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언

 


言偃
기원전 506~기원전 403
공자의 제자.
성은 언(言), 이름도 언(偃)이고 자는 '''자유'''(子遊)이기 때문에 주로 자유라는 이름으로 문헌에 자주 등장한다. 공자 말년에 자하, 자장, 증삼과 함께 상당히 아꼈던 제자 중 하나로 보인다. 오나라 사람으로 공문십철뿐 아니라 72현 중에서도 유일한 강남 지역 출신이다. 공자 사후 고향인 장강 남쪽으로 돌아가 유교를 퍼뜨렸기 때문에 유교의 외연을 넓히는데 큰 기여를 한 인물이다. 그래서 훗날 남방부자(南方夫子)라고 불리게 되는데, 공자가 공부자(孔夫子)라고 불린 걸 생각하면 상당한 경칭이다. 그래서 당나라 때는 오후(吳侯)로, 송나라 때는 오공(吳公)으로까지 칭호가 상승한다.
자유학파의 경우 예와 악을 중시한 것으로 보이는데, 무성을 다스리는 관리로 있을 때[1] 백성들에게 시울을 뜯고 노래를 부르는 것을 가르쳤다. 공자는 지나가다가 그걸 보고 "뭔 닭 잡는데 소 잡는 칼 쓰냐?"는 드립[2]에 자유는 "군자가 도를 배우면 남을 사랑하게 되고 소인이 도를 배우면 부리기가 쉽다고 하시는 말씀을 들었습니다."[3]라는 말로 공자를 데꿀멍시키기도 했다. 정치에 있어서도 예와 악의 중요성을 알아채어 다스린 것이다. 저 '닭 잡는데 소 잡는 칼을 쓴다'라는 표현은 삼국지연의에서 화웅이 한 말로 알려져 있지만 원전은 이 언언의 이야기이다. (출처:사기 중니제자열전 자유편)
자주 비교되어 거론되는 인물은 자하(복상)나 자장(전손사) 정도로, 그중 자하와는 공문십철에서 함께 문학에 뛰어난 것으로 분류되어 있다. 그런데 워낙 자주 비교가 되었는지 자하의 제자들을 예절만 가르쳐서 그 근본을 모른다고 디스하기도 했다. 자하는 이에 대해 "예절도 가르치면서 근본도 가르치는 건데 그게 둘 다 되면 성인이게?" 정도로 대답하기도 했다. 자하 또한 자장에 대해서 어려운 일은 잘하는데 인한 경지는 아니라면서 디스하기도 했다.
자유가 효도에 대해 물었을 때, 공자가 잘 먹이는 건 개나 말도 다 하는 거니까 공경하는 마음을 가지라는 말을 하기도 했다. 각 인물의 특성에 맞게 교육한 공자의 교육 방법으로 볼 때는 물질적인 효를 중시했었을 수도 있다.

[1] 이걸 전에는 재상으로 있었다고 했지만 여기서 재(宰)는 지방관이란 뜻으로 봐야 한다.[2] 즉 "선비한테나 가르치라고 내가 가르쳐준 걸 소인들한테도 가르쳤네?" 정도의 뜻이다.[3] "선생님이 소인들한테도 가르치면 다스리기 좋다면서요?" 정도로 해석하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