춘추시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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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2. 관련 국가
2.1. 주요 국가
2.2. 기타 소국
2.3. 기타 이민족
3. 중국 춘추 시대의 인물
4. 관련 창작물
5. 관련항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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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춘추시대(,,,)는 주나라#s-2(西周)가 이민족의 공격[1]으로 수도를 호경(鎬京 = 장안(長安), 오늘날의 西安)에서 동쪽의 낙양(洛陽)으로 천도한 이후부터 전국시대의 성립 이전까지의 시대를 말한다. 공자(孔子)가 저술한 역사서 《춘추(春秋)》에서 명칭이 유래됐다.
춘추시대 이전과 이후를 구분하기 위해 전자를 서주(西周)로 따로 칭하는데, 원래는 수도인 호경을 중심으로 하여, 천자가 직접 관할하는 왕기(王畿)가 형성되어 있었다. 왕기는 관중의 험한 지형적 요새와 웬만한 제후국들의 봉토를 앞서는 영토의 크기 덕분에 원만하게 제후들을 통제할 수 있었다.
그러나 호경이 이민족에 함락되고 유왕(幽王)이 살해되자 평왕(平王)을 새로 옹립해 낙양(洛陽)으로 천도했다. 낙양과 그 주변 몇개의 읍으로 통치 기반이 축소된 주나라는 제후들을 컨트롤할 힘을 잃었다. 제후국인 정(鄭)나라의 반란 진압에 실패하면서 바야흐로 고대 중국에 하극상의 지옥도가 열렸다. 패자(霸者/覇者)라는 개념이 새로 생겨 힘있는 자가 정권을 잡았다가 계속 유혈 교체되는 혼란한 세상을 맞게 됐다. 현재 흔히 쓰는 왕도, 패도같은 용어도 다 이 시대의 정치 체제와 관련이 있다.
패자란 제후(諸侯)를 모아 회맹(會盟)을 가져 맹주(盟主)가 되는 것으로 이를 위해서는 권위가 떨어진 왕실에게 매년마다 조회와 조공을 바치고, 천자를 대신하여 제후들을 감독, 통제하는 역할을 충실히 지켜야했다.
그렇지만 제후들은 패자국에게 중재의 대가로 매년마다 공물을 바쳐야하는 협약이 있었다. 이를 보아 사실상 패자의 권위는 천자와 동일하였다. 다만 패자의 후광이 그다지 오래 지속되지 못했다는 점만 다를 뿐이다.
이렇게 서주 시대의 존왕양이(尊王攘夷) 즉, 천자를 존경하고 오랑캐를 척결한다는 것은 순전히 패자의 자리에 오르기 위한 국군(國君: 諸侯)들의 이데올로기로만 작용하게 되었을 뿐이다.
춘추시대를 대표하는 나라로는 제(齊)나라, 진(晉)나라, 초(楚)나라, 오(吳)나라, 월(越)나라 5국이 있다. 제(齊)나라의 환공, 진(晉)나라의 문공, 초(楚)나라의 장왕, 오(吳)나라의 왕 합려(혹은 부차), 월(越)나라의 왕 구천 등을 춘추오패라고 한다.
각 제후국의 왕공 들은 주나라 왕과 혈연이 있는 귀족들이었다. 한 예로 오나라의 초대 군주 태백은 주나라 문왕의 백부가 된다. 그러나 백성들은 지방색이 강하고, 주나라와는 매우 독립적으로 존재하는 사람들로, 초나라는 대다수가 묘족(苗族), 오는 월족과 한족의 혼혈, 월은 현재 북베트남인의 조상이다. 오랑캐로 욕을 먹던 초나라의 사신조차 월나라에 가면 통역이 필요했다.
진(晉)나라[2]는 초나라의 견제 목적하에 오나라에 군사 전문가를 파견하였고,[3] 이 덕분에 오나라는 군사적으로나 문화적으로 중원화가 되었다. 그러나 월나라는 부족 국가 단계를 넘어서지 못해 한계를 버티지 못하고 자멸하였다. 더욱 놀라운 것은 범려, 문종이 도피하거나 자결한 이후에 공신 숙청이 단 한 차례도 없었지만, 거짓말처럼 월나라는 100년 만에 정부가 철저하게 자멸하였다는 점이다.
오나라와 월나라을 이끌던 핵심 인재의 대다수가 초나라나 중원에서 학문을 익힌 점에서, 두 나라는 더 이상 발전을 하기 힘든 부족 국가의 약점을 보여준다.

