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한서

 


'''후한서
後漢書
Book of Later Han
'''
'''저자'''
범엽
'''시기'''
5세기 유송
'''언어'''
상고한어
'''권 수'''
130권
'''분량'''
AD 25년 ~ AD 220년 (215년)
광무제 1년 ~ 한헌제 31년
1. 개요
2. 내용
3. 그 외
4. 관련 한자성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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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後漢書
흠정 24사 중 세 번째 역사서. 후한의 역사를 다루고 있으며 기전체로 쓰여졌다. 남조(南朝) 송나라 범엽(范曄: 398~446)이 지은 것이다. 본기(本紀) 10권, 열전(列傳) 80권, 지(志) 30권으로 되어 있다. 이 중 본기와 열전은 범엽이 쓴 『후한서』의 것이고, 지(志)는 사마표가 쓴 『속한서(續漢書)』의 것이다.

2. 내용



후한의 역사를 기록한 역사서는 여러 가지가 있었는데, 범엽의 《후한서》가 나온 후 안타깝게도 모두 사라졌다. 다만 이들 중 일부는 《정사 삼국지》에 주석으로 남아 있는 것도 있다. 《동관한기(東觀漢記)》, 범엽의 《후한서》, 동진 사람 원굉의 《후한기》를 제외하고, 전체가 전해지지는 않으나 집본(輯本)으로 전해지는 8명의 역사가가 기록한 후한의 역사서를 '팔가집주후한서(八家輯注後漢書)'라고 한다. 특히, 사승의 《후한서》에는 고간 등 기록이 별로 없는 인물의 열전도 수록되어 있었고 사마표(司馬彪)의 《속한서》에는 황건적들을 수록한 〈황건전(黃巾傳)〉도 따로 있을 정도로 신선했지만 소실되었기 때문에 남아있지 않다. 팔가후한서의 저자는 다음과 같다.[1]
  • 사마표(司馬彪), 서진 사람: 《속한서(續漢書)》, 83권, 집본 5권
  • 사승(謝承), 삼국시대 오나라 사람: 《후한서(後漢書)》, 130권, 집본 8권
  • 사침(謝沈), 동진 사람: 《후한서(後漢書)》, 122권, 집본 1권
  • 설영(薛瑩), 삼국시대 오나라 사람: 《후한서(後漢書)》, 100권, 집본 1권
  • 원산송(袁山松), 또는 원숭(袁崧), 동진 사람: 《후한서(後漢書)》, 100권, 집본 4권
  • 장번(張璠), 서진 사람: 《후한기(後漢紀)》, 미완성, 30권, 집본 1권
  • 장영(張瑩), 동진 사람: 《후한남기(後漢南紀)》, 55권 또는 58권, 집본1권
  • 화교(華嶠), 서진 사람: 《한후서(漢後書)》, 97권, 집본 3권
범엽은 장번을 제외하고 당시까지 전해져 내려오던 7명의 역사서 자료를 종합하였으며, 원굉의 《후한기》를 바탕으로 독자적인 견해를 넣어 《후한서》를 만들었다. 하지만 범엽이 후에 반란에 연루되어 처형당하는 바람에 완성되지 못하여 기전체의 구성 요소 중 표(表)와 지(志)가 없었다. 그래서 표는 존재하지 않고 오늘날 남아있는 《후한서》의 지는 양나라유소사마표의 《속한서》를 인용하고 주석을 붙인 것이다. 한문 원문
삼국지와 관련해서는 《정사 삼국지》에는 조금씩 밖에 나오지 않는 인물의 기록이 《후한서》에는 상세하게 나와 있는 경우가 자주 있다. 책이 다루는 범주가 다르기 때문에 일어나는 일이다. 원소는 양쪽 모두에 열전이 있다. 이렇게 열전이 겹치는 경우 진수가 "이러이러해 망해도 싸다." 하는 식으로 거의 혹평에 가깝게 무자비하게 까내리는 것과는 달리 "장점도 참 많았는데 안타깝다." 같은 식으로 어느 정도 호의적인 평가를 내린 편이다. 물론 시대가 다르니 그럴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다만 원술 같은 개차반은 얄짤없이 그냥 똑같이 깐다.
《후한서》〈동이열전(東夷列傳)〉은 부여, 읍루, 고구려, 동옥저, 삼한, 에 관한 기록이 있어 《삼국지》〈위지 동이전〉과 함께 한국 고대사를 연구하는 데 있어 중요한 역사서 가운데 하나다. 동북아역사재단에서 외국전을 번역했으니 관심 있는 위키러는 살펴 보도록 하자.

3. 그 외


특이하게도 열전이 아닌 본기가 먼저 번역되어 나왔다. 번역한 용자는 장은수 전 민음사 대표로 해당 분야 전공자가 아니기 때문에 부족한 점은 많으나, 당나라 장회태자(章懷太子)의 주석까지 번역했다는 점은 이채로운 점이다. 애초에 중국 사서 번역 과정에서 주석 번역은 언감생심 꿈도 못 꾸는 것이 대부분이고, 원문이나 충실히 번역하면 다행인 수준이다. 그리고 인터넷 사이트 파성넷에는 《후한서》에 삼국지 인물들의 열전이 실려있어서, 번역 작업을 하고 있다.링크
2018년에 명문당 출판사가 지를 제외한 후한서 본기와 열전을 진기환이 번역한 것을 출판했다.해당 홈페이지 지가 번역되지 않은 점은 아쉬우나 원문 역주본에 장회태자 이현의 주석이 있기 때문에 그 가치가 높다.
사승의 《후한서》와 어환의 《위략》이 고려에 존재했다는 주장이 인터넷에 퍼져 있으나 사실이 아니다. "이자의(李資義) 등이 송나라에서 귀국해, '송나라 황제가 우리나라 서적 가운데 선본(善本)이 많다는 말을 듣더니 관반(舘伴)[2]을 시켜 필요로 하는 서적 목록을 주면서 비록 완질이 아니더라도 필히 베껴서 부쳐 달라고 당부했습니다.' "(고려사 선종 8년(1091) 6월 병오일) 이 말은 그 서적들이 고려에 있다는 뜻이 아니라 혹시라도 있으면 보내달라는 의미다. 실제로 그 목록 중에 송나라로 보낸 책이 하나가 있는데, 바로 유향(劉向)이 지은 《설원(說苑)》만 고려가 송나라에 보낸 기록이 있다.[3]

4. 관련 한자성어



[1] 출처[2] 외국 사신들을 접대하는 하는 외교관.[3] 육유(陸游)의 위남집(渭南集)에 기록된 이덕추(李德芻)의 말을 인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