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필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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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명
원필희(元弼喜)
본관
원주 원씨
생몰
1896년 2월 25일 ~ 1968년 8월 17일
출생지
충주부 원주군 지내면 장산촌
(현 경기도 여주시 북내면 장암리)[1]
사망지
경기도 여주군
종교
천도교
추서
건국훈장 애족장
1. 개요
2. 생애


1. 개요


한국의 독립운동가. 1990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받았다.

2. 생애


원필희는 1896년 2월 25일 충주부 원주군 지내면 장산촌(현 경기도 여주시 북내면 장암리)에서 태어났다. 그는 1919년 당시 경성공립농업학교 학생으로 재학했으며, 천도교 신자였다. 1919년 3월 1일 서울에서 3.1 운동이 전개되었다는 소식을 접한 그는 여주군의 독립만세운동 책임을 맡아 군내 각 면으로 돌아다니면서 태극기를 만들고 독립정신을 고취하며 만세시위운동을 벌이도록 설득했다.
이윽고 1919년 4월 5일 독립만세운동에 참여하기 위하여 동지들과 같이 협의한 후 여주군 내에서의 독립만세운동을 전개했다. 이때 북내면 국민학교에서 미리 준비해 둔 태극기를 들고 군중을 지휘하며 독립만세를 고창하면서 시위행진하다가 일본 헌병에 붙잡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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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9년 7월 31일 서대문형무소에서 촬영된 사진.
그후 1919년 5월 20일 경성지방법원에서 소위 보안법 위반으로 징역 1년 6월형을 언도받았고 7월 13일 경성복심법원에서 원판결이 취소되어 징역 8월형을 언도받아 서대문형무소에서 1년여의 옥고를 치렀다. 출옥 후에는 고문의 후유증으로 요추 및 척추를 다쳐 평생 불구로 지냈다고 하며, 1968년 8월 17일 여주에서 사망했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0년 원필희에게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했다.
[1] 원주 원씨 집성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