《춘추》의 저자인 공자는 명분론에 입각하여 제 환공, 진 문공, 진 목공, 초 장왕, 송 양공[4]을 '오패'로 꼽았으나, 후세에서는 현실적인 국력을 기준으로 삼아 가름했기에 많은 이견이 생겨났다.[5] 그 밖에도 춘추 초기에 듣보잡 소국이 다수 존재하였으나, 진(晉)과 남방의 초(楚), 서방의 진(秦), 동방의 제(齊)와 같은 강대국들의 공격으로 병탄되었으며 이후 천자의 권위가 점점 추락하면서 전국시대로 흘러간다.
종종 전국시대와 합쳐서 춘추전국시대라고 부르는 경우도 있다.
청동기시대에서 철기시대로 넘어가는 시기로, 이때까지만 해도 어느 나라를 멸망시키기 위해 싸운다는 개념은 없었고[6] 국가 연합단위의 전투에서도 대량의 보병으로 죽고 죽이는 형식의 전투가 아닌, 전차를 이용한 전차전의 형태였다.
어느 시기에나 마찬가지였지만 춘추시대에도 군마가 귀했다. 따라서 말과 마부를 데리고 전차를 운용할 수 있었던 것은 그 당시 상류 계급인 왕족, 귀족과 경, 대부, 사였다. 이 시기 전차는 곧 그 나라의 전력을 말하는 단어다. 나라마다 편제의 차이는 있지만 대개 1승(乘)마다 전차병 3명, 보병 75명, 보급 22명으로 병거 1천 승은 십만 대군을 뜻한다.
전투는 반나절 정도의 단판 싸움으로 승패가 갈렸다. 전 중원의 패권을 다투는 전투였던 성복의 싸움이나 필의 싸움 같은 경우도 사정은 마찬가지였다. 이 시대의 전쟁은 적의 군기나 북을 빼앗는 것이 주 형태였다.
그렇다고 전멸전 형태가 없는 건 아니었다. 진 문공 중이가 초나라에 잠시 의탁해 있을 때 초 성왕에게 자신을 도와주는 대가로 재물이나 영토 대신 싸움터에서 90리를 물러나겠다는 약속을 하고 훗날 성복에서 맞붙었을 때 진군은 진짜로 90리를 물러났다는 등의 훈훈해 보이는 일화도 있는데, 사실은 초군 대장 성득신을 유인하기 위해서였다. 일례로 송양공같이 그런 망상에 빠진 사람들이 호구잡히는 등 이 시기가 마냥 로망적인 전쟁을 벌였다고 생각하면 곤란하다.
이후 각 제후들 간의 세력 다툼이 격화되고 세력을 멸망시키지 않는다는 금기가 깨지면서[7] 춘추 시대가 막을 내린다. 이제까지의 병탄이 아닌 진정한 의미의 정복 전쟁이 시작되며 이후로는 그나마 남아있던 인의예지가 깡그리 무시되며 진정 실력과 실력으로 맞서는 전국 시대가 열린다.

2. 관련 국가



2.1. 주요 국가


  • (魯)
  • (宋)
  • (燕)
  • (吳)
  • (越)
  • (衛)
  • (鄭)
  • (齊)
  • (曹)
  • (晉)[8]
  • (陳)
  • (秦)
  • (蔡)
  • (楚)
14개국

2.2. 기타 소국


  • (江)
  • (莒)
  • (耿)
  • 계(薊)
  • 고(郜)
  • 고죽(孤竹)
  • 곡(穀)
  • 공(共)
  • (藿)
  • (管)
  • (絞)
  • 권(權)
  • (麇)
  • (極)
  • (紀)
  • (杞)
  • (羅)
  • (來)
  • (潞)
  • (賴)
  • (譚)
  • (郯)
  • (唐)
  • (戴)
  • (道)
  • (頓)
  • 동(彤)
  • 동괵(東虢)
  • (杜)
  • (騰)
  • 등(鄧)
  • (毛)
  • 모(茅)
  • 무종(無終)
  • 밀(蜜)
  • 백(栢)
  • 백(伯)
  • 범(凡)
  • (祀)
  • (向)
  • (徐)
  • (舒)
  • 서괵(西虢)
  • 서구(舒鳩)
  • (單)
  • (薛)
  • (攝)
  • (郕)
  • 성(盛)
  • (蘇)
  • (蕭)
  • (巢)[9]
  • (召)
  • 소괵(小虢)
  • 소주(小邾)
  • (遂)
  • (隨)
  • 수구(須句)
  • 숙(宿)
  • 순(荀)[10]
  • (崇)
  • (息)
  • (申)
  • 신(辛)
  • 심(沈)
  • 악(鄂)
  • 약(鄀)
  • (梁)
  • 여(黎)
  • 여(厲)
  • 여(呂)[11]
  • 염(苒)
  • (英)
  • 영(榮)
  • 영지(令支)
  • (芮)
  • 옹(雍)
  • 용(鄘)
  • (虞)
  • 우(邘)
  • (隕)
  • (原)
  • (魏)
  • 요(寥)
  • 용(庸)
  • 유(劉)
  • (六)
  • 응(應)
  • 이(貳)
  • 임(任)
  • 장(蔣)
  • 전유(顓臾)
  • 제(諸)
  • 조(胙)
  • 종(宗)
  • 종리(鍾離)
  • 종오(鍾吾)
  • (邾)
  • (州)
  • (周)[12]
  • 중산(中山)
  • (曾)
  • (鄫)
  • (軫)
  • (焦)
  • (蜀)
  • (祝)
  • (巴)
  • 패(邶)
  • 풍(鄷)
  • (畢)
  • 핍(偪)
  • 핍양(偪陽)
  • (韓)
  • 활(滑)
  • (許)
  • (弦)
  • (邢)
  • (胡)
  • 회(鄶)
  • (黃)
총 122개 국가

