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전쟁 6:1914/역사
1. 개요
유럽전쟁 6:1914의 역사에 대해 다루는 문서이다.
전투와 동일한 시간대를 공유하며 단 각 국가를 집중으로 하는게 아닌 각 국가별로 다르다.
각 국가별로 분류시 미국 2회(남북전쟁), 프로이센 2회(보오전쟁, 보불전쟁), 쿠바 독립전쟁, 러일전쟁(일본), 발칸전쟁2회(1차 불가리아, 2차 세르비아), 서부전선 관련 3회(베르뒹 전투, 유틀란트 해전, 2차 마른강 전투), 이탈리아1회(이촌초 강 전투), 소비에트 혁명으로 분류 할 수 있다.
또 역사전투만의 고유한 특징으로 플레이 국가의 장교만 활용가능[1]
그러나 쿠바는 예외로 쿠바의 장군이 이미 임명된 둘 빼고는 없어서 미국의 맥아더나 퍼싱을 사용한다.]는 점이며 클론장군들도 (구매불가 장군 혹은 NPC정도로 생각하면 된다) 사용이 가능하다.
단 사용가능 장군창에 들어있어야지만 사용 가능하다.
역사 임무는 시나리오를 다 깨고 훈장을 모아 장군을 산후 플레이 하는 방법이 추천되는 편이다.
2. 역사설명 및 미션
2.1. 링컨 당선
1860년, 노예제 폐지를 주장하는 공화당원 링컨이 대통령에 당선되면서, 남부 노예주가 반란을 일으켜 나라가 분열되었다.
2.1.1. 무기 교체
남북전쟁은 단병 무기가 급속도로 발전된 시기이다. 총기는 점차 활강총에서 라이플총으로 대체되었다. 총기와 화포의 사거리가 점점 멀어지면서 참호전이 생겼다.
2.2. 남북 전쟁
남부의 노예주들이 잇달아 독립했고, 남쪽의 7개 주는 연방에서 탈퇴하여 1861년 2월에 '아메리카 동맹국'을 결성하여 수도를 리치먼드로 하고, 데이비스가 대통령직을 맡았다. 같은 해 4월 12일~14일, 남방 연합군은 선제 공격을 하여 섬터 요새를 점령하게 되면서 내전이 발발했다.
2.2.1. 개틀링기관총
미국인 리처드 조든 개틀링이 발명한 기관총은 수동형 다관 회전 기관총으로 1분에 1000발 이상의 탄알을 쏠수 있다. 개틀링은 의사로 병사의 사상자를 줄이자는 취지로 이 무기를 발명했지만, 일이 뜻대로 되지 않았다.
2.3. 흑인 노예 해방 선언
합중국 대통령 링컨은 1862년 9월 22일 <흑인 노예 해방 선언>을 발표했다. 선언의 반포는 수많은 흑인 노예에게 희망을 가져다주었고, 최종적으로 이 전쟁의 승리를 결정했다.
2.3.1. 열기구
남북전쟁 시기 열기구를 이용한 정찰이 잦아졌다. 높은 고도는 정보 작업에 큰 도움을 주었으며, 항공기 운용이 시작된 후에야 이런 방식이 도태되었다. 또한 전보의 발명은 정보의 전송을 더욱 편리하게 만들었다.
2.4. 게티즈버그 전투
게티즈버그 전투는 남북전쟁의 중요한 전환점이다. 로버트 리 장군의 군대는 이 곳에서 큰 타격을 받았다. 이 전투에서 쌍방의 사상자 수는 50,000명 이상에 달한다.
2.5. 공략
일단은 장교가 죽을 거 같으면 바로바로 해산시켜야 한다. 이지테크의 명성에 걸맞지 않게 S나 3성클만 안 노린다면 의외로 쉽게 클리어가 가능하다. 하지만 다른 역사난이도는 상상을 초월하니 이 난이도를 생각하면 절대 안된다.( ))
3. 해양군으로 진군
셔먼 장군은 단숨에 애틀란타를 점령하고, 두 달 뒤 유명한 '해양을 향한 진군'에 나서 남방군의 경제력을 크게 깎았다. 동선에서 그랜트 장군은 군대를 이끌고 리치먼드 근처로 진군하고 있었다.
3.1. 공략
벌써부터 적의 머릿수가 상당해서 당황할 수도 있겠지만, 사실 이 임무는 바다쪽으로 우회해서 공세를 펼치는 것이다. 왜 내륙쪽으로 가지 않느냐면, 중형 요새와 대형 요새, 방어 병력 상당하게 배치된 내륙쪽 방어선을 공략하면 병력 손실과 체력 손실이 매우 크고 잘못하면 게임이 터지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해안쪽으로 쭉 가서 우회한 다음, 서배너 위에 3성 도시를 점령하고, 해군 병력 지원을 받아 장비 셋팅과 원수진급을 마친 '데이빗 페러것'을 장갑함에 넣어주고 추가 목표인 남부 연합군의 함선들 12척 중 서배너 근처에 주둔해 있는 군함 6척을 격침하고 목표 지점인 서배너를 점령하면 어느 정도 성공했다고 볼 수 있다. 중요 지점인 서배너를 점령하면 적 진영의 사기가 방황 상태로 일시적으로 하락하니 사기가 떨어져서 아무 것도 못하는 기회를 노려 추가 목표인 남부 연합군의 함선 12척중 남은 6척을 격파해야한다. 참고로 함선 격파는 추가 목표다.
3.2. 장갑함
증기 동력 철갑함의 방어능력과 화력이 크게 향상되면서 윈드서핑 시대의 전함을 신속히 대체했다.
3.3. 재통일
노예들이 뿔뿔이 도망치는 데다 북방군의 해상 봉쇄로 남방 농장 경제가 위태로워졌다. 1865년 4월 9일, 로버트 리는 어쩔 수 없이 그랜트에게 항복했다. 남북전쟁이 끝나자 미국은 통일을 되잦았다. 이 전쟁에서 총 70만명의 병사가 사망했다.
4. 프로이센-오스트리아 전쟁
철혈재상 비스마르크의 통일 운동은 독일 사람들의 민족 의식을 일깨웠다. 오스트리아가 바로 통일의 길에 놓인 걸림돌이다. 1866년 6월 14일, 프로이센-오스트리아 전쟁이 발발했다. 이번 전투에 양측은 총 100여만 부대를 동원했지만, 전투는 7주만에 끝났다.