 해군의 전성기는 냉전 시대이다. 상기한 설명에서도 알 수 있듯이 제2차 세계대전 당시의 소련 해군은 긴 혁명과 내전으로 조선 인프라가 막장이 되어 순양함 이상의 대형함 건조가 가능한 수준까지 회복하는 데 오랜 시간이 걸렸다. 대조국전쟁 당시 가용 가능한 해군력이라고는 프로젝트 26형 순양함 4척과 프로젝트 7/7U형 구축함 48척, 그리고 제국 시절의 낡은 군함들 뿐이었다. 하지만 제2차 세계대전에서 승전하고 조선 인프라가 회복된 냉전 시대에 접어들면서부터, 소련 해군은 이전과는 비교를 불허할 정도로 큰 발전을 이루게 되었다. 1960년대까지는 연안해군에 가까운 비교적 빈약한 해군이었지만, 쿠바 미사일 위기 이후에는 대규모 대양해군으로 개편될 필요성을 느끼고 본격적인 전력증강 사업에 돌입했다. 1966년, 노벰버급 잠수함과 에코급 잠수함이 전세계의 대양을 일주한데 이어서 1969년, 양키급 잠수함이 세계 일주를 하는데 성공했다. 그리고 1970년, 오케안 70이라는 대규모 해군 훈련이 진행되었고 전세계 오대양 일대에서 소련 해군은 대양으로 진출하는데 성공하면서 서구에선 소련 해군이 대양해군으로 거듭났다고 평가하게 된다.
1973년, 욤 키푸르 전쟁 당시 소련 해군의 대규모 전력이 미해군 항모전단과 지중해 해상에서 대치하면서 쿠바 미사일 위기때와는 다른 모습을 선보였으며 1975년, 안드레이 그레치고 소련 국방장관은 자국 해군이 전세계 대양의 넓은 구역에서 국가 이익을 위해 방어 임무를 수행할 수 있다고 선언하고 소련 해군은 점차 우리가 알고 있는 강대한 해군의 모습을 갖추게 되었다.
냉전 시절의 소련 해군은 특정한 용도와 목적에 전문적으로 특화된 특화병기를 다수 생산하였던 것으로도 유명하다. 당시의 소련 해군은 본래는 특정한 목적에 특화된 특화병기로서 설계된 여러 종류의 특화함을 운용하는 것을 선호하고 있었으나(무리한 범용성 추구로 인해 비판을 받는 현대 미 해군의 Littoral Combat Ship의 실패 사례에서도 알 수 있듯이, 아무래도 범용성을 중시한 함종보다는 각 분야에 특화된 전문 함종이 성능적으로 유리하기 때문이었다. 이 때문에 소련 해군은 대공·대함 임무를 위한 함선과 대잠 임무를 위한 함선을 각각 따로 만들 정도로 철저하게 특화병기를 추구하려 했었다.), 시행착오를 거치면서 이것이 그다지 효율적이지 않고 비용과 인력도 불필요하게 많이 소모된다는 것을 알게 된 이후에는 다른 나라의 해군과 마찬가지로 특화함보다는 다목적함에 집중하는 쪽으로 선회하였다. 이걸 항공모함에도 무리하게 적용하려다가 키예프급이나 어드미럴 쿠즈네초프급처럼 과무장으로 인해 함재기 운용능력이 깎여나가는 실수를 범하기도 했지만.
