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리히 마리아 레마르크

 

1. 개요
2. 대표작

Erich Maria Remarque (1898. 6. 22 ~ 1970. 9. 25)[1]

1. 개요


1898년 6월 22일 독일 서부 베스트팔렌주의 오스나브뤼크에서 태어났다. 그후 철학에 관심을 두며 성장한다.[2] 18세 때 1916년 뮌스턴 사범학교 재학 중 징집되어 제1차 세계대전에 참전하였다.[3] 전역 후 귀향해 교사가 되어 임시직 교사로 교직 생활을 시작했지만 얼마안가 그만두고 자신의 유년기를 추념하는 데뷔작 '꿈의 다락방'을 출간하게 된다. 그 후 편집인, 기자 등 여러 직종을 전전하다 1929년에 1차 대전 참전 경험을 바탕으로 쓴 서부전선 이상없다를 발표한다. 1931년에는 '서부전선 이상없다'의 속편 귀로를 발표한다.
반전주의 작가로서 나치와 잦은 충돌 끝에 1931년 스위스로 망명하였고, 나치는 1933년 그의 작품을 분서 목록에 올려 공개적으로 불태웠다.
망명 작가로서 스위스에서 거주하다가 제2차 세계 대전 직전인 1939년에 미국으로 망명했다. 1945년에는 개선문을 발표하였다. 1947년에 미국 시민권을 취득하였으나, 이듬해 스위스로 돌아왔다. 1954년에는 사랑할 때와 죽을 때를 발표하였다. 1958년에는 미국의 여배우 폴레트 고다드[4]와 재혼하였다. 1925년에 결혼한 첫 아내는 일제 유타 잠보나라는 배우로 불화로 인해 1930년에 이혼했지만 1933년에 같이 스위스에 도피하거나 그녀가 독일에 송환되지 않도록 도와주기 위해 1938년에 재혼해주는 등으로 어느 정도 친분은 있었다. 그녀와는 합의하에 1957년에 이혼했다. 이외에도 1930년대에 마를렌 디트리히, 헤디 라마르, 돌로레스 델 리오 등의 배우들과 교제하기도 했다.
1970년 스위스 로카르노에서 72세의 나이로 사망하였다.
그의 작품은 전쟁에 대한 묘사나 전쟁중의 군인들이 겪는 내면,외면의 심리묘사가 읽는 사람들로 하여금 충격을 주는힘이 대단하다. 또한 그의 작품은 대부분 우울하거나 건조한 문체가 특징이다.

2. 대표작


국내 번역작은 ★ 표시. 절판본은 * 표시.
80년대 범조사에서 레마르크의 대표작들을 모아 자칭 전집을 낸적이 있다. 90년대 초반에 성창출판사에서 재간. 박환덕, 송영택, 강두식, 홍경호 등 당시 활발하게 활동하던 독어 번역계 원로들이 참여했다. 2020년 시점에 새번역이 없는 귀로, 생명의 불꽃, 검은 오벨리스크는 이 전집본에 포함된 이후 재간되지 않았다.
하늘은 은총을 베풀지 않는다는 99년 하늘은 아무도 특별히 사랑하지 않는다는 제목으로 번역되어 나왔는데 김훈이 소설가로 명성을 높이기전 호구지책으로 한 번역이다. 김훈은 영문과 출신이라 중역이 확실하며 김훈 스스로 성취감은 전혀 없고 지긋지긋했다. 내가 했지만 번역서를 가지고 있지 않다고 밝힌바 있다. 소설가 공력이 있어 문장 자체만 놓고 보면 나쁘지 않으나 의역이 많고 엄밀하지 못한 번역이다.
약속의 땅은 98년도에 2권으로 나뉘어 번역되어 나왔는데 번역자는 활동히 많진 않으나 독어전공자긴하다.

[1] 본래 이름은 에리히 파울 레마르크(Remark)였으나 1924년부터 필명으로 자주 쓰던 에리히 마리아 레마르크(Remarque)로 개명했다. 미들네임인 마리아는 어머니의 미들네임에서 따왔다.[2] 성 요한학교에 다니던 14살때 이미 칸트 '순수 이성 비판', 니체쇼펜하우어의 철학서적을 탐독할 정도이다.[3] 서부전선에 투입되었으나 부상을 입고 야전 병원에 수용되었다가 회복 후 보병연대로 배치되지만 일주일 후 종전을 맞이한다. [4] 본래 찰리 채플린의 아내였고, 채플린과 결혼하기 전에도 채플린의 영화에 같이 출연하기도 했지만 이혼했다. 다만 이혼 이후에도 채플린과의 사이는 나빠지진 않아서 가끔씩 채플린을 만나기도 했고, 채플린의 장례식에도 참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