혜산시

 


'''혜산시'''
惠山市
Hyesan City

}}}

'''시청 소재지'''
혜산시 혜산동
'''지역'''
관북
'''면적'''
277km2
'''행정구역'''
25동 4리
'''시간대'''
UTC+9
'''인구'''
192,680명[1]
'''인구밀도'''
695.56명/km2
'''시당위원장'''

최영호
'''인민위원장'''

''미상''
1. 개요
2. 역사
3. 자연
4. 인문
4.1. 경제
4.2. 정치
4.3. 교통
4.4. 문화
5. 행정
5.1. 북한 기준 행정구역
5.2. 관공서, 관련기관
6. 기타
7. 이북5도위원회 기준 행정구역
7.1. 구 갑산군 지역
7.2. 구 삼수군 지역
8. 출신 인물
9. 참고 자료

[image]
[image]
2005년경의 혜산. 출처

1. 개요


惠山市 / Hyesan City

2018년 10월 30일 혜산의 번화가인 역전 백화점 인근.

2020년 혜산청년역 앞의 모습

2020년, 혜산 출신 탈북자의 고향을 주제로 한 영상. [2][3]
북한 량강도(이북5도 기준 함경남도)에 있는 도시로서 량강도 도당위원회 소재지이다. 압록강을 사이에 두고 중국 장백 조선족 자치현(長白朝鮮族自治縣)과 마주하는 국경 도시이다. 과거에는 혜산진(惠山鎭)이라고도 했다.

2. 역사


공양왕 3년(1391년)에 갑주만호부(甲州萬戶府)를 설치하면서 지금의 개마고원 일대가 고려의 영토로 편입되었는데 조선 태종 13년(1413년)에 갑주만호부를 갑산군으로 개편하면서 갑산군의 일부가 되었다. 그후 세종 대에 여진족의 침입에 대비하기 위한 방어시설인 혜산진(惠山鎭)이 설치된 것이 혜산의 시초이다. 1932년 갑산군 보혜면이 혜산면과 보천면, 2개의 면으로 분리되었고 동시에 혜산면이 혜산읍으로 승격했다. 그리고 1942년에 갑산군 혜산읍을 비롯해 갑산군 운흥면, 봉두면, 보천면, 대진면과 삼수군 별동면을 분리해 혜산군이라는 독립된 행정구역으로 만들었다.
광복 당시의 혜산군은 1읍 5면으로 이루어져 2,325km2의 면적을 관할했으며, '''백두산(천지)''' 역시 이 혜산군 보천면 관할이었다.
1954년 시(市)로 바뀌었으며 도 당위원회, 인민위원회가 위치한 도 소재지 즉 중심지로서 량강도 최대의 시(市)이다.[4] 고적으로는 조선시대의 누각인 괘궁정(掛弓亭)이 있다.
6.25 전쟁 당시인 1950년 11월 21일 미 7사단 17연대가 혜산을 점령하여 한만 국경에 도달했다. 초산군, 부령군과 더불어 유엔군이 가장 북쪽까지 도달한 지역 중 하나였지만 점령한 지 며칠 지나지 않은 11월 30일, 서부전선에서의 대패 소식이 전해지면서 12월 3일 혜산을 포기하고 남쪽으로 철수해야 했다.
2020년 8월 3일 저녁 6시경 폭발사고가 일어났다. # 이 사건 때문에 북한군 서열 2위인 리병철이 혜산시로 급파되기도 하였다.
2020년에는 코로나19 시국으로 경제가 어려워지자, 이곳에서 금괴를 밀수하다 걸린 사건이 북한 관련 여러 언론에서 보도되고 있다. 국경경비대, 보위성, 중앙당 간부 등 군인과 비밀 경찰, 고위 관료와 같은 체제 유지 세력이 이 밀수에 가담하여 일각에서는 김정은이 이를 체제 위협을 암시하는 일로 인식하는 중대한 사건으로 보고 있다는 말도 나온다. 이런 일로 시를 봉쇄 후 나오지도 못하게 하여 아사자가 생기고 있다는 증언이 있다. ##
2020년 11월 1~2일경부터 봉쇄를 시작, 20일 동안 이 봉쇄가 이어졌다고 한다. # 봉쇄 자체는 국가정보원도 인정한다. #
2021년 1월 29일부터 2월 15일 0시까지 또 봉쇄가 되었다는 보도도 있다.

