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해
1. 한나라 시대의 정치가
襄楷
생몰년도 미상
후한 말의 인물. 자는 공구(公矩). 풍속통의에 따르면 양(襄)씨는 춘추시대의 대부인 양로(襄老)의 후손이라고 한다.
평원 탐음현 사람으로 우길의 제자이다.
배우기를 좋아해 옛 일에 정통하고 천문, 음양의 술법에 뛰어났으며, 환제 때 태평청령서를 바쳤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환관이 조정에서 전횡해 정치와 형벌이 모질고 어지러우면서 황자를 잃고 재해와 이변이 되풀이되는 상황이었는데, 166년에 글을 올려 이를 간했다가 상서는 사례교위에게 넘겨 벌을 받게 하고 낙양의 옥에 가둬야 한다고 했다.
그러자 환제는 양해의 상소가 과격한 내용이지만 천문 현상과 그 운수를 말한 것이기에 죽일 수 없다고 해서 성곽에서 2년간 적을 감시하는 형벌을 받았다.
영제가 즉위하자 진번이 방정으로 천거했지만 나가지 않았으며, 향리에서 존경받아 새로 태수가 부임할 때마다 예를 갖춰 초청했다. 185년에 왕분, 주정, 허유, 진일 등과 함께 모여 천문이 환관들에게 이롭지 못해 황문, 상시들이 멸족될 것이라 해서 왕분이 영제를 폐위하고 합비후를 세우려고 했으며, 중평 연간[1] 에 순상, 정현과 함께 박사로 징소되었지만 이르지 않고 집에서 죽었다.
2. 남송 중기의 화원화가
남송 산동(山東) 동평(東平) 사람. 가사고(賈師古)에게 배웠고, 산수와 귀신, 도석(道釋), 인물화에 능했다.
3. '이해'를 뜻하는 단어
諒解
사정을 이해하고 용납한다는 의미이다. 보통 남들에게 불편을 끼치는 행동을 어쩔 수 없이 해야 할 때 사용되는 단어이다.
[1] 184 ~ 189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