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영(삼국지)
1. 개요
王營
생몰년도 미상
후한 말의 인물.
동모 사람으로 무리 3천여 명을 이끌고 창양현을 협박해 반란을 일으켰지만 하기가 사람을 보내 계책을 주면서 흩어지게 만들어 10개월 만에 진압되었다.
2. 창작물에서
같은 꿈을 꾸다 in 삼국지에서 천하가 헌제를 따르는 세력과 헌제에 반대하는 세력으로 나뉘어 전쟁을 하는데, 진궁이 일찍이 청주에 진군할 것을 대비해 그 곳의 사정을 파악하는 것에 주력했다고 한다.
원소가 유주의 공손찬을 공격하기 위해 청주를 쥐어짜자 종전과 함께 언급되는데, 왕영은 3천이 넘는 장정을 이끌고 원술군에 가담하겠다고 왕수에게 알렸다. 왕영이 내응하기로 한 동모현은 종전이 있는 모평현과 함께 동래군에 속한 현으로 동래군이 태사자의 고향이라 태사자를 보고 원술군에게 가담하겠다는 백성이 많았다고 언급된다.
이를 듣고 역사에 대해 아는 이준경은 어쩌면 이리도 역사와 연계되냐면서 조조가 관도대전에서 승리하고 원소의 옛 땅을 차지하는 과정이 무려 칠 년을 소요했다면서 원소와 조조의 행정력이 교체되는 공백을 노려 반란을 일으킨 것으로 왕영은 종전과 함께 그 중 한 무리라고 생각으로 언급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