3. 자연


시가지가 대략 해발 700m 높이에 위치하고 있으며, 내륙 고원지대인 탓에 기후는 특히 춥다. 혜산시의 1월 평균기온은 '''-16.4℃'''로 한반도에서 행정구역상 시에 해당하는 지역 중 독보적인 최한지였으나 삼지연의 시 승격이 있어 한 단계 내려갔다.[5]
또한 한반도내에서 최소우지로, 지난 30년 평년값기준 강수량 약 590mm이다.
혜산군 보천면은 대한민국에서 (명목상) '''가장 높은 곳에 있는 행정구역'''이라 할 수 있다.[6]
단, 이 지역은 현재는 혜산이 아닌 삼지연에 속해 있어서 혜산이 북한에서 가장 높은 행정구역은 아니다.

4. 인문



4.1. 경제


‘혜산’이라는 지명이 산의 혜택을 입고 살아가는 곳에서 유래된 것처럼 이 지역은 전체 면적의 74%가 산림지역으로 풍부한 임업자원을 갖고 있다. 혜산에도 있는 북한 특유의 민둥산을 보며 '임업자원'이라는 말이 이상하게 들릴 수 있는데, 시가지에서 벗어난 곳에는 숲이 있으며, 연풍동과 강안동에 적어도 4개의 목재가공 공장이 있다고 알려져 있다. 중국과 잇닿아 있는 국경지역이어서 무역을 위한 크고 작은 무역회사들이 집결되어 있으며, 비공식적인 밀매가 왕성하다. 이러한 영향으로 시장운영이 활발한데 혜산시에는 2019년 기준 6개[7]의 공식적인 시장이 운영되고 있는 것으로 조사되었다. 이 시장은 2003년부터 공식적으로 운영되기 시작했다.
현재 혜산시에 있는 것으로 파악된 국가가 인정한 상설시장은 다음과 같다. 소매시장은 지역 주민들이 주로 이용한다.
  • 혜산시장(혜산시 혜산동): 세관 또는 밀수로 들여온 중국상품을 전국각지에 판매하는 전국적인 도매시장이다.
    • 2017년 기준 이곳 도매상은 한달 수입을 합치면 500위안(약 8만원)정도 번다고 한다. 이 돈이면 버스 운전사 남편의 외벌이로는 어려운 살림에 맞벌이를 통해서 자식 두 명(10세 이하)을 뒷바라지 할 수 있다고 한다. # 공식적으로는 오후 2시부터 장사를 시작하지만, 새벽에 단속을 피해 열리는, 남한에서 '메뚜기장'이라고 하는 시장이 있다고 한다. 북한 여느 도시와 마찬가지로 조직생활을 하는 남자들 대신 여자들이 주로 장사를 한다. 2018년 혜산시장
  • 련봉시장(혜산시 련봉1동): 소매시장
  • 마산시장(혜산시 마산동): 소매시장
  • 연풍시장(혜산시 연풍동): 소매시장
  • 대오천시장(혜산시 검산동): 농촌도매시장
  • 위연시장(혜산시 위연동): 소매시장
북중간 수출입 상품의 관세에 관한 일을 처리하는 혜산세관이 있어 국가기관 산하 무역지사들이 적지 않게 상주하고 있다. 본사를 평양시나 기타 도시지역에 두고 있는 무역회사들은 업무추진을 위해 사무실과 숙소, 수출입 상품을 보관할 수 있는 창고가 있는 출장소가 필요한데, 혜산시 내 가동하지 않는 공장건물을 임대하는 방식으로 해결하고 있다.
혜산시에는 혜산광산, 로중(노중)광산을 비롯해 중소규모의 광산들이 다수 있다. 이들 광산에서는 금광, 동정광, 중석 등을 생산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중국의 투자로 운영되는 혜산광산을 제외한 중소규모의 광산들은 임대업을 통해 일정한 소득을 얻고 있다. 혜산지역의 광산들은 국가계획위원회로부터 받은 연간생산계획을 수행하는데 많은 어려움이 있다. 양수기나 동발목(동발[8])을 비롯해 광물생산에 필요한 설비와 자재, 그리고 노동자들에게 공급할 식량이나 생활비(월급)도 부족하다. 중소광산들은 이러한 문제를 타 기관이나 기업소, 개인에 대한 광산임대를 통해 해결하고 있다. 임대료 지급은 현금이 아닌 광석을 통해 대부분 이루어지는데, 광석을 캐낸 즉시 지불된다. 임차인이 채굴에 필요한 설비를 임대인으로부터 빌려서 이용하는 경우에는 임대료를 인민폐로 지급하기도 한다.
2010년대에는 식당, 목욕탕[9], 수영장, 미용실, 이발소 등의 운영에 신흥부유층인 '돈주'가 참여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 이는 북한의 다른 도시도 마찬가지다.
량강도 기준으로는 그나마 최근 조성된 삼지연을 제외하면 도시의 꼴을 갖춘 유일한 곳이니 잘 사는 편일 수 있으나, 북한에서 함경남도, 자강도, 량강도가 잘 사는 편이 아니라는 주장도 있다. # 북한의 도시화율이 60% 정도이긴 하니 적어도 40%의 시골보다는 잘 살 수는 있겠다. 2010년대 후반 기준 북한 전역에서 부동산 거래가 제한적으로 가능한데, 같은 시일에 조사했을 때 혜산은 부동산 가격이 자강도 강계를 제외한 다른 지역의 중심도시보다는 낮다. 북한/경제 문서의 부동산 문단 참조. 대량의 중국, 러시아의 물자가 들어올 수 있는 라선, 신의주, 평성, 평양 정도가 비교적 잘 사는 편이다.

