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소
1. 王素
생몰년도 미상
삼국시대의 인물.
회계군 여요현의 백성으로 254년 4월에 14살이 된 딸이 있었는데, 그 딸의 용모가 아름다워 구혼하러 온 젊은이들이 매우 많았지만 왕소는 딸을 아껴 시집보내지 않았다. 옥처럼 깨끗한 용모를 한 강랑(江郞)이라 자칭하는 사내가 구혼하러 하자 왕소는 이를 허락했으며, 강랑에게 가족들에 대해 묻고 회계에 살고 있다는 대답을 듣고 강랑이 늙은 부인, 젊은 부인 3 ~ 4명, 젊은이 2명을 데리고 오면서 강랑이 가져온 재물을 예물로 삼아 혼례를 올렸다.
1년 후에 왕소의 딸이 12월에 됫박만한 크기의 비단주머니 같은 물체를 하나 낳았는데, 이를 칼로 갈라보니 흰 물고기 알이었다. 이 일로 강랑이 사람이 아니라고 의심하게 되면서 왕소는 몰래 집안 사람을 시켜 강랑이 옷을 벗고 잠자리에 들기를 기다렸다가 그가 입었던 옷을 가져오게 해서 보니 모두 비늘 모양이 있었으며, 왕소는 그것을 보고 놀라 커다란 돌로 눌러두게 했다.
새벽에 강랑이 옷을 찾지 못해 욕하는 소리를 들었고 잠시 후 어떤 물체가 넘어지는 소리가 밖에까지 들리기에 집안 사람들이 급히 문을 열고 보았는데, 침상 아래에서 길이가 6, 7척 되는 흰 물고기가 아직 죽지 않고 땅에서 버둥거리고 있었다. 왕소는 그 물고기를 베어 강에 던졌으며, 왕소의 딸은 다른 사람에게 시집갔다.
1.1. 관련 사료
- 태평광기
- 삼오기
2. 汪昭
삼국지연의의 가공인물.
원담의 부장으로 아직 원담과 원상이 반목하기 전에 조조군이 여양을 침입할 때 출전했으며, 원담의 명령으로 싸우러 나갔다가 조조군 측에서 서황을 시켜 맞서게 했다. 서황과 싸우지만 몇 합을 싸우지 못하고 서황에게 살해당했으며, 특이하게도 서황은 이 때 대부가 아니라 칼을 사용했다.[1]
왕소가 죽자 조조군이 기세를 타고 몰아치면서 원담의 군사는 크게 패했으며, 이로 인해 원담이 여양성으로 들어가서 원상에게 구원병을 요청하려고 시도했지만 조조가 이를 알아채서 구원병을 격파했다.
2.1. 미디어 믹스
소설 전공 삼국지에서는 원담의 명령을 받고 공융, 양수에게 가서 업성으로 모시기 위해 나왔다면서 그 두 사람을 업성으로 데리고 가는 모습으로 나왔다.
소설 광속구에서는 원담 토벌군과 원담 연합군의 싸움에서 원담 휘하에서 기마 사령관으로 출진하는 것으로 나온다.
[1] 훗날 번성에서 관우와 대치할 때 과거에 가르침을 받았다고 서황이 말한 일이 있다. 관우가 칼 쓰는 법을 전수했다고 끼워맞출 수도 있을듯. 경극에서도 관우가 서황에게 칼 쓰는 법을 가르쳤다는 이야기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