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훈(삼국지)
楊訓
생몰년도 미상
후한 말과 삼국시대 위나라의 관료.
거록 출신으로 최염에게 추천되었으며, 비록 재기는 부족하지만 청렴하고 성실해 도의를 지켰으므로 조조가 예의로써 그를 초빙했다고 한다.
조조가 위왕이 되자 표를 올려 조조의 공적과 정벌의 노고를 칭송하면서 그 덕을 찬양했는데, 이에 대해서 당시 사람들은 양훈을 조소하면서 최염을 추천할 자격이 없다고 했다. 이 양훈이 쓴 글의 초고를 최염이 받아보고 양훈에게 의논하는 자들이 꾸짖기를 좋아할 뿐 객관적으로 살펴보는 것을 풍자한다는 뜻의 내용이 담긴 편지를 보냈다.
그러나 어떤 사람이 그 편지의 내용을 어떤 사람이 그 시대를 무시하고 조조를 비방한 것이라 하면서 최염이 죽임을 당하는 것에 연루되었다.
창천항로에서 조조가 조비를 후계자로 해야 된다고 간언할 때 죄인이 되어 발가벗은 채로 묶여서 조조 앞에 끌려오는데, 이 때 조조가 양훈을 가리켜 교묘한 말로 자신의 공적을 찬미하는 재주와 요란스럽게 천자에게 상소하는 재주 밖에 없다고 했다.
또한 조조가 최염의 죄를 논하면서 양훈을 추천한 것이 최염의 죄로 언급되었다.
생몰년도 미상
1. 개요
후한 말과 삼국시대 위나라의 관료.
거록 출신으로 최염에게 추천되었으며, 비록 재기는 부족하지만 청렴하고 성실해 도의를 지켰으므로 조조가 예의로써 그를 초빙했다고 한다.
조조가 위왕이 되자 표를 올려 조조의 공적과 정벌의 노고를 칭송하면서 그 덕을 찬양했는데, 이에 대해서 당시 사람들은 양훈을 조소하면서 최염을 추천할 자격이 없다고 했다. 이 양훈이 쓴 글의 초고를 최염이 받아보고 양훈에게 의논하는 자들이 꾸짖기를 좋아할 뿐 객관적으로 살펴보는 것을 풍자한다는 뜻의 내용이 담긴 편지를 보냈다.
그러나 어떤 사람이 그 편지의 내용을 어떤 사람이 그 시대를 무시하고 조조를 비방한 것이라 하면서 최염이 죽임을 당하는 것에 연루되었다.
2. 창작물에서
창천항로에서 조조가 조비를 후계자로 해야 된다고 간언할 때 죄인이 되어 발가벗은 채로 묶여서 조조 앞에 끌려오는데, 이 때 조조가 양훈을 가리켜 교묘한 말로 자신의 공적을 찬미하는 재주와 요란스럽게 천자에게 상소하는 재주 밖에 없다고 했다.
또한 조조가 최염의 죄를 논하면서 양훈을 추천한 것이 최염의 죄로 언급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