4.2. 정치


이곳에 혜산 애국렬사릉이 위치한다.
북한 내에서 외부 문물을 그나마 접할 수 있는 곳이고, 강폭이 상대적으로 좁아 탈북자가 많은 도시이기도 하다. 외부 문물을 접하기 쉬워 북한 내에선 그나마 정치적으로 깨어있다는 정황도 있다. 김정은의 통제도 종종 안 먹히기도 하고, 이쪽의 문화가 내륙으로 퍼지기도 한다고. 배나TV의 인터뷰에 의하면 2018년 11월에 탈북한 이곳 출신의 한 탈북자는 왜 안들고 일어나는가 하는 생각도 했다고 한다. # 젊은 세대 사이에서는 한국 수저계급론과 비슷한 인식이 있다는 말도 있다.

4.3. 교통


교통으로는 만포청년역을 기점으로 북부내륙선이 이어지는데, 압록강 구간의 60% 이상을 따라가는 건 둘째치고 선형이 정말로 안 좋다. 그 외에 길주로 내려가는 백두산청년선이 여기를 종점으로 한다. 도시의 중심 역은 혜산청년역이지만, 나무위키에는 이 역 다음 역인 위연청년역이 더 먼저 작성되는 위엄을 보였다. 이는 북한이탈주민들 덕분에 위연역의 유명세가 높아졌기 때문.
북한은 도 사이의 물류를 '서비차'라는 택배나 미니 밴의 일종으로 보낸다. 운전자 식비, 검문소를 통과할 뇌물, 연료비를 제외하면 2018년 1월 기준 다음과 같이 운송비가 정해진다고 한다. #
도시
거리[10](km)
요금(달러)
길주
147
50
함흥
278
120
원산
350
150
평성
562
200
평양
574
300
혜산비행장이라는 군용 비행장이 있다. 지역 주민들에게는 '련봉비행장', '운총비행장'[11]이라고도 불리는 듯하다.

