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리원
1. 개요
학교법인 신동아학원 계열 할인 매장으로 한때 전국 곳곳에 진출해 한국 천냥 가게의 대명사가 될뻔하다가 말아먹으며 지금은 전북 일부에나 남은 업체이다.
2. 전성기
전 제품 1000원을 앞세우며 전북에서 처음으로 문을 열며 서울까지 진출해 2000년대 후반만 해도 전국에 200개가 넘는 매장을 이뤘다. 당시 매장을 전국으로 늘리던 다이소와 경쟁 상대가 되어갔다.
물론 다수가 중국제이지만 국내산이나 해외 각종 수입품도 팔았다. 터키제 유리 주전자나 그릇도 1000원에 팔 정도. 부천이나 부평,신도림 등 역 가까이에 매장이 문을 열 정도로 한때 잘 나갔었다.
2008년에 물가가 올라 어쩔 수 없이 1,100원으로 값을 올리기도 했다.
2008년쯤에 전북 지역 신문인 새전북 신문에서는 전북 향토 기업으로 전국에 이름을 알린 기업이라고 미화한 기사를 내기도 했을 정도였다.
3. 몰락
그러나, 온갖 직원 착취 및 사장의 개독 인증 책자까지 매장에서 1000원에 파는 짓까지 하며 종교적 혐오감을 가진 이들의 거부감을 일으키게 했다. 그냥 사장이 개신교를 믿어 성공했다 이 정도라면 그리 문제없으나 책 곳곳에 불교에 대한 비하와 같이 무신론에 대하여 지옥 협박까지 써대는 개독 인증에 지나지 않은 책자였다...
무엇보다 직원 착취는 심각했다. 학교법인 신동아학원 계열인 전주대학교 여성 미화원들을 매장 청소를 시키고 당연히 일절 추가 수당을 주지 않나, 퇴직금을 주지 않으려고 11개월씩 계약하는가 하면, 최저임금과 토요일 근무 가산금 조차 주지 않으려고 별 꼼수를 다 부렸다. 법적용 제외가 되도록 하루 8시간 노동을 6.5시간으로 줄이고, 매주 토요일 근무를 격주로 줄이더니 결국엔 주5 일 근무가 되면서 노동자들의 실질 임금을 몇 년째 삭감했다. 건물이 새로 들어서도 일할 사람은 줄어드는 상황에서 청소노동자들의 노동 강도는 갈수록 강해졌지만 이들이 한 달 뼈 빠지게 일해 받는 임금은 고작 70여만 원에 불과했다. 심지어,온리원 알바를 무상으로 거꾸로 학교법인 신동아학원 계열 학원에 쓰는 김장이나 여러 일에 동원하여 역시 반발이 거셌다.
2012년에는 더 골때리게도 노동자들에게 '''지문채취'''를 강요하고 있다. 출근부에 대리 서명하는 일을 방지하겠다며 지문인식기를 도입하겠다는 것이다. 온리원은 지문인식기에 개인 지문을 입력하기 위해 노동자들에게 동의서도 받지 않고 지문을 채취했다. ‘동의 절차를 거치지 않은 지문채취는 명백한 인권침해’라는 노동조합의 항의에, 온리원 관계자는 ‘직원 교육 시간에 지문채취를 하면서 동의절차를 거치지 않은 것은 미안하지만 새로운 출근부를 만들기 위해서는 지문채취를 해야 하니 응해 달라고 요청했다’며 문제되지 않는다는 식이다. 지문채취에 대해 거부하는 것은 개인의 자유인데, 지문채취를 거부할 경우 이후 불이익이 따를 것이라고 했다 하니, 협박과 다름없이 지문 채취가 이뤄졌다.[1]
결국 이런 것들이 한때 크게 보도되며 문제가 된 지문채취는 물러났지만 매장 수익 악화로 줄줄이 문을 닫아 수도권 역가에 있던 온리원은 대부분이 다이소가 되어버렸다. 수도권이나 경기도에서 거의 자취를 감추고 2017년에는 전북에서만 20여곳이 남아있고 이마저도 나날이 줄어가서 학교법인 신동아학원 계열 학원이나 학교 근처에서만 남아있는 상황이다.
반면, 다이소는 전국 곳곳에 많이 남아 알려졌지만 이젠 온리원은 옛날 이런 매장이 있었다는 추억으로나 남게되었다. 한 때 다이소의 경쟁자로 불렸던 지라, 2019년에 일본 불매운동이 다시 시작되자, 한국기업 온리원이 일본기업 다이소에 진 사례라고 주장했었지만, 이런 짓들이 여러차례 공개되는 바람에 빠르게 흑역사로 묻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