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노(고구려)

 


如孥 / 如奴子

1. 개요


고구려의 무장. 삼국사기에는 여노(如孥), 자치통감에서는 여노자(如奴子)로 기록되어 있다.
319년 모용선비는 극성 전투에서 고구려, 단부, 우문부 연합군을 분열시키고 우문부를 격파한 후 최비가 점유하고 있던 요동 지역을 장악하게 된다. 이후 모용외장통을 보내 하성(河城)[1]에 주둔하던 여노를 공격했고, 그를 포함한 1천여 가(家)를 포로로 잡고 극성으로 돌아갔다고 한다.
[1] 자치통감은 우하성(于河城)으로 기록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