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문십철

 

공문십철 (孔門十哲).
중국철학자 공자가 말한 열 명의 우수한 제자를 뜻하는 말.
석가모니십대제자, 예수12사도들과 같은 급이라 보면 된다.
공자는 제자가 약 3천여명이 넘었다고 하는데, 그 중에서도 뛰어난 제자를 가리켜 '72현(賢)'이라고 칭했다. 십철은 또 그 중에서도 최고를 뽑은 것이다.
그 일원은 대강 이렇다.
공자 왈, 덕행(德行)에는 안회(顔淵)·민자건(閔子騫)[1]·염백우(冉伯牛)·중궁(仲弓), 언어에는 재아(宰我)·자공(子貢), 정사(政事)에는 염유(冉有)·자로(子路), 문학에는 자유(子游)(일명 언언) ·자하(子夏)(일명 복상)가 뛰어나다고 하였다.
일반적으로 공자의 제자하면 안회와 자로, 자공 정도가 인지도가 높다. 하지만 기준은 모호하다. 민자건같은 경우에는 몇 구절의 기록밖에 없지만 그 효행담 하나로 십철에 포함되었다. 하지만 그 밖에도 증자(일명 증삼曾參)·자장(子張)(일명 전손사)·유약(有若) 등 뛰어난 제자가 있었으므로 십철이라고 한정한 것은 뒷날 학자의 논의를 불러일으켰다.
공문십철 중에서 유달리 재아(재여)가 특이한데, 자로나 자공을 꾸짖을 때, 가르침을 위해서 꾸짖는거라면 재아를 상대로 할 때는 비난조 일색이다.《논어》에서 재아는 3년상이 너무 길다면서 1년상으로 단축을 주장하자 공자는 "넌 고작 1년상으로만으도 마음이 편안하냐?"라고 말하자 재아 또한 "네 편합니다."라고 응수한다. 그러자 공자는 자포자기하고 재아가 나가자 "재여는 부모에게 사랑받은 기간이 3년도 안되는구나."라고 비꼬는 내용이 나온다. 다른 편에서는 공자가 재아의 낮잠자는 모습을 보고 "썩은 나무로 조각할 수 없"다라고 말하면서 "재여와 같은 자로 인해 사람을 대하는 태도가 바뀌었다."라며 엄청난 비난을 한다. 재아는 나중에 제나라에서 반란을 일으켰다가 실패하고 멸족당하는데 그때 공자가 부끄러움을 느꼈다는 내용도 실려있다. 즉, 공자는 재아가 예도 부족할뿐더러 자기수행할 태도조차도 못갖췄다고 보았다는 것. 그런데도 공문십철에 재아가 들어간 것을 생각하면 유교적 에법이 아닌 다른 방면으로 재주가 뛰어났다고 추측된다.
특히 증삼이 포함되지 않은 것에 송유(宋儒, 송나라 시대의 유학자들)의 불만이 생겨서 주희(주자,朱子)의 《논어집주(論語集注)》는, 십철의 장(章)과 그 전장(前章)의 <공자가 말하기를, 나를 따라 (陳), (蔡)에 갔던 사람은 이제 내 곁에는 한 사람도 없다.(子曰從我於陳蔡者皆不及門也)>는 대목을 합쳐서 한 장을 이루고, 십철은 공자가 진나라, 채나라에서의 재난 때에 동행했던 제자만을 뽑았기 때문에 증자는 포함되지 않았다고 풀이했다. 그러나 이것은 여러 점에서 무리가 따르는 풀이로 평가되고 있다.
이 10명 중에서도 최고 수제자로 꼽히는 사람은 안회로, 십철 중 유일하게 '자(子)' 칭호를 받고 '''안자'''로 불리는 데다가 공묘나 성균관 대성전에서도 위패가 공자 바로 앞에 배치되는 등 최고 대우를 받고 있다.

[1] 민자건의 후손인 민칭도는 고려 시대에 사신으로 고려에 왔다가 귀화해 여흥 민씨의 시조가 되었다. 근데 다른 설화에서는 민칭도가 민굴(또는 마암굴)에서 나와 스스로 민씨를 칭했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