윌리엄 존슨

 


[image]
1. 개요
2. 일생


1. 개요


영국의 장성. 7년 전쟁 시기 북미 식민지에서 프랑스-인디언 연합군과 맞섰다.

2. 일생


존슨은 1715년 아일랜드의 미스 주 스미스타운에서 태어났다. 그는 그곳의 잰트리였던 크리스토퍼 존슨의 아들이었다. 그는 어렸을 때 상인 교육을 받았고 1738년 삼촌인 피터 워렌 제독이 소유하고 있던 뉴욕 주 모하크 계곡의 토지를 관리하기 위해 뉴잉글랜드로 이민갔다. 그는 스케네타디에서 서쪽으로 약 40km 떨어진 모호크 강의 남쪽 둑에 자리를 잡았고, 1739년 캐서린 위젠버그와 결혼해 세 아이를 낳았다. 그녀가 사망한 후, 존슨은 모호크족 추장 타이엔다네기[1]의 여동생 몰리 등 다양한 정부를 두었다.
1743년 이전, 존슨은 모호크 강 북쪽으로 이주했다. 새로운 정착촌은 인디언들과 교역하면서 처음부터 번창했는데, 존슨은 이 교역에서 막대한 영향력을행사했고, 모호크족은 그를 추장으로 선출하기도 했다. 1744년, 존슨은 조지 클린턴 주지사에 의해 이로쿼이 연맹의 중개자로 임명되었고, 1746년에는 인디언 방면 관리인이 되었다. 1748년, 존슨은 프랑스령 캐나다를 공격하기 위해 이로쿼이 연맹을 동원했으나 얼마 안가 프랑스와 영국이 평화 협약을 체결되면서 무위에 그쳤다. 1750년 5월, 존슨은 총독 자문 위원회의 종신 회원이 되었고, 1754년 뉴욕 엘버리에서 열린 식민지간 회의의 뉴욕 대표 중 한 명으로 뽑혔다.
1755년 7월, 북미 식민지 방면 영국군 사령관 에드워드 브래독은 오하이오에 위치한 두케인 요새를 향한 원정을 개시했다가 머농거힐라 전투에서 참패한 직후 전사했다. 이에 존슨은 잔여 병력을 수습한 뒤 9월 8일 조지 호수의 리먼 요새로 쳐들어온 장 에르망 디스카우 장군의 프랑스-인디언 연합군을 조지 호수 전투에서 격파하고 디스카우를 생포했다. 이후 그는 1758년 제임스 애버크롬비 장군의 카리용 요새 원정에 참가했다가 카리용 요새 전투에서 참패를 면치 못하고 가까스로 목숨을 건졌다.
1759년, 존슨은 나이아가라 요새에 대한 존 프라이드 장군의 원정대에 참가해 부지휘관으로 활동했고, 프라이드 장군이 전사하자 그 뒤를 이어 지휘를 맡아 나이아가라 요새를 함락시켰다. 1760년, 존슨은 제프리 애머스트 장군과 함께 몬트리올 공략전에 참가해 9월에 함락시켰다. 그는 이 공적으로 모호크 강 북족에 있는 10만 에이커에 달하는 토지를 보유할 수 있는 권한을 부여받았다. 이후 1763년 애머스트 장군의 실정에 반발한 인디언들이 폰티악 전쟁을 일으켰을 때, 존슨은 이로쿼이 족을 설득해 그들이 이 반란에 가담하지 않게 했다.
1768년, 존슨은 펜실베이니아가 이뤄쿼이로부터 설리번 카운티를 매입하는 내용의 포트 스탠윅스 협정이 체결될 수 있도록 힘을 실어줬다. 이후에는 존슨 홀을 짓고 자신이 보유하고 있는 광대한 토지를 경작하는 데 전념하다가 1774년 7월 11일 뉴욕 존스타운에서 사망했다. 향년 59세.
[1] Thayendanegea. 영어 이름은 조지프 브랜트(Joseph Brant)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