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효회고상

 

元曉廻顧像
원효의 아들 설총이 원효의 입적후 만든 원효의 상.
686년, 원효가 혈사에서 입적하자 아들 설총이 원효의 시신을 다비하여 유골을 수습한후 그 '''유골에 흙을 붙여서''' 원효의 형상을 만든뒤에 분황사에 안치했다고 한다. 그런데 설총이 상을 안치한 후에 그 앞에서 절을 하자 '''원효의 상이 갑자기 뒤를 쑥 돌아다봤다'''라는 것이다.
물론 상식적으로 조각상이 뒤를 돌아다봤다는건 말이 안되는 이야기고 설총이 처음부터 그렇게 만들었다고 보는 편이 타당한 이야기다. 설총이 원효의 상을 뒤를 돌아보는것으로 만든 이유에 대해서는 원효가 평생 걸어온 삶을 상징적으로 드러내는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라는 지적이 있다. 원효는 일평생 낮은 자들, 낙오된 자들을 불쌍히 여겼고 그래서 그들을 외면하지 못하고 뒤돌아 보았다는 것.
설총이 만든 이 원효회고상은 고려 중기까지 전해진 것으로 보인다. 대각국사 의천이 분황사를 방문했을때 이 상을 보고 시를 한편 지었는데 바로 "제분황사효성문"이다. 이 시에서 의천은 '''원효가 마치 살아있는것 같은 모습을 뵈었다'''라고 말하고 있는걸로 미루어 보면 대단히 생생한 조각상이었던걸로 보인다. 그러나 몽골이 고려를 침공했을때 결국 분황사가 불타면서 원효회고상도 불타 사라지고 만다. 설령 그 때 피해를 보지 않았더라도 조선시대 임진왜란때 소실됐을 가능성도 높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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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에 원효회고상을 추정해볼수 있는 불상이 하나 전한다. 교토 선림사(禅林寺)라는 절에 있는 영관당 본존불(永観堂 本尊)로 가마쿠라 시대에 만들어진 이 불상은 견반아미타여래(見返阿弥陀如来)상이라고 불리기도 한다. 아미타여래상이지만 독특하게도 '''왼쪽 어깨를 돌려 뒤를 바라보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이런 식의 불상은 매우 독특한데 원효회고상과의 연관성을 밝힐 사료가 전하지는 않으나 선림사에는 원효의 "양권무량수경종요"라는 저서의 필사본이 전하기도 하고 이 필사본을 만든 승려가 산 시대가 가마쿠라 시대라는 점을 감안한다면 원효회고상의 영향이 분명히 있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신라에선 독특하게 고인의 유골에 흙을 붙여서 조각상을 만드는 방식이 있었는데 설총의 외삼촌이기도 한 문무왕탈해 이사금의 능을 파서 뼈를 추려낸 뒤에 석탈해상을 만들어서 동악에 석탈해전을 지어 그곳에 모셨다는 기록도 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