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드미럴급 중순양함
1938년부터 41년까지의 영국 해군의 중순양함 계획안
1. 개요
1938년 1월 영국 해군 건함국장(Director of Naval Construction)의 지시에따라 새로운 중순양함 계획이 시작되었으며 그에따라 디자인된 결과들이다.
2. 진행
해군건함국장은 순양함 디자이너인 WG John에게 다음과같은 조건으로 중순양함을 설계할것을 지시하였는데
1. 2만톤급의 함선으로 전장,전폭,흘수는 대략 700ft x 70ft x 25ft(213.36m x 21.34m x 7.62m)
2. 33노트의 표준속력
3. 3기의 9.2인치 4연장포
4. 6기의 4.5인치 연장포
5. 4기의 8연장 2파운더 폼폼포
6. 8인치의 주장갑대, 4인치의 갑판장갑
7. 750파운드급의 수중폭발물에대한 방호
8. 수상기(2기)와 사출캐터펄트
이다. 위의 설계조건은 정상교전거리에서 10인치 포탄에대한 방어능력을 보여줄것으로 기대되었다.
2.1. 1938년 계획안
Study1의 설계안을 종합한 결과 배수량이 23,700톤까지 늘어났으며 33노트의 속도를 달성하기에는 출력이 부족함을 확인하여 설계는 Study2로 진행되었고 건조시 약 550만 파운드의 비용이 소모될것으로 예상되었다. Study2의 전장,전폭,흘수는 700ft x 84ft x 23ft(213.36m x 25.60m x 7.01m) 이었다. Study3의 경우 워싱턴 해군 군축조약의 빈틈을 이용하는 디자인이며 Study4의 경우 조약을 준수하는 조건하의 설계안으로 카운티급 중순양함에 현대적인 기술을 적용하는 안이었다.
2.2. 1939년 계획안
[image]Admiral급 Study5의 상상도 [1]
2차대전이 발발하며 조약은 유명무실해졌고 함선 배수량의 제한또한 없어지게되었다. 이에 당시 제 1해군경이던 윈스턴 처칠은 이전의 9.2인치 대형순양함의 설계안을 지지하였으며[2] 이 계획안은 15,000톤에서 시작하여 21,500톤까지 커지게 되었다.
Study6의 경우 소련에서 주문한 순양함의 엔진[3] 을 활용하는 방법이며 다이도급 2nd Group의 HMS Charybdis와 같은 경순양함을 건조하는 안인데 이 경우 군함 건조에 걸리는 시간을 단축시킬수 있는 장점이 있었다.
2.3. 1940년 계획안
[image]
[image]
해군 건함국장은 위의 21,500톤 설계를 바탕으로한 3기의 8인치 3연장포탑을 갖춘 함선을 요청하였지만, 디자이너는 6인치 포탄에 대한 효율적인 방어를 위해 함의 규모를 15,000톤 으로 줄일것을 제안하였다. 이 디자인은 정상교전거리에서 8인치포탄을 방어할수 있을것으로 기대하였다.
2.4. 1941년 계획안
[image]
영국 국방부는 위의 1940년 계획안을 바탕으로한 15,000톤의 중순양함 계획을 도입하기로 결정하였으며 이에 세부적인 설계에 들어가게 되었다.
Admiral급으로 명명된 계획은 5,500야드에서 6인치 포탄을, 11,000야드에서 8인치 포탄을 방어할수 있을것으로 기대되었다. 41년 10월까지 디자인이 진행되었으며 배수량이 약 18,000톤까지 증가하였다.
3. 결과
1942년 7월 주문하였던 8인치포를 취소하였으며, 결국 43년 6월 제 1해군경의 지시로 최종적으로 중순양함 계획은 취소하는것으로 결정되었다.
4. 출처
David K Brown. Nelson to Vanguard : Warship Design and Development 1923-1945
Friedman, Norman. British Cruisers: Two World Wars and Afte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