2.3. 기타 이민족


  • 강융
  • 군만
  • 노적
  • 모융
  • 백적
  • 북융
  • 산융[13]
  • 수만
  • 여융
  • 유우
  • 윤융
  • 장적
  • 적적
  • 탁진
총 15개 민족

3. 중국 춘추 시대의 인물



4. 관련 창작물


  • 고오 춘추
  • 공자(드라마 / 1991년)
  • 공자(영화)
  • 공자전
  • 대자객(예양격의 편, 어장검 편, 서시 편)
  • 범려 헌서시
  • 병성
  • 서시(가극 / 2009년)
  • 서시(드라마 / 1986년)
  • 서시(드라마 / 1987년)
  • 서시(드라마 / 1998년)
  • 서시(영화 / 1936년)
  • 서시(영화 / 1949년)
  • 서시(영화 / 1960년)
  • 서시(영화 / 1965년)
  • 서시(영화 / 1966년)
  • 서시(영화 / 1983년)
  • 서시(영화 / 1995년)
  • 서시 비사
  • 손자 대전
  • 손자병법(드라마 / 1997년)
  • 손자 병법 여삼십육계
  • 여희 전기
  • 영웅(드라마)
  • 오자서 열전
  • 와신상담(영화 / 1956년)
  • 와신상담(드라마 / 2007년)
  • 월녀검
  • 월왕 구천
  • 쟁패 전기
  • 전국 전기
  • 정인근리출서시
  • 진 문공 전기
  • 춘추전국 - 일본의 보드 게임 잡지인 게임 저널의 제28호에 나오는 보드 게임.
  • 호부 전기

5. 관련항목


[1] 이 당시 주는 제후들의 도움이 있었다면 버텨낼 수 있었지만 포사의 봉화 장난으로 제후들은 이미 봉화를 올려도 왕에게 가지 않기로 작당을 한 상태였다.[2] 전국시대를 통일한 진나라와 다른 나라다. 전국시대 진나라는 벼이름 진(秦)을 쓴다.[3] 이 과정이 좀 황당한데... 자세한 과정은 초장왕 참조[4] 그러나 송 양공은 패자로 불릴 만한 업적은 없었다. 제나라의 군위 계승 문제에 개입해 영향력을 발휘하거나 회맹을 개최하긴 했지만 증나라의 임금을 삶아죽인 일로 인심을 잃었으며, 또한 초나라와의 전쟁에서 군 사기, 훈련도, 전투 경험, 머릿수 모두 불리한 상태에서 유일하게 앞선던 것은 먼저 진을 쳤다는 것 하나뿐인 상황이었다. 그런데도 초나라의 배가 상륙하고, 진을 갖추고, 전투 준비를 할 때까지 기다려주었다. 인의(仁義)로 세상을 지배하겠다는 철학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 당연히 대패했고, 이후 송양지인이라는 고사를 남기게 된다.[5] 제 환공, 진(晉) 문공, 초 장왕의 경우 이견이 없으나 이 외의 제후들에게는 이견점이 많다. 사실상 전반부를 제외하면 진(晉)과 초(楚)의 대결이나 다름없다.[6] 가문과 혈통의 보존을 중요시하며 천명과 선조를 중히 여겨 패한 제후의 일가를 멸족시키는 것을 금기시했고, 가문 계승을 위해 자타 안 가리고 몰락한 가문이나 유랑하는 귀족을 데려다 가독을 계승하게 하기도 했다. 오히려 춘추시대 첫 번째 패자인 제환공은 망할 뻔한 나라를 몇 개씩이나 구해주어 칭송을 들었다.[7] 제나라의 제후가 강성 여씨에서 규성 전씨로 바뀐 일, 진나라가 한(韓), 위(魏), 조(趙) 등 3개 세력으로 분열된 일, 오월 전쟁에서 오의 멸망이 그것이다.[8] 원래 이름은 당(唐).[9] 국가 맞다. 수경주(水經注), 춘추(春秋) 등에 국가로 기록되어 있다.[10] 또는 郇[11] 또는 보(甫)[12] 주 왕국과 다르다.[13] 연장공 당시 연나라를 침공한 이민족으로 연장공 시기에 연나라 군주가 후에서 공으로 승격된 것을 보면 연나라의 국력이 연장공 시절에 많이 올라갔을텐데 그럼에도 제환공이 개입한 것을 보면 산융족도 상당히 셌던듯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