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튀르키스탄 제2공화국

 


'''동튀르키스탄 공화국'''
'''شەرقىي تۈركىستان جۇمھۇرىيىتى'''
'''東突厥斯坦共和國'''

[image]
국기
성립일
1945년
수도
쿨자
성립 이전
중화민국 국민정부
멸망 이후
중화민국 국민정부
1. 개요
2. 역사
3. 역대 대통령


1. 개요


동튀르키스탄 제2공화국은 1945년위구르인들이 선포한 국가이다.

2. 역사


신장성을 지배하던 군벌 성스차이는 국민정부 몰래 스탈린의 예쁨을 받기 위해서 '''신장성의 광물을 소련으로 수출하는 대신에 채굴권을 소련에게 넘겼다.''' 한술 더 떠서 마음에 안 드는 한족 관리들을 트로츠키주의자라고 누명을 씌워 죽이는 행각까지 벌였다. 결국 보다 못한 장개석에 의해 성스차이가 충칭으로 끌려가면서, 신장성은 성스차이 대신 국민당 정부의 직접적인 통제를 받게 되었다. 국민당 정권은 중국 내부에 소수민족이라는 것은 존재하지 않는다고 주장하며 오로지 지리적인 요인으로 인해 이 지역의 카자흐인들과 타지크인들의 언어가 중국어의 방언이라는 어불성설 궤변까지 일삼으며 위구르족에 대한 강력한 동화정책을 강제하였다. 중국 국민당 정부는 또한 소련과 신장 간의 국경을 봉쇄하고 무역을 차단했다. 목축업을 하던 키르기스인들과 카자흐인들은 밥줄이 끊긴 것도 모자라 소련 대신 중국에서 더 비싼 가격으로 생필품을 구입해야 하는 상황이 되자 불만이 폭발했다. 1944년 여름부터 인플레이션이 발생하기 시작했는데, 가을이 되자 주요 식품 가격이 8배나 인상되었다.
또한 성스차이 정권 시절 신장에서 통용되던 기존 화폐가 중국 국민당 화폐로 대체되었는데 이 과정에 국민당 권력자들의 농간이 개입하여, 위구르 소상인들은 엄청난 타격을 입는 와중에 한족 상인들은 폭리를 챙겼다. 중국 국민당은 홀로도모르를 피해서 신장성의 일리 강 일대로 피난와 수년간 평화롭게 지내던 카자흐인 유목민들에게도 갑자기 군마로 쓸 말을 전부 다 내놓으라는 무리한 요구까지 일삼았다.
카자흐인들은 전 재산이나 다름없는 말을 내주기보다는 군기 빠진 국민당 군과 경찰에 맞서 싸웠는데, 오히려 국민당 군대가 소수의 카자흐인들에게 추풍낙엽처럼 밀리는 상황이 전개되었다. 이 상황을 보고 국민당 정권의 강제 한화 정책에 불만을 품고 있던 위구르인들도 여기에 합류하고 1944년 11월, 러시아 내전 중 넘어온 백군 지식인 수십여명과 합세하여 카자흐 난민들이 많이 거주하던 일리 강 지역에서 독립을 선포하고 이닝시를 점령, 수도로 삼고 동튀르키스탄 제2공화국을 선포하였다. 그리고 일리 민족군을 창설하여 신강성 전체에 대한 영유권을 주장하며 1945년 초, 이리, 타청, 아쌴 등 3개 지구를 함락시키는 '삼구혁명'에 성공하시키고 9월에 이르러 신강성의 수도 디화(현재의 우루무치)를 위협했다. 그리고 1945년 1월 5일, 중국으로부터의 독립을 선포하고 공화국을 수립했다.
항복한 일본군을 접수하느라 정신이 없던 국민정부는 1945년 9월, 장즈중을 책임자로 파견하여 일리 민족군과 협상하게 했다. 이리하여 국민정부는 동튀르키스탄 공화국의 지배구역의 자치를 인정하고 신강성의 부성장을 동튀르키스탄 공화국 지역에서 선출한다는 조건으로 신강성 합동정부를 수립함으로 공식적으로 동튀르키스탄 2공화국은 해체되었다. 허나 내부 상황이 정리되자 1947년 5월 장제스는 장즈중을 신강성에서 소환함으로 다시 동화정책을 실시했다.
그러던 중 신강성의 완전한 독립을 주장하던 신장 평화민주 수호동맹의 지도부가 1949년, 비행기 사고로 몰살당하는 사건이 발생하면서 공산주의자이며 임시 정부의 주석이었던 부르한 샤히디(بۇرھان شەھىدى‎, Burhan Shahidi)가 소수민족의 자결권을 제시한 중화인민공화국과의 합병 조약에 서명하여 합병된다. 부주석이었던 이사 유수프 알프테킨(ئەيسا يۈسۈپ ئالپتېكىن‎, Isa Yusuf Alptekin)과 그를 따르던 사람들은 이에 반대해 터키로 망명했다. 부르한 샤히디와 사이푸딘은 이후 신강성 성장과 부성장에 임명되었다.

3. 역대 대통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