4.4. 문화


동북 방언에 해당하는 사투리가 있으며, 이것은 흔히 '북한말'로 알려진 평안도 사투리와는 억양이 다르다. 말이 빠르고 성조가 있다고 한다. 서울 사람 기준으로 경상도, 영동 지방의 말과 억양이 비슷하다는 주장이 있다. # 여기서 나이든 사람들은 서울말을 들으면 간지럽다고 생각하는 경우도 있다고 한다.
2010년대 후반 기준 시장화로 인해 남존여비 문화가 상당 부분 무너지는 추세라고 알려져 있다. 가사는 아직 남성의 가사분담이 없지는 않아도 여성이 하는 경우가 지배적이나, 결혼관과 같은 부분에서 큰 변화가 있다.
2000년대 중반부터 "여자들이 경제력이 있으면 못사는 남자라도 똑똑하고 잘생긴 남자를 끌어온다."는 말이 있던 곳이고, 2016년경 기준 재력이 있는 신붓감이 그 지역 출신 남성 중 평양의 대학을 졸업하여 평양에 거주할 가능성이 있는 신랑감을 선호하는 현상이 발생하고 있다고 한다. 평양에 살기 위해서는 그곳에 적을 둔 남성과 결혼해야 한다. 부유층 사이에서는 결혼의 대가로 대학 공부 뒷바라지와 평양의 주택이 오가기도 한다. '평양의 주택'은 여자의 돈이 필요하다.
아예 신부 측이 경제력이 있으면 친정 근처에 집을 마련해주고 결혼한 딸을 가까이 두고 살기도 한다. 지금은 옛날하고 달라서 딸을 더 중시한다는 말도 있으며, 부모들은 딸한테 더 의지하려고 하고, 며느리를 들여 봤자 딸보다 못하다는 말이 오간다고 한다. #
2018년 기준 가사 분담에 대한 관념이 달라진다는 주장도 있다. “남편들이 아내를 도와 아이를 봐준다거나 집안일을 돕는 것을 두고 ‘저 사람 좀 모자라는 것 아닌가’라는 생각이 일반적이었다면 지금은 그렇게 해야 가정이 편하다는 것을 남성들이 더 잘 알고 있고 있다”며 “지금은 그런 가정을 두고 주변에서는 ‘보기 좋다’고 평가하곤 한다”는 보도가 있다. #
2019년에 탈북한 한 탈북자의 증언으로는, 웬만한 사람들은 휴대전화를 갖고 싶어하며, 못사는 사람도 휴대전화는 가지려고 한다고 한다. 인터넷이 안되니 제약이 심하지만 그래도 집전화보다 휴대전화가 좋다는 인식이 생긴다고 한다. 태양광 패널이 보급 중이라 전기를 국가에서 안줘도 한국 영상물 등을 볼 수 있는 경우가 생기고 있다. 평양과 같은 지역과 마찬가지로 한국 영상물이 최근에는 팔지 않고 그냥 돈다고 한다. 단속이 심해서 그런 것으로 추정된다. 당시 북한 형법 등을 보면 처벌이 5년 교화(징역)이 가능할 정도로 세지만, 뇌물로 이것이 무마되기도 한다고 한다. 한국 물품은 매우 품질이 좋다고 소문이 나있지만, 부자가 아니면 못쓴다고 한다. 머리 코팅을 해보고 단속을 피해 모자를 쓰고 다녔다고 한다. #

5. 행정



5.1. 북한 기준 행정구역


총 25개동과 4개리로 구성되어 있다.
  • 동: 혜산동, 혜흥동, 혜화동, 혜강동, 혜신동, 혜강동, 혜명동, 신흥동, 탑성동, 성후동, 련두동, 강안동, 위연동, 연풍동, 련봉1동, 련봉2동, 영흥동, 송봉1동, 송봉2동, 강구동, 춘동, 마산1동, 마산2동, 혜탄동, 혜장동, 검산동
  • 리: 로중리, 운총리, 신장리, 장안리

5.2. 관공서, 관련기관


량강도 도당위원회 소재지이기에 인근에는 없는 기관이나 관공서가 위치한다. 한국국토정보공사 산하 공간정보연구원에서 2018년경에 탈북자를 대상으로 교차검증을 마친 지명이다.
  • 당・정권기관
      • 량강도 도당위원회: 혜산시 혜명동
      • 혜산시 당위원회: 혜산시 혜명동
    • 행정
      • 량강도 인민위원회: 혜산시 연봉동
      • 혜산시 인민위원회: 혜산시 혜산동
    • 농업
      • 량강도 농촌경영위원회: 혜산시 혜명동
    • 근로단체[13]
      • 량강도 김일성청년동맹위원회: 혜산시 혜명동
      • 혜산시 김일성청년동맹위원회: 혜산시 혜명동
      • 량강도 직맹위원회: 혜산시 혜명동
      • 혜산시 직맹위원회: 혜산시 혜명동
      • 량강도 여맹위원회[12]: 혜산시 혜명동
      • 혜산시 여맹위원회: 혜산시 혜명동
  • 국가보안 ․ 사회통제 ․ 사법기관
    • 국가보안
      • 량강도 국가안전보위부: 혜산시 련봉동
      • 혜산시 국가안전보위부: 혜산시 혜산동
    • 사법
      • 혜산시 검찰소: 혜산시 혜산동
      • 량강도 재판소: 혜산시 혜산동
      • 혜산시 재판소: 혜산시 혜산동

