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통
楊統
(113 ~168)
후한 말의 인물. 양목의 아들.
주군에서 벼슬을 지내다가 순제가 서쪽을 순시하면서 연사로 불렀으며, 낭중을 지내다가 상산장사, 건위부승을 지냈다. 여러 차례 사도부에서 부르고 주에서 무재로 천거되었으며, 조양후상, 금성태수를 지냈다.
거기장군종사가 되어 남쪽의 이민족을 치는데 종군했다가 병으로 사직했으며, 다시 관직을 해서 의랑, 오관중랑장, 패상을 지냈고 168년 3월 계축일에 56세로 사망했다.
그가 사망한 날짜에 대한 기록은 약간 오류가 있는데, 후한서에 적힌 효영제기에 따르면 2월 윤월 갑오일에 영제가 할아버지 유숙을 효원황제, 할머니 하씨를 효원황후, 아버지 유장을 효인황제, 어머니 동씨를 신원귀인으로 추존했다는 기록이 있다.
그런데 삭윤고에 따르면 윤달은 무신일 초하루에 해당하고 갑오일은 윤달에 들어가지 않으며, 이 해에 곡우는 정미일은 3월 1일이고 소만은 무인일로 4월 1일로 윤 3월이다. 양통비에서는 3월 계축일로 되어 있지만 이는 윤 3월 6일이라 해야되고 비석에는 윤이 생략되어 있다.
그에 대한 비석에서 부파군의 아들이라는 표현이 보이고, 고양령양군비에서도 동일한 표현이 보이는 것으로 보아 고양령을 지낸 사람과는 형제로 보이며, 부파군에 대해서는 태위 양진의 아들 양목이 부파상이었다는 기록으로 확인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