본격적인 냉전이 시작되자 소련은 바다에서 크게 밀리기 시작한다. 현대 해군 건설은 왠만큼 중공업 생산력이 뛰어난 나라조차도 쉽지 않은 대형 프로젝트로, 주력함을 제작하는 데에는 수천톤의 철과 수 년의 시간이 소요되는데 막 2차 세계대전의 여파를 벗어난 소련에게는 그보다 더 시급한 프로젝트가 셀 수 없다보니 우선순위에서 밀리게 된 것이다. 게다가 소련의 유사시 적국들은 미국, 영국과 같이 2차 세계대전 이전부터 이미 세계구급의 해군을 보유한 국가들이었다. 그렇기 때문에 과거의 적인 독일이 그랬던 것처럼, 특히 세르게이 고르시코프 제독이 해군 총수가 된 이래 비대칭 전력인 잠수함 전력에 힘을 기울였고, 그 결과 소련 해군의 수상함은 미국에 절대적으로 뒤졌지만 잠수함 전력만큼은 미국에 위협적인 수준이 되었다. 특히 1970년대 초반에 건조한 소련 해군의 알파급 핵잠수함은 무려 45노트에 달하는 속도를 자랑해 그때 당시 나토해군의 어뢰로는 격침시킬 수 없는 실로 경악스런 성능을 보였고[15] 오스카급 SSGN은 P-700 그라니트 초음속 대함미사일 24발을 탑재해 미국 항모전단에게 크나큰 위협이 되었다. 미국은 이에 대응해 이지스함들을 생산하는 것으로 대책을 세웠다.[16]
전략적으로 거의 섬나라인 미국과는 달리 소련은 여러 나라와 국경을 맞대고 있는데다가 제대로 된 항구가 많지 않았기 때문에 방위해야 할 범위가 상당해 대규모의 해군 운용은 무리였다. 그리하여 육군이 NATO를 대단히 위협할 정도로 공세적인 전략을 가진 데 반해 해군은 수세적인 전략으로 일관했다. 소련 해군은 똑같이 항모전단을 구성해 미 해군의 항모전단과 직접 대결하기보다는 소련 근해로 다가오는 미 함대나 나토군 수송함대를 원거리에서 잠수함과 미사일로 요격하려는 수세적인 전략을 가지고 있었다. 그래서 제대로 된 항공모함은 1990년 소련이 망하기 1년 전에야 겨우 어드미럴 쿠즈네초프급으로서 운용할 수 있었다. 소련 해군 항공대는 항공모함이 아니라 Tu-22M 초음속 폭격기 같은 대함용 공격기가 육상기지에서 발진하여 미국의 항모전단을 공격하는 것으로 상정되어 있었다. 소련은 온 세계를 돌아다니는 미국 해군을 감시하기 위해 수십 기가 넘는 해상감시용 정찰위성 및 수평선 레이더들을 곳곳에 쫙 깔아놓았으며, 소련 해군 정보부 요원들이 탑승한 정보수집함들은 민간 어선으로 위장한 채 미국 군함들을 졸졸 따라다니며 감시하기도 했다. 미국도 바보는 아니어서 이들의 존재를 알고는 있었지만, 냉전의 분위기상 특별한 조치를 취하지는 않았다.
베트남이 공산화된 후 천혜의 요충지인 캄란만 군항을 임대해서 소련 태평양 함대가 사용하였다. 소련 붕괴 이후 러시아 태평양 함대가 계속 사용하다가 2003년 철수하였다.[17]
미 해군이 정립한 전투함 설계와는 다른 길을 걷는 독특한 디자인의 함선들이 포진해 있어, 보통 소련 해군의 팬이라 하면 냉전기 해군의 팬을 뜻할 정도로 임팩트가 크다. 2차 대전기엔 다른 해군들 사이에 껴서 주목할 만한 전력이나 활약을 보여주지 못한 것도 있고, 초강대국인 미국과 면대면으로 경쟁했던 것에 대한 환상이 크게 작용한다.
3. 소비에트 연방 해군 총사령관 목록
4. 시기별 총 전력들
4.1. 1985년
4.1.1. 잠수함
4.1.2. 항공모함
4.1.3. 순양함
4.1.4. 구축함
5. 소련 시절 군함 목록
5.1. 수상함
5.1.1. 고속정/경비정/초계함
5.1.2. 호위함
5.1.3. 구축함
- 소브레멘니급
- 우달로이급
- 그녜브니급
- 스따라졔보이급
- 아그녜보이급 (프로젝트 30형 구축함) (프로젝트 7형의 뒤를 이어서 덩치를 키워서 항속거리와 대공능력을 더 강화한 물건으로 설계한함선)
- 스코리급 구축함 (프로젝트 30bis형 구축함) (2차대전후에 오그네보이급 구축함을 기반으로 덩치를 더키우고 건조에 용접을 더많이 도입한 함선)
- 레닌그라드급
- 타슈켄트급
- 민스크급
5.1.4. 순양함
- 스베들로프급 순양함
- 슬라바급
- 스베틀라나급 경순양함
- 차파예프급 순양함
- 카라급
- 크라스니 카프카즈급
- 크레스타급 순양함
- 키로프급 미사일 순양함
- 키로프급 순양함(1935년)
- 팔라다급 방호순양함
- 루릭급 순양함
5.1.5. 모니터함
- 하산급 모니터함 - 이쪽은 하천 경계용으로 개발된 함급이다.
