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안니스 7세
1. 개요
동로마 제국의 128대 황제. 요안니스 5세의 장손.
2. 생애
2.1. 초기 생애
아버지 안드로니코스 4세가 1376년 8월에 정변을 일으켜서 황제로 즉위를 한 뒤에 요안니스 7세는 자동으로 공동황제에 올랐다.
1379년, 요안니스 7세는 부황 안드로니코스 4세와 함께 폐위되었고 이후 셀렘브리아를 영지로 명예 황제직에 임명된 부황을 따라 그곳으로 갔다.
1385년, 안드로니코스 4세가 사망하자, 요안니스 7세는 그 작위를 이었다.
2.2. 짧은 치세
1390년 4월, 요안니스 7세는 조부 요안니스 5세를 폐위시키고 단독으로 즉위했다. 이는 요안니스 5세가 자신이 아닌 숙부인 마누엘을 후계자로 지명한 것에 대한 반발이었다. 하지만 불과 5달 만에 마누엘과 베네치아 공화국의 도움을 얻은 요안니스 5세가 복위에 성공하였다.
같은해 9월 17일, 요안니스 7세는 오스만 제국의 바예지드 1세의 궁정으로 망명하였다.
2.3. 타협
요안니스 7세는 술탄 바예지드 1세의 환심을 샀고, 바예지드의 중재로 요안니스 7세는 셀렘브리아 영지로 복귀할 수 있었다. 또한 마누엘의 황위 계승은 일단 인정하였고, 아직 아들이 없는 그가 후계를 남기지 못할 경우 그 후계는 요안니스 7세가 잇도록 합의되었다. 다만 그로부터 얼마 후, 마누엘은 아들을 낳았고, 요안니스와 협상을 벌여 평생동안 황족으로 정중히 대우하되 황위를 잇는 것은 포기하게 했다. (1392년 12월)
2.4. 제국의 섭정
타협 이후 숙질 간의 관계가 호전되었는지 1399년, 오스만 제국이 콘스탄티노폴리스를 포위했을 때에 서유럽에 지원을 요청하러 떠난 마누엘 2세는 어린 아들 대신 요안니스 7세를 섭정으로 세운 후 떠났다. 그리고 1402년, 오스만 제국이 앙카라 전투에서 패배하며 포위가 풀리자 제국의 신민들은 요안니스에게 찬사를 보냈다. 이후 오스만 제국은 바예지드의 세 아들이 내전을 벌이며 혼란기에 접어들었고, 이 기회를 틈타 요안니스 7세는 속국 신세에서 벗어나는 동시에 협상을 통해 오스만 제국 측으로부터 마르마라해 연안과 1387년부터 오스만 측에 함락된 테살로니키를 수복하는 쾌거를 이루었다. 오랜만에 동로마 제국은 영토 확장을 이루어낸 것이다.
2.5. 테살로니키의 황제
1403년, 마누엘 2세가 복귀하자 요안니스 7세는 미련 없이 섭정의 자리에서 물러났고, 자신이 수복한 테살로니키 일대를 영지로 받아 은퇴하였다. 그는 '전 테살리아의 황제 (바실레우스)'라는 칭호를 사용할 수 있었고 그의 아들 안드로니코스 5세는 공동 황제가 되었다. 하지만 1407년, 안드로니코스가 사망하자 비탄에 빠진 요안니스도 이듬해 죽으며 2대에 걸친 테살리아 황제국(가칭)은 소멸되었다. 이후 마누엘 2세의 아들 안드로니코스가 테살로니키 총독으로 부임하게 된다.[1]
3. 가족관계
4. 참고 자료
- 영문위키피디아
[1] 다만 그도 황제가 되지 못하고 1423년에 죽는다. 이후 도시는 베네치아 공화국에게 넘겨졌다가 1430년, 오스만 제국에게 재차 함락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