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구르계 카자흐스탄인
1. 개요
신장 위구르 자치구 외에도 카자흐스탄에 상당수의 위구르인들이 거주하고 있다. 주로 1860년대부터 1880년대까지 혼란기를 피해 온 사람들의 후손이 많으며, 러시아 제국이 일리 강 유역을 점령하는 과정에서 많은 위구르인들이 오늘날 카자흐스탄 영토에 해당하는 지역으로 편입되기도 했다. 1932년 카자흐스탄 일대에 대기근이 발생하는 과정에서 위구르인 인구 상당수가 다시 신장으로 넘어가기도 하였으나 다시 1940년대부터 60년대까지 동튀르키스탄 제2공화국이 중화인민공화국에 합병되는 과정이나 문화대혁명 기간의 혼란기를 피해서 많은 위구르인들이 소련 영토에 해당하는 지역으로 망명하면서 그 수가 늘었다.
2. 현황
카자흐스탄의 위구르인들은 카자흐인들의 도움을 받기도 한다. 다만 카자흐스탄의 경우는 친러 정권이다보니 자국 내 위구르인을 탄압하지는 않지만 그렇다고 중국의 위구르 제노사이드에 대해 목소리를 내지 않는 입장이다. 이는 경제적으로 중국과 엮어있는것이 많기 때문에 중국을 마냥 무시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2019년 카자흐스탄에서 반정부 시위가 일어났을 때 카자흐족을 비롯한 카자흐스탄 시민들은 위구르 및 신강 지역의 카자흐족 문제를 외면한다며 비판하기도 했다.
오늘날 카자흐스탄에 거주하는 인구 중 위구르인 정체성을 가진 인구는 25만여 명 이상에 달하며, 카자흐스탄 전체 인구의 1.5% 가까이 차지한다.[1] 주로 신장과 인접한 알마티 인근에 거주한다. 소련 시절부터 위구르인 민족어 학교가 운영되었기 때문에 카자흐인과의 갈등은 드문 편이라고 한다. 카자흐스탄 내에는 위구르어로 가르치는 학교 14개가 있으며 위구르어 신문 위구르 아바지(Uygur Avazi)가 출간되고 있다.
카자흐스탄이 소련과 러시아 제국의 일부였기 때문에 카자흐스탄 내의 위구르족들도 대부분 러시아어를 대부분 할 줄 안다.
3. 링크
[1] 1989년 통계 당시에는 18만여 명이었다. 당시에는 카자흐스탄에 유럽계 인구 비중이 더 높던 시절이라 당시에는 독일계 카자흐스탄인에 비해 인구 비중이 적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