5.1.6. 전함
5.1.7. 항공모함
- 어드미럴 쿠즈네초프급
- 키예프급 항공모함
- : 건조 초기단계에 취소
5.1.8. 상륙함/강습상륙함
5.2. 잠수함
5.2.1. 재래식 잠수함
5.2.2. 원자력 잠수함
5.2.2.1. SSN
5.2.2.2. SSGN
5.2.2.3. SSB
5.2.2.4. SSBN
5.2.2.5. 위그선
6. 관련 문서
[1] Народный комиссариат по морским делам РСФСР, 1918년 2월~1923년 11월 12일 존치[2] Народный комиссариат по военным и морским делам СССР (НК ВиМД СССР), 1923년 11월 12일~1934년 3월 15일 존치[3] Народный комиссариат обороны СССР (НКО СССР / Наркомат Обороны), 1934년 6월 20일~1946년 2월 25일 존치[4] Народный комиссариат военно-морского флота СССР (НКВМФ СССР), 1937년 12월 30일~1946년 2월 25일 존치[5] Народный комиссариат Вооружённых Сил СССР, 1946년 2월 25일~1950년 2월 존치[6] Военно-Морское министерство СССР, 1950년 2월~1953년 3월 15일 존치[7] Министерство обороны СССР (МО СССР), 1953년 3월 15일~1992년 3월 20일 존치[8] 대표적으로 2차대전 후 발트 함대의 곡으로 사용된 "친애하는 발트 함대(Родной Балтийский Флот)"의 가사 중에 "아브로라의 첫 포격부터 근위대의 로켓 사격까지(От первого залпа “Авроры”, до залпа гвардейских ракет)"라는 부분이 있다.[9] 독일 해군이 흑해에서 한 활약은 기껏해야 소형 잠수함 몇 척과 어뢰정 몇 척을 루마니아의 강을 이용해서 흑해에 투입시킨 것이 끝이다. 따라서 대전 내내 흑해에서는 독일 공군이 중요한 역할을 했다.[10] 이탈리아군이 졸전으로 이미지가 심각하게 악화된 것 뿐이지 지중해에서 영국이 돌입하기 전 주요 적 함대로 보고 있었던 것이 이탈리아 해군일 정도로 전함,순양함,잠수함들이 독일 해군 만큼 고루 갖추어져 있었다. 물론 현실은 심각한 내부적 병폐가 모든 것을 망쳤지만.[11] 이중에 4번함 프룬제는 손실이 너무 커 해체되었으며 자매함들의 부품으로 전용된다.[12] 하지만 러시아 제국 때도 전함 10척을 보유했다. 당시로 따지면 세계 최고 수준의 해군력.[13] 틀:2차 세계대전/소련 함선만 봐도 거의 태반이 취소선이 그어진 계획함, 건조취소함이다. 실제로 건조한 게 별로 없다고 해서 설계국 사람들도 마냥 놀지는 않았다.[14] 다만 이는 영국과 미국 해군이 전쟁 동안 비대하게 커져 있었다는 점을 감안해야 한다. 전쟁이 끝난 이후 당연히 군 예산은 칼질당했고, 이로 인해 돈이 모자라 자국 수훈함들조차 눈물을 머금고 스크랩하는 와중에 돈 들여가며 노획 함선들을 쓸 이유는 없었다.[15] 그러나 이에 대응해 나토 해군이 50노트가 넘는 어뢰들을 개발하게되자 알파급의 무적신화는 깨지게 된다.[16] 2차대전 이전부터 소련은 잠수함 전력으로는 세계적이었다. 수상함보다는 돈이 덜드는 잠수함 보유에 열을 올려 보유대수는 2차대전 당시 1위였다. 그리하여 발트해나 북해에서 독일의 수송선들은 무수히 소련 잠수함에 격침되었다.[17] 이 캄란만 기지는 19세기부터 프랑스 해군, 일본 해군, 미 해군, 소련 해군, 러시아 해군순으로 베트남의 점령국 혹은 동맹국들이 사용하다가 2003년부터는 비어있다. 지금도 미국과 러시아는 캄란만 기지 사용권을 다시 얻기 위해서 노력중이며, 베트남은 미/러 사이에서 줄타기 중이다.[18] http://en.wikipedia.org/wiki/Kiev-class_aircraft_carrier[19] http://en.wikipedia.org/wiki/Moskva_class[20] http://en.wikipedia.org/wiki/Sverdlov-class_cruiser[21] http://en.wikipedia.org/wiki/Kynda_class_cruiser[22] http://de.wikipedia.org/wiki/Krupny-Klasse[23] http://ru.wikipedia.org/wiki/%D0%AD%D1%81%D0%BA%D0%B0%D0%B4%D1%80%D0%B5%D0%BD%D0%BD%D1%8B%D0%B5_%D0%BC%D0%B8%D0%BD%D0%BE%D0%BD%D0%BE%D1%81%D1%86%D1%8B_%D0%BF%D1%80%D0%BE%D0%B5%D0%BA%D1%82%D0%B0_56-%D0%AD%D0%9C[24] http://de.wikipedia.org/wiki/Kotlin-Klass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