6. 기타


갈렙선교회 등의 유튜브에서는 이곳의 영상을 쉽게 찾을 수 있다. 중국인들이 혜산 사람들을 그냥 촬영한 것이 유튜브에 돌아다닌다. 파주 오두산 통일전망대와 북한 정곶리 선전마을이 3~4km 떨어져 있는데, 북중 세관 사이의 거리가 300m이며, 중국 장백현의 고지대 중 일부가 혜산 시가지에서 1~2km의 안쪽에 있는 경우도 있다. 그래서 중국에서 망원렌즈로 주민들의 일상까지 찍을 수 있는 곳이기도 하다. 그런데...

2020년 12월 경으로 추정되는데, 이젠 강변에 나무 판자로 가림막을 설치한다고 한다. 자기 채널에 반응을 한 것이라고 하는데, 편집자 본인도 중국에서 영상을 받아오거나 퍼오기도 한다고 언급한 경력이 있어 이것만 보고 반응한 것이라는 뜻은 아닌 듯하다. 탈북한지 얼마 되지 않은 사람이라 남한 네티즌과 문화적 차이[14]로 의사소통에서 어긋나기도 하는 모습이 있다. 이 채널이전부터 중국에서 KBS 같은 방송국도 이곳을 찍는 사례가 많았다.
북한에 연락망을 갖추고 있는 언론인 데일리NK, 아시아프레스는 혜산의 소식을 접하기 쉽기에 이쪽의 소식을 많이 취재한다.

7. 이북5도위원회 기준 행정구역



[image]
1945년 광복 당시.

7.1. 구 갑산군 지역


  • 혜산읍(惠山邑)
    • 관할 리 : 혜산(惠山), 강구(江口), 석덕(石德), 송봉(松峯), 여달(呂達), 연평(囦坪), 요동(要洞), 위연포(渭淵浦), 중(中), 춘동(春洞)
    • 원래 갑산군 혜산사(社)였다가 보천사와 통합되어 보혜면이 되었다가, 1932년에 보혜면이 분할되면서 신설되었고 1934년에 읍으로 승격되었다. 북부내륙선, 백두산청년선, 삼지연선이 지나는 교통의 요지. 혜산청년역에서 혜산만포청년선과 백두산청년역이 분기하며, 위연역에서 백두산청년선과 삼지연선이 분기한다. 이외에도 관내에 강구역이 있다.
  • 대진면(大鎭面)
    • 관할 리 : 대진평(大鎭坪), 대평(大坪), 대흥(大興), 보흥(保興), 여수(麗水)
    • 1942년 혜산군 출범과 동시에 보천면에서 분리되어 신설되었다. 보천선 철도가 이곳에서 시종착하며 관내에 대진역, 려수역, 량강대평역이 있다. 남한 지도에는 대진역까지 표시된 지도가 있다.
  • 보천면(普天面)
  • 봉두면(鳳頭面)
    • 관할 리 : 봉두(鳳頭), 동흥(東興), 백암(白巖), 별남(別南), 보안소(甫安所), 생장(生長), 신덕(新德), 심포(深浦), 용암(龍巖), 용천(龍川), 운령(雲嶺), 장항(獐項)
    • 1942년 혜산군 출범과 동시에 운흥면에서 분리되어 신설되었다. 백두산청년선 열차가 지나가며 관내에 심포리역, 보안역, 운흥역, 생장역, 남중역, 령남역, 령하역이 있다.
  • 운흥면(雲興面)
    • 관할 리 : 대오시(大五是), 검산(劍山), 남산(南山), 대문(大門), 대상(大上), 대전평(大田坪), 대중(大中), 대하(大下), 모정(毛亭), 봉서(鳳棲), 산당(山堂), 상산양천(上山羊川), 상장성(上長城), 속신(束薪), 송암(松巖), 신복(新福), 신흥(新興), 오산(五山), 오시천(五是川), 옹동(甕洞), 운룡(雲龍), 일건(日建), 장포(長浦), 중봉(中峰), 중평(仲坪), 하산양천(下山羊川), 하장성(下長城), 호동(芦洞)
    • 북한 행정구역상 운흥군 소재지. 백두산청년선 철도가 지나가며 관내에 검산리역, 대오천역이 있다.

