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석(태극기 휘날리며)

 

1. 개요
2. 작중 행적


1. 개요


'''이름'''
용석
'''출생'''
1930년대 중후반 추정
'''사망'''
1950년 11월 혜산시
'''복무기간'''
1950년 10월~1950년 11월 (인민군 의용군)
'''배우'''
전재형
영화 태극기 휘날리며의 등장인물. 이진태의 구두닦이 조수이자 이진석이 아끼고 친동생처럼 여기는 인물로 중학생으로 추정된다.

2. 작중 행적


극 초반에는 초짜 구두닦이, 깍새로 이진태의 밑에서 일하면서 배움에 흥미가 많아 이진석에게 글자를 배우는 순진한 청소년으로 등장한다. 전쟁 발발 이후에는 아예 등장이 없다가 국군이 북한군을 상대로 대반격에 돌입하면서 혜산진까지 뚫고 들어와 북한군 참호를 하나하나 불태울때 의용군 포로로 끌려나오면서 진석에게 발견되는데 무공훈장을 받아 진석을 제대시키려다 형의 부상 혹은 사망에 대한 걱정으로 격하게 반항하는 동생과 영만의 죽음 등으로 멘탈이 피폐해져가는 진태에 의해 형제관계는 파탄이 나기 시작한다.

진태: 데리고 가봐야 짐이야.

진석: '''용석이야. 형이 데리고 있던 용석이라고.'''

진태: '''내 눈엔 빨갱이 다섯 놈만 보여.'''

용석: 형 저 용석이에요! 용석이!

진태: '''깍새 용석이는 알아도 양민학살하는 빨갱이 새끼는 아는 놈 없어.''' (이후 처리해버리라고 병사에게 신호를 보낸다.)

이후 사살 직전까지 간 상황에서 진석의 눈물나는 노력으로 노역을 하며 목숨을 건지게 된다. 이후 노역 중 진석에게 건빵을 얻어먹으며 형제의 어머니와 영신 등의 근황을 전해주며 상황이 나아졌나 싶었지만 여전히 다른 의용군 포로들은 진태와 다른 소대원들의 적대감 안에서 학대당하는 신세로 형제의 갈등이 계속 깊어지고 있었다.
이후 혜산진까지 끌려왔으나 중공군의 투입으로 급하게 후퇴하는 혼잡해진 상황에서 허 중사가 전사하게 되고 그가 인솔하던 포로가 폭주하여 국군 병사 하나를 인질로 잡고 난동을 부린다. 멀뚱멀뚱 서있던 용석은 다른 난동을 부리는 인민군 포로들과 함께 국군에게 포위당한다.
겁에 질려 전전긍긍하던 와중에 진태가 소대원들에게 신호를 보낸 이후 난동을 부리던 포로들과 함께 누군가가 발포한 탄환에 심장을 맞고 사망한다. 이것을 본 진석과 진태는 갈등이 극에 달하게 되면서 이후 형제는 아예 등을 돌려버리게 된다.
원래 동생을 잘 챙기고 무뚝뚝한 척 다정다감한 진태에서 전쟁의 상흔으로 인간성을 잃어가는 진태의 모습을 보여주기 위해 희생된 인물.
사실 진태가 용석을 모르는 사람 취급하고 죽든 살든 신경도 쓰지 않는 모습은 다소 아이러니하다. 용석이 포로가 되었을 때 진태는 중사 계급에 전공도 많아서 발언권이 높았기에 다른 포로들은 처형하고 용석 한 명은 알던 사람이라고 특별대우를 해줘도 아무도 토를 달지 못했을 것이다. 진태는 진석을 위해서는 자신의 목숨을 수 차례 걸었고 약혼녀 영신을 위해서도 반역죄로 총살당할 위험을 무릅쓰고 방첩대원들과 총격전을 벌였다. ~ 이것은 진태의 마음이 그만큼 피폐해져 가족밖에는 남지 않았다는 절박함을 보여주는 연출로 이해해야 한다. 진석을 비롯한 가족의 안전은 진태에게 단순한 개인의 목적이 아니라 참혹한 전쟁 속에서 자신을 붙잡아주는 삶의 희망이 되어있던 상황이었다. 즉, 용석에게 아무런 애정도 갖고 있지 않았던 것이 아니라 용석에게 신경을 써줄 처지가 되지 못했던 것이었다. 실제로 영화를 보면 시기가 지나면서 진태의 인간관계가 극도로 좁아지는 것을 볼 수 있는데, 이는 진태의 목표가 둘의 생존에서 '어떻게든 진석이만은 살려 보낸다'로 바뀌어 갔기 때문이다. 즉, 용석이를 만난 시점에서 진태는 진석이의 전역에 반쯤 미쳐 있던 상황이라 그 외의 인간관계를 신경 쓸 입장이 아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