7.2. 구 삼수군 지역


  • 별동면(別東面)
    • 관할 리 : 통목(桶木), 광생(光生), 내동(內洞), 대동(大洞), 동동(銅洞), 동중(東中), 동하(東下), 번포(蕃浦), 보파(寶坡), 부변(桴邊), 삼흥(三興), 상발(上發), 상어(相於), 상초평(上草坪), 선소(船所), 신거(新巨), 안계(安溪), 양문(養文), 장강(長江), 장동(長洞), 장수(長壽), 창포(菖蒲), 천석(千石), 하면(下面), 회사(回沙), 효장(孝長), 흘립(屹立)
    • 혜산군에서 유일하게 구 삼수군 지역이었다(나머지는 구 갑산군 지역이다.). 1914년 별해면(別海面)과 하동면(下東面), 상동면(上東面)을 병합하여 신설된뒤 1942년 혜산으로 이관되었다. 철도로는 북부내륙선 철도가 지나가며 관내에 늪평역이 있다.

8. 출신 인물



9. 참고 자료


  • 대북제재하 북한의 혜산시 부동산 상품별 거래행태와 특징(2019): #
  • 지적재조사사업의 성과를 활용한 통일한국의 지적제도 정립방안 연구(2018): #

[1] 2008년 자료 [2] 제작자가 비교적 최근(2010년대 중반 이후)에 탈북한 모양인지 기존에 알려진 북한의 모습과 다른 언급을 한다. 아이들의 노는 모습이 바뀌었고, 남편이 아내에게 월급을 바친다고 하며, 고리대의 존재와 상업의 발달, 부정부패의 만연을 언급한다.[3] 80년대라는 표현이 이상할 수 있다. 저것보다 나은 모습도 있어서 그런 것으로 보인다. 저쪽은 정비가 되지 않은 주택가인데, 저런 곳 말고 그나마 깔끔한 아파트나 온수기가 있는 집도 있다고 한다. ## 하지만 2021년에도 물을 긷는 사람이 보이고, 밤이 여전히 어둡다는 말이 있어 전기나 수도가 80년대에 못 미치는 것으로 보인다.[4] 2019년 삼지연군이 시로 승격하면서 더이상 유일한 시가 아니게 되었다.[5] 그러나 위도는 의외로 바르셀로나와 같다. 서유럽북대서양 난류의 영향으로 다른 지역에 비해 압도적으로 따뜻하기 때문이다.[6] 남한 한정으로 대한민국에서 가장 높은 곳에 있는 행정구역은 한라산을 관할하는 제주특별자치도 서귀포시 영천동이다.[7] 5개라는 말도 있는데, 공간정보연구원은 6개로 파악한다.[8] 광산이나 탄광, 토목 공사를 위하여 땅속에 뚫어 놓은 길이 무너지지 않도록 받치는 기둥. '동발목'은 대한민국 표준어로 인정받지 못한 말이다.[9] 한국식 목욕탕이 중국에 수입되고, 이것이 다시 북한에 수입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10] 직선거리가 아니다. 평양의 경우 직선거리는 320km대 정도다.[11] '운촌'이라는 보도도 있는데 오타로 보인다.[12] 여맹의 두음법칙을 무시한 공식 명칭은 '조선사회주의녀성동맹'이다. 그런데 '여맹위원회'의 공식명칭이 무엇인지 한국 공간정보연구원의 자료에는 언급되지 않는다.[13] 이름만 들으면 마치 민주노총, 한국노총 같은 단체로 오해할 수 있으나 그런 곳이 아니다. 북한에서 사회생활을 위해 의무적으로 가입해야 하는 곳인데, 여기는 주민들을 노역에 동원시키거나 생활총화 같이 충성을 하지 않았다고 서로를 갈구는 자리를 마련하는 곳이 되기도 한다. # 2018년 내용이 다소 바뀌었다는 말도 있으나 2018년 이후 탈북자도 여전히 생활총화가 싫었다는 탈북자가 있다.[14] 옛 남한의 생활상, 경제력, 화법(북한 치하 이전에도 있던 화법이 있다.)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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